잘못된 질문이지만 “조선일보 사회부장과 지방경찰청장 중에 누가 더 높을까요?”

독자들은 헷갈리겠지만 기자 열이면 열 똑같이 답할 정도로 하나마나한 질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언론사 사회부장은 강한 권력을 가진 자리로 통한다. 그것도 조선일보 사회부장이라면 경찰 수장인 청장이라도 몸을 낮출 수밖에 없다.

8일 서울서부지법 재판장에서 이동한 조선뉴스프레스 대표와 조현오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이 설전을 벌였다.

조 전 청장은 2009년 3월 당시 이동한 조선일보 사회부장이 찾아와 장자연 사건 수사와 관련해 외압을 행사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이동한 대표와 조선일보는 조 전 청장에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두 사람의 법정 진술에 따라 장자연 사건에 조선일보의 외압 여부가 드러날 수 있어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이날 법정 진술의 압권은 ‘어떻게 제가 감히’라는 취지로 말한 이동한 대표의 진술이었다. 이 대표는 조 전 청장을 알지 못한다면서 “증인은 경기지방경찰청 최고 간부였는데 어떻게 나와 통화할 수 있겠느냐”라고 물었다. 이 대표는 자신은 한낱 신문사 사회부장이었는데 어떻게 경찰 최고위 간부와 접촉할 수 있었겠느냐라고 항변했다. 조 전 청장을 접촉하지 않았다면 외압을 행사한 근거가 사라져 결국 조현오 전 청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 셈이다.

그러자 조 전 청장은 이동한 대표를 자신의 집무실에서 만난 시점과 횟수를 털어놓으면서 이 대표가 ‘조선일보 사회부장으로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조선일보를 대표해 말씀드리는 것이다. 우리 조선일보는 정권을 창출할 수도 있고 퇴출시킬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우리 조선일보와 한판 붙자는 것인가’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증언했다.

두 사람의 만남 여부는 향후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조선일보 사회부장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론사 구조로 보면 경찰 기자는 일선 경찰서를 취재하는 기자, 경찰청을 출입하는 기자(바이스), 서울지방경찰청을 출입하는 기자(시경캡)로 이뤄진다. 그리고 최정점 컨트롤 타워인 사회부장이 있다.

보통 수습기자들은 현장 취재의 기본과 보고 방법을 익히기 위해 경찰서를 돈다. 한국 기자 사회에서 수습기자는 경찰서를 취재할 때 서장 집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당당해야 한다는 얘기가 폭넓게 퍼져 있다. 실제 수습기자들은 형사과장이나 경찰서장 집무실을 아무런 예고 없이 찾으라는 지시를 받고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수습을 뗀 기자 중 일부는 정식 경찰서 출입 기자가 된다. 보통 주요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5개 이상 포스트 경찰서에 출입기자로 등록한다.

경찰서 출입 뒤 승진 코스는 경찰청 출입기자다. 바이스로 불린다. 경찰청을 출입하면서 중앙 조직으로 모이는 경찰 정보를 취합하고 취재한다. 경찰청 출입 기자는 20명 안팎으로 이뤄져 있다. 정기적으로 경찰청장과 간담회를 갖는다. 주요 사건 사고가 터지면 경찰청장을 호출해 입장 표명을 요구하기도 한다.

▲ 지난해 7월 방송된 MBC PD수첩 ‘고(故) 장자연’ 편. 2009년 경기경찰청장으로 장자연 사건 수사를 총괄 지휘했던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당시 조선일보 간부로부터 협박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사진=PD수첩.
▲ 지난해 7월 방송된 MBC PD수첩 ‘고(故) 장자연’ 편. 2009년 경기경찰청장으로 장자연 사건 수사를 총괄 지휘했던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당시 조선일보 간부로부터 협박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사진=PD수첩.
경찰 간부들도 경찰청은 승진 코스로 통하기에 출입기자들과 관계를 목숨처럼 생각한다. 일선 형사과장이 경찰서 출입기자에게 주요 정보를 알려주지 않을 때 경찰청 출입기자는 일선 서장이나 경찰청 주요 보직 간부와 통화해 정보를 캔다. 경찰청 대변인과 수시로 밥 먹고 분위기를 살피고 정보보고를 하는 것도 경찰청 출입기자의 역할이다. 경찰 간부도 언론사 동향을 살피려고 출입기자들과 만난다. 경찰청 출입기자들은 회사의 민원성 업무를 보기도 한다. 자사 기자가 연루된 사건이 일어나면 어떤 식으로든 논란을 막고 축소하려고 경찰 고위 간부에게 요청하는 일도 과거엔 흔했다.

경찰청 출입기자 위로 서울지방경찰청 출입기자가 있다. 시경캡이라 불린다. 시경캡은 경찰기자의 팀장 격이다. 이들은 일선경찰서 출입기자와 경찰청 출입기자들이 취합한 정보를 보고받는다. 서울청으로 올라오는 주요 정보를 파악해 경찰 기자들의 현장 취재를 지시한다.

월간조선은 시경캡에 대해 “가장 기본적인 일은 그날그날 발생한 사건을 경찰서 담당기자 또는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로부터 아침 일찍 보고를 받아 취합, 이를 정리한 다음 어떤 기사를 어떤 시각으로 다뤄야 할지를 결정해 사회부 차장과 부장에게 보고하는 것”이라며 “보고 내용은 자질구레한 좀도둑 사건에서부터 강도·화재·대형사건 등을 망라한다. 적절하게 사회면에 올릴 기사가 있는 날이면 그래도 괜찮지만 변변한 기사가 없거나 부장·차장의 마음에 쏙 드는 기사거리가 없는 날이면 괴롭기 짝이 없다. 시경캡은 사회부장으로부터 ‘너는 아이디어도 없느냐?’며 ‘협박’ 당하기가 일쑤다”라고 썼다.

시경캡을 좌지우지 하는 자리가 사회부장이다. 사회부장은 사회면을 짜는 데스크다. 사회부장 한마디에 사건 사고 면배치가 달라진다. 기사를 키우거나 반대로 ‘킬’시킬 최종 권한을 갖는다. 사회부장이 가진 권한은 경찰이 누구보다 잘 안다. 비판 기사가 한 줄이라도 나오면 관련 업무를 보는 경찰의 운명이 바뀌기도 한다. 인사철이 오면 경찰 출입기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간부들이 빛을 발하면서 승진하던 시절도 있었다.

경찰 기자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조현오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의 증언은 그래서 더욱 설득력이 있다. 조 전 청장은 “신참의 경찰 출입 기자들도 경찰서장 방을 불쑥 찾는데 대(大)조선일보 사회부장이 경기지방경찰청 형사과장에게 전화하면서 청장에게 전화 한 번 하지 않았겠느냐”고 반박했다.

경찰 출입을 경험했던 한 기자는 “언론사 내에서 시경캡이 갖는 위상과 권한이 커서 웬만한 경찰 간부도 두려워하는데 하물며 조선일보 사회부장은 어떻겠느냐”라며 “조선일보 사회부장이 고위 간부라서 경기지방경찰청장과 통화도 못했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라고 말했다.

과거 경찰청을 출입했던 또 다른 기자는 “통상적으로 유력 언론 사회부장이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 지방청장과 면담을 하거나 전화통화를 하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