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고공농성, 점거농성 등 죽는 것 빼고 안 해본 일이 없다.” 13년 간 이어진 복직투쟁을 마무리한 금속노조 콜텍지회 이인근 지회장은 막판 노사교섭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위장 정리해고’에 맞선 기타노동자들의 농성은 그만큼 언론이 지키지 않는 싸움이었고, 언론과 싸움이기도 했다. 언론보도로 13년 콜텍 투쟁의 8가지 변곡점을 되짚어봤다.

2006년 콜텍이 노조를 설립한 이듬해 콜트콜텍 사측이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사유는 ‘경영악화‘였다. 그러나 회사는 1996~2007년까지 한차례 빼고 매번 흑자를 기록했다. 정리해고 무렵엔 임원진에 성과금 300%도 지급했다. 2006년 하반기 ㈜콜트악기 신용등급은 ‘우수’였다. 콜트‧콜텍노조는 ‘결국 값싼 인력을 확보하려고 생산기지를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옮기기 위한 임의 해고’라며 맞섰다.

▲ 콜트콜텍악기의 노동자 탄압과 노동자들의 연대 과정을 그린 김성균 감독 다큐멘터리 '꿈의 공장' 일부분.
▲ 콜트콜텍악기의 노동자 탄압과 노동자들의 연대 과정을 그린 김성균 감독 다큐멘터리 '꿈의 공장' 일부분.

▲ 한겨레 지난달24일 12면
▲ 한겨레 지난달24일 12면

① 이들을 맞은 첫 기사는? 투쟁 1000일, 보도매체 단 하나

노동자들을 맞은 첫 보도는 한국경제와 동아일보였다. 한국경제는 2008년 7월 박영호 콜트콜텍 사장의 ‘눈물의 인터뷰’를 담았다. 동아일보는 며칠 뒤 기사 ‘7년 파업의 눈물’을 내보냈다. 두 기사 모두 ‘노조의 파업과 강경투쟁이 공장 문을 닫게 했다’고 주장했다.

콜트 노동자들은 결국 3년에 걸쳐 사실을 바로잡았다. 한국경제는 그해 언론중재위원회 조정 끝에 반론보도를 냈다. 동아일보는 사실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소송을 벌였다 패소해 2011년 냈다. 법원은 “회사 경영상태 자료만이라도 인용했다면 오류를 쉽게 피할 수 있었다”며 처음부터 노조 비판 의도가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보도라고 지적했다. 이후 동아일보는 현재까지 한 차례도 콜트콜텍을 다루지 않았다.

한편 이들의 투쟁이 1000일을 맞기까지 보도한 신문은 딱 한 곳이다. 한겨레다. 한겨레는 그 기간 유일하게 사설도 썼다.

▲ 2008년 한국경제와 동아일보는 ‘노조의 파업으로 콜트공장이 폐업한다’고 주장하는 기사를 썼다가 정정‧반론보도를 냈다.
▲ 2008년 한국경제와 동아일보는 ‘노조의 파업으로 콜트공장이 폐업한다’고 주장하는 기사를 썼다가 정정‧반론보도를 냈다.
▲ 2009년 8월14일 한겨레 사설
▲ 2009년 8월14일 한겨레 사설

② 2009년 ‘해고무효’ 판결, ‘싸울 때도 이길 때도 언론은 없었다’

서울고등법원이 2009년 콜텍악기 노동자 26명의 정리해고가 ‘전원 무효’라고 선고했다. 콜트악기 사태에도 “회사의 행위에 긴박한 경영상 이유가 없었다. 그러므로 해고 회피노력이나 대상자의 공정한 선정 등 다른 정리해고 요건은 들여다 볼 필요도 없다”며 복직 판결했다. 잇따른 판결에도 복직이 이뤄지지 않자 경향신문이 해당 사안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동안 두 매체뿐이었다.

“그래요? 몰랐어요.” 이인근 콜텍지회장이 말했다. “사실 ‘이명박근혜’ 시대에 일간지들이 노동 사건에 관심이 크게 없었어요. 언론에 많이 서운했죠. 특히 2008년 송전탑에서 고공 단식농성할 땐 전혀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어요. 우린 그냥 그저 올라가 있다가, 지쳐서 내려왔어요. 촛불정국 때부터 조금 변하지 않았나 싶네요.”

▲ 사진=금속노조 콜트악기지회
▲ 사진=금속노조 콜트악기지회

③ ‘성별 임금격차 부당’ 사상 첫판결 이끌어내

‘최장기 투쟁’ 외에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쓴 역사는 또 있다. 성별에 따른 임금차별이 부당하다는 첫 판결이다.

여성 콜텍 노동자들은 폐업 전 같은 사업장 라인에서 같은 일을 하고도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았다. 따로 규정도 없는데 5년차 남직원의 하루 수당이 10년차 여직원보다 30%가량 많았다. 여성 조합원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2011년 5월 남녀가 동일노동을 하고도 임금을 차등지급한 조치를 시정하도록 한 확정판결을 이끌어냈다. 박영호 사장은 임금차액을 지급하고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벌금 1000만원을 냈다.

▲ 한겨레 2011년 5월5일 11면. 사상 첫 성별 동임노동 동일임금 판결을 유일하게 보도했다.
▲ 한겨레 2011년 5월5일 11면. 사상 첫 성별 동임노동 동일임금 판결을 유일하게 보도했다.

이인근 지회장은 “우리도 몰랐는데, 또다른 의미에서도 최초였다”며 “법원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소송에서 노조가 제시한 청구금액을 전적으로 인용한 첫 사례다. 변호사가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한겨레는 5월6일 이들의 승소를 유일하게 보도했다. 사설을 내 “당연한 판결이다. 반갑고 또 부끄럽다”며 “다른 한편으로 이들 여성노동자 12명을 포함한 콜텍 해고노동자 27명이 하루빨리 일터로 되돌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썼다. 그리고 얼마 뒤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했다.

④ 양승태 대법원의 판결 뒤집기… ‘올해 최악의 판결’

2012년 2월 대법원이 콜텍의 해고무효 판결을 파기환송해 뒤집었다. ‘사실상 같은 사건’인 콜트 해고엔 복직을 확정했다. 2014년 고등법원은 “미래에 다가올 경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정리해고는 유효하다”고 콜텍노동자 패소 판결했고, 대법원이 이를 확정했다.

그해 경향신문·주간경향·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콜텍 판결을 ‘최악의 판결’로 뽑았다. 법원은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일 때만 인정하는 정리해고를 광범위하게 허용해줬다. 사측은 원직복직이 확정된 콜트노동자들을 손바닥 뒤집듯 다시 해고했다. 공장을 이미 폐업해 이들이 일할 곳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 한겨레 2014년 6월13일 12면
▲ 한겨레 2014년 6월13일 12면

⑤ 정리해고 ‘반노동 판결’ 흐름 비판보도 나오기 시작

현행 정리해고 제도를 비판하는 보도가 잇따르기 시작했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부당해고에 맞선 싸움을 시작한 지 근 8년 만이다.

경향신문은 ‘대법원 노동 판례 첫 분석’ 보도를 내고 대법원이 사용자 편을 드는 ‘반노동 정리해고 판결’을 낸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이 정리해고 반대 파업을 예외없이 ‘불법’이라 판단하며 “근로기준법상 요건이 명확해 사법구제가 가능하다”는 이유였지만, 이 권리구제가 사실상 이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도 사설로 대법원의 잇단 기업편 드는 보수적 판결 움직임을 직접 지적했다.

이인근 지회장도 정리해고 제도의 문제를 짚는 보도가 절실했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 24조는 해고요건으로 4가지를 규정해요. 그런데 법원이 이 규정을 완화해왔죠. 이 부분을 보도해야 하는데, 대부분이 하나의 사건만을 알리는 보도였어요. 그러다 보면 일반 시민들도 ‘사업자는 해고 정당하다는데 왜 노동자들은 싸울까? 떼 쓰고 있는 거다’라고 생각하게 되죠.”

⑥ 김무성의 ‘강제사과’, ‘주류언론’의 첫 보도

2015년, 대다수 일간지가 콜트콜텍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노조혐오 발언 강제사과’ 사건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취업규칙 변경 등 ‘쉬운 해고’를 밀어붙일 무렵 사달이 났다.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연일 노조 때리기 발언을 이어가다 콜트콜텍 노조를 겨냥해 “강경노조 때문에 건실한 회사가 아예 문을 닫았다”고 발언했다.

한겨레는 ‘이런 비뚤어지고 천박한 노동관을 가진 사람은 정치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다’며, 경향은 ‘부적절할 뿐더러 사실관계도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끊이지 않자 한국일보도 8일 뒤 ‘절제를 촉구’했다. 이인근과 방종훈 지회장은 새누리당 당사 앞으로 투쟁 거점을 옮기고 사과를 요구하는 노숙농성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김무성 대표는 이듬해 8월, 발언 1년 만에 사과했다. 법원이 명령한 ‘강제 공개사과’였다. 매일경제와 국민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에선 이것이 첫 콜트콜텍 보도가 됐다. 이후 지금까지 조선과 중앙은 콜트콜텍 사안을 1건도 보도하지 않았다.

▲ 국민일보 매일경제 조선일보 등 보수지와 경제지가 콜트콜텍 문제를 보도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 국민일보 매일경제 조선일보 등 보수지와 경제지가 콜트콜텍 문제를 보도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⑦ ‘양승태 사법거래 의혹’ 떠들썩, 오히려 언론에 가장 서운했던 시기

5년 싸워 얻은 판결이 10개월 만에 뒤집힌 실마리가 드러났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재판거래 정황’에 콜텍 대법원 파기환송 사건이 포함된 사실이 지난해 5월 밝혀졌다. 방종운 콜트지회장은 7월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재심을 요구하며 노숙농성에 들어갔다. 그는 급성뇌경색으로 쓰러졌지만 퇴원한 뒤 곧바로 돌아와 농성을 이어갔다.

기타 노동자들에겐 언론이 원망스러운 시기였다. 재판거래 의혹을 받은 사건 가운데 콜텍은 좀처럼 보도되지 않았다.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는 30명의 희생자를 낳았고, KTX도 희생자가 발생했잖아요. 콜텍은 오랜 투쟁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다 보니, 한편으론 ‘사람이 안 죽어서 관심도가 떨어지나’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죠.” 2018년 말 시민사회단체들은 ‘콜텍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렸다.

⑧ 끝장투쟁으로 “거리인생 마무리”, 콜트는 진행형

올초 콜텍공대위가 ‘끝장투쟁’을 선언했다. 그즈음 노사교섭도 시작됐다. 박영호 사장은 정리해고 사과와 복직 요구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며 요지부동이었다. 교섭은 8차례 결렬됐고 콜텍지회 임재춘 조합원이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노사는 결국 지난달 23일 회사의 ‘깊은 유감’ 표명과 명예 복직, ‘위로금’ 지급 등에 합의했다. 임재춘 조합원의 단식이 42일을 맞던 날이다.

이인근 지회장은 이튿날 “지회장으로 인사드리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우리가 떼를 쓰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4464일 이어진 국내 최장기 투쟁 끝에 콜텍 노사가 합의한 지난달 22일 임재춘 콜텍지회 조합원은 콜텍 본사 앞 농성장에서 '이 합의서 한 장 받으려 13년 싸웠다'며 동료 조합원들과 눈물을 흘렸다. 사진=콜텍공대위
▲ 4464일 이어진 국내 최장기 투쟁 끝에 콜텍 노사가 합의한 지난달 22일 임재춘 콜텍지회 조합원은 콜텍 본사 앞 농성장에서 '이 합의서 한 장 받으려 13년 싸웠다'며 동료 조합원들과 눈물을 흘렸다. 사진=콜텍공대위

이 지회장의 말은 대법원 앞 콜트 농성장이 남아있던 언론에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우리 투쟁은 그 자체로 전국 국민들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언론은 다르잖아요. 정리해고 제도 근본취지와 어긋난 해고와 관련 판결들을 조명하고, 그게 노동자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도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노동자들을 위한 보도를 해 주시길 바라요.”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