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어머니가 한국인 아버지와 결혼한 뒤 한국에서 태어난 8살 A는, 아버지가 사망한 뒤 친척들에게 입양됐다. 그러나 A가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친척들은 친생자 소송을 통해 A를 파양했다. A는 그때부터 ‘미등록 체류 아동’이 됐고, 혼자 양육을 떠안게 된 어머니는 형편이 어려워지자 A를 더 이상 학교에 보내지 않고 함께 떠돌이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약 8개월 뒤 발견된 A의 몸에는 어머니로부터 당한 학대 흔적이 남아 있었다.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다문화위원회 주최로 열린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의 교육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소위 ‘다문화 가정’ 출신 자녀들이 처한 어려움들이 토로됐다. 이주배경 아동들이 국내출생, (외국 출생 후) 중도입국, 미등록 등으로 분류되는 가운데 ‘미등록’ 아동들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실정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중도입국 청소년 실태 및 자립지원 방안 연구, 2016년)에 따르면 공교육제도 밖 중도입국 청소년 비율은 약 30%로 추정된다. 

교육부의 다문화학생 통계는 공교육에 진입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미등록 아동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실효적 통계는 미비한 상황이다. 출생등록이나 외국인등록이 돼 있지 않은 아동은 나이도 거주지도 알 수 없어 하루아침에 사라지더라도 찾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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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강 이주와 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미등록 이주 아동은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 체류하면서 낳은 아이들이라 생각하는 게 대부분인데 굉장히 다양한 환경에서 생겨나고 있다”며 “결혼이민자로 입국했다가 한국인과 혼인관계가 끝나고 다른 사람과 사이에서 아이를 낳은 경우 체류 자격을 연장하지 못하거나, 영주권·국적을 취득 못한 상황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있다. 최근 들어서는 난민신청을 했다가 인정이 불허된 사람들이 체류하게 되면서 미등록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비준국가인 한국은 이주배경 아동들에게 공교육 진입을 허용한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2008년부터 초등학교, 2010년부터는 중학교에도 출입국 사실증명이나 외국인등록이 없는 외국 국적 아동의 전·입학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의무교육 권리를 ‘국민’에게 한정하는 교육기본법에 의해 의무교육 대상에서는 이주배경 아동이 제외돼, 부모의 방임이나 학대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얻지 못하고 있다. 

김 연구위원은 “의무교육대상이라는 건 학교를 가야 한다는 것 뿐 아니라 다니지 않고 있으면 찾아가야 하는 게 의무인 것”이라며 “갑자기 연락이 없이 결석이 장기화될 경우 아동 소재가 파악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해 아동 안전을 확인하는 절차가 이주아동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다문화위원회 주최로 열린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의 교육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 사진=노지민 기자
▲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다문화위원회 주최로 열린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의 교육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 사진=노지민 기자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강제 퇴거 집행을 유예하는 방식의 법무부 ‘불법체류 학생의 학습권 지원방안’ 지침 한계도 지적된다. 한국에 들어와 초·중·고교를 마치고 대학 입시에 합격하더라도, 유학 체류비자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진학하지 못하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한국에서 자랐기에 할 줄 아는 언어는 한국어 뿐, 본국에 가족이 없어 일용직으로 전전하는 사례들이 나오는 이유다.

양계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주배경청소년을 ‘이주배경’보다는 ‘아동・청소년’이라는 데 초점을 두어 정책을 추진해,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모든 아동・청소년은 그들의 국적이나 기 타 배경에 상관없이 모두 ‘차별 없이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지금까지 국적 또는 등록여부에 따라 교육권이 제한되었던 청소년들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현재의 제도 및 절차들을 개선해 나아가는 것이 한국사회를 포용사회로 이끌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은이 시흥시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센터장은 “시・도별 다문화인구 비율이 다르고 같은 지역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다문화 학생이 많은 지역의 학교와 그렇지 않은 지역 학교의 경우 지원되는 정책과 서비스의 갭이 너무나 크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교육권이 ‘운’에 의해 결정되고 ‘복불복’으로 주어지고 있다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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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서울시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라 중학교까지 입학할 수 있다고 하지만 학교에서 입학을 거절하는 경우가 있고, 경기도교육청은 각 시·군에 1곳 이상 학교를 지정해 한국어 시험 보고나면 학적을 받을 기회는 준다는 것이다. 강 센터장은 “교육부에서 보다 강력하게 공교육진입 문턱을 최소로 낮추고 이것을 전국에 평준화 시킬 수 있는 정책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문화’ 용어에 대한 문제 의식도 제기됐다. 문화적 소수자들을 가리키는 수식어로서의 ‘다문화’ 용어의 사용은 이들을 대상화·타자화하고 다문화 사회 문제를 문화적 소수자 문제로 한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비판이다. 

서광석 인하대학교 이민다문화정책학과 교수는 “다문화(비다문화), 다문화가정(자녀, 학생, 청소년), 외국인주민, 이주민(이민자) 등 다문화사회 즈음한 각종 용어들이 혼란스럽게 하며 특정 용어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집단으로 몰아가기도 한다”며 “공공성이 확보된 표준화된 용어, 학문적으로 접근한 전문적 용어, 정부의 공식 용어 등 정립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서 교수는 또 “법무부, 여성가족부, 교육부 등 정부 여러 부처에서 이민(다문화, 외국인) 관련 업무가 분절적으로 운영이 되다보니 중앙부처의 기획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이민정책 업무가 정부 여러 부처에 나누어 기획, 집행이 되다보니 유사・중복사업 등으로 예산 투입대비 그 효과 또한 미미하다”며 관련 정책을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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