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시절에 했던 ‘알바’ 중 하나가 토론방송 방청이었다. 2008~2009년 주로 방청했는데 한번 참여하면 4만원을 받는 당시로선 괜찮은 알바 자리였다. 방청할 기회를 추첨을 통해 줬고 한 달에 두 번 이상 방청은 불가할 정도로 인기 있는 알바였다. 필자로선 돈 벌면서 공부도 하는 좋은 기회였다.

어느 날 방청 갔는데 마침 그날 토론 주제가 ‘복수노조 허용’이었다. 공대생이었던 필자에겐 생소한 주제였다. 노동계 패널들은 ‘한 기업 안에 단 하나의 노조만 있어야 한다는 대한민국의 법규는 주요 선진국은 물론 웬만한 국가에도 없는 후진적인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경영계 쪽에선 ‘안 그래도 노사 간 갈등이 심한데 복수노조를 허용하면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란 논리를 폈다. 

그 토론에서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실제론 사측의 ‘유령노조 설립으로 인한 진짜 노조 설립을 방해한 결과’란 사실을 처음 알기도 했다. 순진했던 그때엔 ‘설마 삼성 정도의 글로벌 기업이 그렇게 유치한 짓을 했을까’라며 토론에서 들었던 내용을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유치하면서 잔인한 짓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란 걸 알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 삼성 노조 와해 실무를 총괄한 의혹을 받는 삼성전자서비스의 최 모 전무와 윤 모 상무, 노무사 등 4인이 지난해 4월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삼성 노조 와해 실무를 총괄한 의혹을 받는 삼성전자서비스의 최 모 전무와 윤 모 상무, 노무사 등 4인이 지난해 4월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토론이 끝나고 귀가하면서 헌법에 보장된 ‘결사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침해하는 ‘복수노조 규제’는 이제 풀려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고 새 사실을 알게 된 것에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알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방청객인 나뿐만이 아닌, 토론자였던 전문가들도 간과했던 부분이다.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변화를 당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노사대책팀장, 법제팀장을 하며 지켜보던 심종두 창조컨설팅 전 대표는 노조 쟁의에 기업 쪽의 대응 수단인 ‘직장 폐쇄’와 복수노조를 적절히 조합하면 노조를 파괴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단 것을 깨달았고 그대로 기업을 자문하며 실행에 옮겼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2000년대 이후로 줄곧 10% 안팎에 불과한대도 2000년대 후반부터 민주노총에 가입된 여러 노조들이 와해되기 시작했다. 그 배후에 창조컨설팅이 있단 사실이 ‘노조파괴 전문 창조컨설팅, 7년간 14개 노조 깼다’(2012년 9월24일 김소연 한겨레 기자, 제265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 기사)는 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창조컨설팅의 작업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한국 공론장에서 ‘노조’에 ‘불법’, ‘폭력’, ‘귀족’ 등의 딱지를 붙인 보수 언론의 성공한 여론화 작업이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유성기업 노조를 비판한 발언조차 창조컨설팅의 기획이었다. 지난해 8월 발표된 고용노동부 산하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조사 결과 “대통령 월례 연설의 근거가 된 기사를 창조컨설팅이 써서 청와대로 보냈다”는 진술이 창조컨설팅 관계자로부터 나오기도 했다.

창조컨설팅 기획이 세상에 알려진 계기가 유성기업의 쟁의와 노조 파괴 사건이었다. 최근 언론사에 언론중재위 제소를 남발하는 바로 그 유성기업이다.

[ 관련기사 : 유성기업, 유시민 글 인용한 서평까지 수정 요구 ] 

개인적으로도 유성기업, 창조컨설팅과 관련해 제소를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노조원들이 쟁의행위 결과로 안게 되는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 사건들의 상당수가 창조컨설팅이 노조 파괴 자문을 했던 기업들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기사로 쓰면서 창조컨설팅의 주요 보직을 맡았던 노무사들이 새롭게 노무법인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적은 점이 발단이었다.

[ 관련기사 : 한겨레) 584억 청구하게 만들고 82억을 벌었다 ]

당시 새로 노무법인을 차린 이들은 “기사로 쓴 창조컨설팅 관련 내용이 모두 사실이지만, 우린 다른 회사”라며 “당신이 쓴 기사로 인해 영업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 기사를 수정하거나 해당 내용을 삭제하지 않으면 언론중재위 제소, 명예훼손 소송에 나서겠다”고 했다. 필자는 “창조컨설팅 출신이지만 그때처럼 일하진 않겠다고 밝혔다”는 정도는 기사에 반영해줄 수 있지만 그 이외엔 기사를 수정할 순 없다고 답했다. 다행히 그 이후 제소나 소송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봐도 유성기업과 관련한 ‘반론보도’가 진보, 보수 언론 전반에 걸쳐 얼마나 많은지 쉽게 알 수 있다. 노조 혐오가 지배적인 공론장 자체가 기울어진 상태지만, 어쩌면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 언론의 가장 큰 차이를 만드는 기준이 ‘유성기업’일 정도로 이 회사를 바라보는 양쪽의 시선은 크게 엇갈렸다.

▲ 지난 2011년 충남 아산 유성기업에서 사측 용역업체 직원들이 헬멧과 마스크, 방패를 착용하고 출근을 시도하는 노조원들 200여명에 쇠파이프, 죽창을 휘두르고 소화기를 던지는 유혈사태가 일어나 20여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진=금속노조
▲ 지난 2011년 충남 아산 유성기업에서 사측 용역업체 직원들이 헬멧과 마스크, 방패를 착용하고 출근을 시도하는 노조원들 200여명에 쇠파이프, 죽창을 휘두르고 소화기를 던지는 유혈사태가 일어나 20여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진=금속노조
최근 유성기업이 제소해 반론보도를 한 내용들은 “2012년 이후로 부당노동행위 등을 이유로 유죄 판결이 선고되거나 확정된 바 없다”(유죄가 확정된 사안은 2012년 이전 사건이라는 의미), “노동자 OO의 죽음이 노사 분규와 관련됐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 “유성기업은 경희의료원 검사 결과 조합원 중 2.7%가 고위험군에 속하는데, 이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한국인 정신질환 1년 유병률 11.6%보다 낮은 수치라고 전해왔다” 등이다. 

이 내용들 모두 반론보도에 그칠 게 아니라 새로운 취재의 출발점이 될 만하다. 아예 이 기회에 유성기업은 우리 사회에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를 총체적으로 살펴볼 만하다.

▲ 윤형중 LAB2050 연구원
▲ 윤형중 LAB2050 연구원
대법원이 2017년 12월 유시영 유성기업 회장을 부당노동행위 유죄 판결을 선고하기 전, 유성기업은 노조 파괴 행위조차 부인하며 반론보도, 반론기고 등을 남발했다. 필자는 이런 가능성을 제기해본다. 그들이 언론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이유는 노조 혐오 현상을 언론이 만들어냈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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