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음식점 사장님이 꼭 이 글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막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아이들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하시면서 근로계약서를 쓰고, 시급도 최저임금만큼 주셨더군요. 그런데 주휴수당을 달라고 한 아이들이 괘씸하셨나봅니다. 근로계약서엔 없는 한 달 30만원의 식대를 아이들에게 요구하고, 아이들을 겁박하고자 아이들에겐 나눠주지 않고 사장님이 가지고 있던 근로계약서를 위조하셨더군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찍어뒀던 사진이 없었다면, 아이들은 월 18만원 정도의 주휴수당보다 더 큰 금액을 갈취당할 뻔 했습니다. 하지만 사장님이 아이들에게 한 말 처럼 법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았나 봅니다. 사문서 위조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으시면서 무슨 말을 하실 지 궁금합니다.

‘10대 노동 리포트: 나는 티슈 노동자입니다’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다양한 10대들을 만났고, 직간접적으로 사장님들을 마주했습니다. 물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고 법을 지키는 사장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아이들을 뽑아 쓰고 버리면 그뿐인 만만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장님들이 많았습니다. 사장님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처럼 일할 사람은 차고 넘칩니다. 하지만 굳이 10대를 쓰는 이유는 권리를 모르는 존재가 필요해서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 관련기사 : 서울신문) 못 쉬고 못 받고… ‘쓰고 버려진’ 10대들은 너무 많았다 ]

“요즘 것들은 영특해서 주휴수당이든 머든 자기 권리를 다 챙겨 먹는다”고 비아냥댔던 사장님께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10대들이 노동시장에 진출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밥벌이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사고 싶은 물건을 사기 위한 첫 사회경험, 일을 하지 않으면 위태로울 만큼 궁핍한 경제사정. 하지만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10대 노동의 대가는 노동시장에서 여전히 최저임금 이하입니다. 또 숱한 이유들로 노동자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장님 말과는 달리 노동자로써 권리를 요구하는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여성가족부가 2018년 조사한 청소년 유해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르바이트 중 부당한 대우에도 참고 계속 일했다는 응답은 70.9%에 달합니다. 아이들이 부당한 대우에도 침묵하는 건 학교나 사회에서 그렇게 할 것을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 서울일보 유튜브인 서울살롱에 올라온 ‘일회용으로 쓰고 버린 어른들… 아들은 고작 열여덟이었습니다’ 영상 갈무리. 사진=서울살롱 유튜브
▲ 서울일보 유튜브인 서울살롱에 올라온 ‘일회용으로 쓰고 버린 어른들… 아들은 고작 열여덟이었습니다’ 영상 갈무리. 사진=서울살롱 유튜브
▲ 서울일보 유튜브인 서울살롱에 올라온 ‘일회용으로 쓰고 버린 어른들… 아들은 고작 열여덟이었습니다’ 영상 갈무리. 사진=서울살롱 유튜브
▲ 서울일보 유튜브인 서울살롱에 올라온 ‘일회용으로 쓰고 버린 어른들… 아들은 고작 열여덟이었습니다’ 영상 갈무리. 사진=서울살롱 유튜브
경영상 이유로 누군가가 잘리거나,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는 행위에 격분해 머리에 띠를 두르거나 구호를 외치면 경멸의 시선이 쏟아집니다. 오래된 반노동적 인식 때문일까요. 학교는 아이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2015개정 교육과정 내용, 중·고교 사회·경제 관련 교과서 25종을 살펴본 결과, 전체 교육과정 성취기준(교사가 수업 때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내용) 중 노동이 포함된 단원의 비율은 0.03%에 불과했습니다. 교육의 부재는 아이들에게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보상받을 수 없는 사회 구조를 일찌감치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권리를 주장하면 욕설과 함께 “어린 게 나쁜 것만 배워서”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사장님이 그 친구에게 하신 것처럼요.

▲ 홍인기 서울신문 사회부 기자
▲ 홍인기 서울신문 사회부 기자
노동교육을 두고 “그건 빨갱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했던 사장님께도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근로계약서를 쓴 다음 사장님과 알바생이 나눠갖고, 최저임금을 줘야 하고, 알바생이 다치면 산재 처리를 해주는 등의 내용을 가르치는 게 잘못된 일인가요. 일자리를 갖게 되면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고, 부당한 대우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내용도 좌파가 하는 나쁜 교육일까요. 이런 교육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이번 취재를 통해 다시 한 번 체감했습니다. 그래야 사장님처럼 아이들을 뽑아 쓴 다음 티슈처럼 버리는 일이 생기지 않을테니까요. 사장님. 아이들은 티슈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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