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3명의 사망자를 낸 천호동 성매매집결지 화재사건에 경찰이 ‘범죄 혐의점이 없다’고 수사결과를 발표한 가운데, 경찰이 성매매알선 등 혐의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고도 부실 수사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천호동 성매매집결지 화재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7일 “경찰이 실제 성매매업주를 구속하지 않았고, 불법증개축에도 ‘혐의점 없다’고 판단했다”며 정확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공대위는 화재가 난 뒤 희생자와 피해여성을 지원하기 위해 100여개 여성인권단체와 법조인들이 꾸린 연대체다.

지난해 12월22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 성매매집결지에서 불이 나 업소 관리자 1명과 성매매여성 2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강동경찰서는 지난달 30일 보도자료를 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불이 1층 연탄난로 주변에서 시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건축법, 소방법 등 위반 사실 등 범죄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달 25일 A씨를 업소 ‘총괄운영자’로 보고 성매매 알선 혐의로 구속했다.

▲ 천호동 성매매집결지 화재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7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확한 진상과 책임소재 규명을 촉구했다. 고진달래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가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천호동 성매매집결지 화재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7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확한 진상과 책임소재 규명을 촉구했다. 고진달래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가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날 공대위는 A씨는 불이 난 업소의 실제 업주가 아니라고 했다. 이들은 “고인의 유류품을 확인하면 실업주가 B씨임을 알 수 있다”며 “스마트폰 속 대화방엔 B씨가 고인을 독촉하는 내용, 고인이 아픈데도 ‘주사 이모’의 처방을 받아 일을 해나가는 기록이 담겼다. 현장에서 나온 계좌도 B씨 딸 명의”라고 했다. 경찰이 구속한 A씨는 실업주 B씨의 동생으로, 이미 다른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다 고소당한 상태라고 공대위는 설명했다.

이들은 “경찰은 동생 A씨만 ‘총괄운영자’라는 듣도보도 못한 이름으로 구속했고, 이 중요한 증거자료를 그대로 유가족에게 돌려줬다”며 “언론은 보도자료만 인용해 ‘실업주’가 구속됐다고 전했다”고 했다.

경찰이 화재를 놓고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밝힌 점도 실상과 다르다고 했다. 화재 직후 실시한 현장조사 결과, 건축물관리대장과 등기부등본에 없던 지하 1층이 발견됐다. 공대위는 업주들이 이 지하공간을 단속을 피해 여성들을 숨기는 데 썼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들은 “경찰은 공대위와 함께 현장을 확인하고도 혐의가 없다고 결론 냈다.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 경찰과 소방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전력 등 관계자들이 지난해 말 서울 강동구 천호동 성매매업소 건물 화재 현장에서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경찰과 소방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전력 등 관계자들이 지난해 말 서울 강동구 천호동 성매매업소 건물 화재 현장에서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동대표는 “우리가 그간 ‘집결지를 단속하고, 폐쇄하고 지원대책을 만들라’고 요구할 때 경찰은 뭘 했는지 묻고 싶다”며 “이제라도 제대로 수사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결론을 내길 바란다”고 했다.

사건을 담당하는 최석봉 변호사는 “천호동 성매매집결지 화재사건은 단순히 불이 나 사람이 죽었단 내용이 아니다. 오랜 기간 성매매여성이 업주로부터 성착취를 당한 공간에서 사건이 발생했고, 국가는 이를 단속하지 않아 직무 유기했다”고 강조했다.

이날 공대위는 언론을 향해서도 ‘사실을 확인한 뒤 보도해 달라’고 촉구했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의 고진달래 활동가는 “화재 당시 언론은 ‘상인회장’ ‘주변 상인들’이라는 이름으로 성매매 업주들 말을 인용했다. 업주들은 ‘소방시설은 갖췄는데 여성들이 훈련을 받지 못해, 혹은 술이나 약을 먹고 자서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는 등 여성에게 책임을 돌렸다”고 말했다. 이들은 “언론이 사건을 축소하고 싶었던 이들에게 무책임하게 힘을 실어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 천호동 성매매집결지 화재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7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확한 진상과 책임소재 규명을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천호동 성매매집결지 화재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7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확한 진상과 책임소재 규명을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뒤 공대위는 업주 B씨와 건물주에 대해 성매매처벌법과 소방관계법, 건축물법 등 위반 혐의로 서울동부지방검찰청에 고소‧고발장을 제출했다. 강동경찰서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7일 “형사처벌이 가능한 위법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면서도 지하1층 불법증개축 여부를 두고는 “확인해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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