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길에서 저를 보면 알아보시겠습니까? 저는 증인과 만난 적도 통화한 적도 없습니다.”

“분명히 제 집무실로 찾아왔습니다. 최소한 2009년 3~4월경 장자연 사건 때부터 통화하고 만났습니다.”

8일 재판정에 나란히 출석한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만난 적 없다’고 말한 이는 이동한 조선뉴스프레스 대표다. 이 대표는 2009년 장자연 사건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장이었다. 반면 ‘만난 적 있다’는 이는 조현오 전 청장. 조 전 청장은 2009년 장자연 사건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으로 수사를 총괄했다.

이 대표와 조선일보는 지난해 10월 장자연 사건을 보도한 MBC PD수첩 제작진과 조 전 청장을 상대로 9억5000만원의 손해배상 및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발단은 PD수첩의 장자연 보도였다. 조 전 청장은 지난해 7월 PD수첩 방송에서 “조선일보 측 관계자가 내게 찾아와 ‘조선일보는 정권을 창출할 수도 있고 정권을 퇴출시킬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우리하고 한판 붙자는 거냐’고 했다”며 조선일보의 외압을 폭로했다. 장자연씨가 성접대 등을 강요받았다는 내용의 문건, 이른바 ‘장자연 문건’에 ‘조선일보 방 사장’이 적힌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논란이 증폭되던 시기였다. 방송에서 외압을 가한 인사로 지목된 이가 이동한 대표다.

▲ 조현오 전 경찰청장. 사진=이치열 기자
▲ 조현오 전 경찰청장. 사진=이치열 기자
두 사람은 8일 오후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변론기일에 출석해 당사자신문을 진행했다. 이 대표는 조 전 청장에게 “호칭은 증인으로 하겠다. 증인은 길에서 저를 보면 알아보겠느냐”며 ‘일면식도 없음’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신문사 사회부장의 카운터파트너는 형사과장”이라며 “증인은 경기지방경찰청 최고 간부였는데 어떻게 나와 통화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조 전 청장은 “신참의 경찰 출입 기자들도 경찰서장 방을 불쑥 찾는데 대(大)조선일보 사회부장이 경기지방경찰청 형사과장에게 전화하면서 청장에게 전화 한 번 하지 않았겠느냐”며 “보통 조선일보 출입 기자들의 취재를 통해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 정상인데 자사 사장이 관련돼 있어서 사회부장이 형사과장을 찾는 등 그 당시는 비정상”이라고 말했다.

다시 이 대표는 “2009년 3월 (장자연 사망 후) KBS의 장자연 문건 최초 보도 후 취재 경쟁이 이루 말할 수 없던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수사 대상 신문사의 사회부장이 청장의 수원 집무실을 찾아 최고 간부를 만난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느냐”며 “방송사 기자들 눈을 피해 만날 수는 없던 상황이었다.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조 전 청장은 “재판정에 여러 기자 분들이 계시지만 언론사 오너와 관련한 일이면 기자들이 물불 안 가린다”고 반박했다. 조 전 청장은 이 대표를 자신의 집무실에서 만난 시점을 ‘2009년 3~4월경’으로 특정했고 방문 횟수도 “최소 한 번 이상”이라고 밝혔다. 그는 “낮에 만났다. 집무실 어디에 앉았고 그때 햇빛이 (집무실 안) 어디까지 들어왔는지 기억난다”고도 했다.

조 전 청장은 이 대표가 자신을 찾아와 “조선일보 사회부장으로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조선일보를 대표해 말씀드리는 것이다. 우리 조선일보는 정권을 창출할 수도 있고 퇴출시킬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우리 조선일보와 한판 붙자는 것인가”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증언했다. 지난해 PD수첩 인터뷰에서 했던 증언을 번복 없이 유지한 것이다.

조 전 청장은 그 상황에 대해 “이동한 사회부장이 언성을 높이진 않았다. 대신 단호하게 말했다”며 “대통령과 관련 없는 사건인데 경찰이 제대로 처리를 못해 정권 퇴진 이야기가 나온다는 등 (정권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은 내게 큰 충격을 줬다. 이동한 부장에게 ‘우리 경찰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경찰이 언론에 제보해 (방 사장 관련 보도가) 나온 것은 아니다’는 취지로 답변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 때문에 이명박 정부 퇴진 운운의 이야기가 나오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제가 최대한 챙기겠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나도 조선일보 애독자’라는 등 유화적으로 이야기를 전했다”고 했다. 그는 ‘협박으로 느꼈느냐’는 피고 쪽 변호인 질문에 “보는 관점에 따라 협박을 받았다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조 전 청장 주장에 따르면, 조선일보 측은 수사 초기 장자연 사건 수사 내용을 확인하고자 했고 이후에는 언론에 ‘방 사장’이 거론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요구를 전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방 사장이 경찰에 출석해 조사 받는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지난달 한겨레는 장자연 사건 관련 2009년 경찰이 방 사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하면서 경찰서 조사실이 아닌 조선일보 사옥에서 방문 조사했다고 보도했다. 방문 조사에 조선일보 기자 2명이 배석하는 등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 조 전 청장은 “결과적으로 이동한 부장 말대로 (방 사장은) 관서에서 조사를 받지 않았다. 경기지방경찰이 관할 지역도 아닌 서울(조선일보 사옥)에 가서 방문 조사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고 파격적”이라고 말했다.

▲ 지난해 7월 방송된 MBC PD수첩 ‘고(故) 장자연’ 편. 2009년 경기경찰청장으로 장자연 사건 수사를 총괄 지휘했던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당시 조선일보 간부로부터 협박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사진=PD수첩
▲ 지난해 7월 방송된 MBC PD수첩 ‘고(故) 장자연’ 편. 2009년 경기경찰청장으로 장자연 사건 수사를 총괄 지휘했던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당시 조선일보 간부로부터 협박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사진=PD수첩
장자연 사건 수사 초기부터 조선일보 쪽에 경찰의 고급 정보가 전달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2009년 3월 조 전 청장이 이동한 대표와 직접 소통하기 전, 부산고 후배인 당시 이종원 조선일보 편집국 부국장과 연락하며 핵심 수사 기밀을 제외하곤 장자연 수사 상황을 알려줬다는 것.

조 전 청장은 “(이종원 부국장과) 여러 번 전화를 주고받았고 정말 꼭 지켜야 할 기밀을 제외하고는 내가 아는 한에서 단계적으로 알려줬다”고 했다. 그는 “장자연 사건과 관련해 가장 큰 피해자 중 한 사람이 지금도 방상훈 사장이라고 생각한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방 사장과 장자연의 연결고리는 없었다. 우리가 수사한 결과 방 사장은 장자연과 같이 있지 않았다. 언론에서 자꾸 방 사장을 거론하면서 장자연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도했고, 방 사장이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 당시만 해도 나는 조선일보 애독자였고 조선일보를 상당히 아끼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파악하고 있는 내용을 이종원 부국장에게 전달했다”고 했다.

이와 관련 이동한 대표는 “증인(조현오) 말대로 수사 때부터 방 사장이 억울한 피해자라고 인식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내가 찾아가서 협박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이 대표는 경찰의 방 사장 방문 조사에 “경찰이 사장 회의실에서 조사한 게 대단한 특혜인 것처럼 말하지만 당시 KBS 기자들도 방문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수많은 참고인을 방문해 조사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조 전 청장은 조선일보에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서울지방경찰청장, 경찰청장을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조선일보는 유독 경찰을 비판했다. 그럴 때마다 갈등을 겪었는데 내 방으로 조선일보를 들이지 말라고도 했다. 신문을 다 끊었을 정도로, 조선일보는 경찰에 굉장히 비판적”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