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동 A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어머니와 단둘이 생활하던 아이였다. 학교는 A의 어머니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자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수색에 적극 나서지 않다 다른 지역에서 신고를 접수한 뒤 A 모녀를 찾아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A의 몸에서 학대 흔적을 찾았다. A를 어머니로부터 떼어내 아동쉼터에서 보호해야 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기존 절차에 따라 A를 보호할 아동쉼터를 찾았지만, 지역 내 모든 쉼터가 A를 거부했다. A의 국적이 없단 이유에서다. A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한국어밖에 할 줄 모르지만, 이주민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가 이혼하는 과정에서 주민등록이 말소됐다. 정부는 학대피해 아동과 보호쉼터에 지원비를 제공하지만, A의 경우를 포함한 이주아동의 경우는 예외다. A는 쉼터 4곳에서 거부당한 끝에 아동쉼터 아닌 비인가 미혼모쉼터에서 지내고 있다.

이주민 보호자로부터 학대를 당하는 아동들이 A와 같이 국적을 이유로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보호시설이 이주아동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정비하라’고 권고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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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등록 이주 아동들이 그린 그림들이 경기도의 한 외국인근로자센터에 걸려있다. 사진=노컷뉴스
▲ 미등록 이주 아동들이 그린 그림들이 경기도의 한 외국인근로자센터에 걸려있다. 사진=노컷뉴스

보건복지부가 2016년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이주아동 학대 의심사례 신고 건수는 증가 추세다. 2013년 24건에서 2014년 64건, 2015년 94건으로 늘었다. 그러나 피해아동이 복지시설에 입소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2013~2014년에 각 2명, 2015녀 5명에 그쳤다. 생계비 지원을 받는 아동도 매해 1명뿐이다.

이주인권단체 ‘아시아의 창’ 이은혜 변호사는 “현행 제도 아래 아동쉼터가 학대피해 이주아동을 받지 않는다고 탓할 수만은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는 상황에선 아동쉼터가 이주아동을 보호하기 부담스러워하는 건 당연하다는 얘기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복지부 지침인 ‘2019 아동분야 사업안내’를 보면, 정부와 지자체는 아동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아동과 학대피해 아동에게 생계비·교육비·의료비 등 기초생활보장급여를 지원한다. 필요할 경우 긴급지원도 제공한다. 보호쉼터엔 아동 1인당 운영비와 지원비를 지급한다. 그러나 이주아동은 난민인정자가 아닌 이상 급여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은혜 변호사는 “이주아동이 지원받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특히 미등록 아동의 경우 쉼터가 ‘혹시라도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책임을 떠안을까’ 더 곤란해 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밖에 모르고 주민등록번호도 주어진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미등록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꽤 있다. 이들에 대한 집계는 이뤄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섰다. 인권위는 지난해 1월 복지부와 법무부를 상대로 ‘학대피해 이주아동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권고’를 발표했다. 복지부엔 학대피해 이주아동에 대해 △보호조치를 의무화하고 △아동복지시설이 입소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지원도 제공하라고 권고했다. 법무부에는 필요한 경우 학대피해 이주아동의 체류 기간을 연장하거나 자격을 부여하라고 권고했다.

▲ 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이제는 예방해요’ 홍보영상 갈무리
▲ 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이제는 예방해요’ 홍보영상 갈무리

복지부는 이 권고를 사실상 거부했다. 법무부는 수용의사를 밝혔지만, 복지부는 답변시한(90일)이 훨씬 지난 11월에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사항’이라며 불수용 의사를 밝혔다.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복지부가 보호와 지원을 거부하는 동안, 피해 당사자인 이주아동과 어려운 여건에도 아동을 보호하려는 시설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고 비판했다.

연구소는 지난 3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내고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부모에 의해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이주해온 아동들, 그런데 학대까지 당해 기댈 곳 없어진 아동들을 언제까지 외면하겠는가. 어린이날에 맞춰 아동권리축제를 개최하겠다는 복지부에 진지하게 묻고싶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한편 인권위는 지난 2일 성명을 내고 “한국이 비준한 UN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이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하며 태어나자마자 이름과 국적을 가지고 보살핌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했다”며 “법적 지위와 국적에 관계없이 대한민국에 태어난 모든 아동의 출생과 신분을 증명하는 보편적 출생등록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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