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신인 배우였던 고 장자연씨가 숨지기 전 같은 소속사 동료 배우 윤지오씨만이 ‘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는 아니다. 2009년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 수사 대상자만 20명이었고, 참고인도 118명이나 됐다. 수사가 그만큼 여러 갈래로 진행됐고, 관련 목격자와 증언자도 많았다.

그래서 윤지오씨가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 수도 없고, 윤씨에게 10여 차례 경찰·검찰 조사에서 한 모든 증언이 ‘사실’인지 밝히라는 요구도 지나치다. 윤씨는 이른바 ‘장자연 문건’도 이를 작성토록 한 유장호 전 소속사 총괄매니저가 장씨 사망 후 유족들을 만나 소각하기 전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했기에 내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기도 어렵다.

윤씨가 ‘유일한 목격자’로 불렸던 이유는 사건에 연루된 여러 사람 중 장씨에 대한 강제추행을 직접 목격했다고 밝힌 유일한 사람이라서다.

▲ 고 장자연 동료 배우 윤지오씨는 2009년 수사 당시 “(기자들은 내가 조사받으러 들어갈 때) ‘성 상납했죠? 언제 어디서 했어요?’ 이런 식으로 물어봤다. 내가 태어나서 왜 저런 질문을 들어야 하는지 생각이 들었다”고 술회했다. ⓒ 연합뉴스
고 장자연 동료 배우 윤지오씨는 2009년 수사 당시 “(기자들은 내가 조사받으러 들어갈 때) ‘성 상납했죠? 언제 어디서 했어요?’ 이런 식으로 물어봤다. 내가 태어나서 왜 저런 질문을 들어야 하는지 생각이 들었다”고 술회했다. ⓒ 연합뉴스
현재 이 사건은 지난해 검찰 과거사위원회 재수사 권고 이후 검찰이 가해자로 지목된 조아무개 조선일보 전직 기자를 불구속기소 해 재판 진행 중이다. 2009년 수사 당시 경찰은 윤씨의 증언이 신빙성 있다고 판단해 조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 없다고 결론 냈다.

윤씨가 지난해 말 캐나다에서 귀국한 이유도 조씨의 강제추행 혐의 사건 재판 증인으로 검찰이 출석을 요청해서다. 검찰 과거사위 결정에 따라 조사 실무를 담당한 대검 진상조사단은 “검찰이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있는 핵심 목격자(윤지오)의 진술을 배척한 채, 신빙성이 부족한 술자리 동석자들 진술을 근거로 불기소 처분한 것이 증거 판단에 있어 미흡했고 수사 미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언론이 윤씨 증언을 검증해야 한다면 지금 검찰이 장씨의 강제추행 사건 혐의를 입증하는 데 윤씨가 얼마나 신빙성 있는 증언을 하는지 취재해 보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재판장의 결정에 따라 윤씨의 증인신문 절차는 비공개로 진행됐지만 윤씨가 핵심 증인인 장씨의 강제추행 혐의 사건에서 과거의 검찰과 현재의 검찰 중 어떤 판단이 맞는지 검증하려는 노력을 언론은 과연 얼마나 했는지 의문이다.

▲ 윤지오씨 증언 관련 의문을 제기한 김대오씨는 지난달 23일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윤지오씨가 주장하는 ‘장자연 리스트’는 절대 원본 문건에 없었다는 걸 밝힌다”고 주장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윤지오씨 증언 관련 의문을 제기한 김대오씨는 지난달 23일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윤지오씨가 주장하는 ‘장자연 리스트’는 절대 원본 문건에 없었다는 걸 밝힌다”고 주장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KBS는 지난해 4월 “장자연 사건 무혐의 결정을 받은 의혹 가운데 강제추행 공소시효(10년)가 확실하게 남은 사건도 있다”고 조씨 관련 혐의 의혹을 처음 재조명했다. KBS는 “경찰과 검찰 수사 결과가 극명하게 엇갈렸다”며 “조씨의 부인이 검사라서 수사가 어려웠고, 소환을 요구해도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경찰 관계자 말을 전했다.

YTN은 지난해 11월 장자연 사건을 담당했던 전 성남지청 부장검사가 검찰 내부에서 “조씨의 아내가 검사니 잘 부탁한다”는 일부 청탁이 있었다고 대검 진상조사단에서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이 외에 장자연 사건에서 유일하게 재수사 개시한 이 사건 관련 의미 있는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사건 핵심 관계자들 증언에 의문을 제기했던 뉴시스는 두 차례나 오보와 기사 삭제 논란을 빚었다. 지난해 12월 장씨가 모친 기일에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 등에게 술 접대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가 대검 조사단이 이를 반박하자 정정보도문을 냈다. 장씨와 윤씨의 관계 등을 의심해 썼던 기자수첩 “‘증인’ 윤지오와 장자연 사건” 기사는 삭제됐다.

[관련기사 : 뉴시스, '장자연 모친 기일' 오보 정정보도]

윤씨가 소각된 4~7장의 문건에서 봤다는 ‘이름만 적힌 별도 리스트’는 이미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 때문에 윤씨 기억대로 명단만 적힌 문건이 실제로 있었는지, 그중에 국회의원 이름이 있었는지 검증할 수도 없고 윤씨에게 증거를 대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다만 윤씨가 언급한 인물을 포함해 과거 제대로 조사, 수사받지 않은 인물들을 검찰 과거사위가 들여다보고 있고, 조만간 조사결과 발표와 수사 개시 여부 결정을 앞두고 있다.

한눈에 보는 장자연 사건 인물관계도. 구성·그래픽=강성원·이우림 기자. 사진=TV조선·©연합뉴스
한눈에 보는 장자연 사건 인물관계도. 구성·그래픽=강성원·이우림 기자. 사진=TV조선·©연합뉴스
검찰 수사기록을 보면 장씨가 숨지기 전 자필로 작성해 유장호씨(이후 호야스포테인먼트 운영)에게 건넨 문건은 총 7장이다. 하지만 경찰이 확보한 장씨의 자필 문건은 KBS가 유씨의 사무실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한 4장뿐이다. 나머지 3장은 유가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소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윤씨는 지난 2010년에도 본사건 재판 증인으로 출석해 자신이 본 장자연 문건에 “피해 사실이 적혀있는 것도 있고, 성함과 성상납 강요를 받았다고 기재돼 있는 것도 있었다”며 “어떠한 장에는 성함만 기재돼 있으면서 어떠한 언론사에 누구, 어디 무슨 회사의 누구라는 식으로 기재돼 있는 것도 있었다”고 진술했다.

유장호씨도 검찰 조사에서 장씨가 2009년 2월28일 자필 문건을 작성한 후 2009년 3월1일 장씨와 다시 만나 “3장의 편지를 더 받았다”고 했다. 유씨는 “2월28일 작성된 A4용지 4장에 못 다한 이야기들을 편지 3장에 적어 나에게 건네준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장씨가 숨진 후 윤씨와 전화통화하면서도 ‘장자연 문건’을 자신이 갖고 있다며 현재 남은 4장에 적혀 있지 않은 “조선일보 강○○ 적혀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답답함은 윤씨와 검찰, 언론 모두 마찬가지다. 장자연 사건 재조사 후 검찰이 수사로 전환한 피의자는 강제추행 혐의 단 한 명뿐이다. 조사단은 공소시효를 고려해 특수강간 또는 강간치상 등 혐의를 적용한 수사 개시 검토를 과거사위에 요청했다. 하지만 과거사위와 조사단 내부에서도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반대 의견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씨의 ‘약물 성폭행’ 주장은 아직 추측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기엔 이번에도 공소시효 만료로 가해자들이 수사,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함이 담겨 있다. 본인이 수차례나 분명히 목격한 가해자라고 증언했던 인물도 혐의를 벗고 버젓이 잘사는 걸 봤던 증언자는 자신이 잘 모르는, 혹은 불확실한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거짓말쟁이’로 몰려 한국을 떠났다. 과거사위 내부 갈등과 윤지오 논란을 지켜보며 웃고 있을 이들은 누굴까.

[관련기사 : '장자연 사건' 고액수표 명단과 국정원 연루 의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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