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집회 금지 장소 조항이었던 집시법 11조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현재 국회에는 이에 대한 개정안이 여럿 발의된 상태다. 하지만 개정안의 대부분이 집회 금지 규정을 유지하며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단서를 두는 식이다. 공권력은 제한과 금지가 넘쳐나는 집시법을 들먹이며 언제나 탄압해왔다. 이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면서 끊임없이 목소리와 행동을 이어온 것이 집회의 자유를 지켜온 역사다. 집회 금지 성역 규정에 다름 아닌 집시법 11조를 이유로 가로막혀왔던 목소리들을 다시 들어본다. 국무총리공관, 국회의사당, 대사관, 법원, 청와대 앞, 그때 그곳에서 내고자 했던 다양한 외침들이 모여 지금 함께 요구한다. 집회 금지 성역을 열어라! 집시법 11조를 폐지하라! - 편집자주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대한민국 헌법 21조는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신고제라는 미명 아래 허가 받은 집회만 허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각종 제한과 금지에 관한 조항을 근거로 부당함에 대항하는 목소리를 처벌해왔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집시법 11조다.

노조파괴 갑을자본 편에 선 공권력

갑을오토텍지회는 노조파괴라는 불법과 범죄행위에 맞서 싸워왔다. 부당한 공권력에 항의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이유로 검찰은 집시법 11조 위반으로 기소하고, 법원은 처벌했다. 법의 집행과 판결에 정의는 없었다.

2014년 12월 사전 모집된 비리경찰과 특전사 출신 용병의 위장채용으로 시작된 갑을자본의 신종노조파괴는 4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불법과 범죄가 가능했던 이유는 노조혐오로 가득한 갑을자본의 탐욕이 너무 컸던 이유도 있지만, 공권력의 방조와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2018년 9월에서야 법원의 화해권고조정에 의한 노사합의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4년은 기억하기조차 싫은 상처고, 여전히 몸과 마음은 아프다. 20년 넘게 함께 했던 동료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은 2년이 지났음에도 감당하기 힘들다.

2년 전인 2017년 이맘때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노조파괴의 주요수단으로 확인된 직장폐쇄 9개월 째였고, 이로 인한 조합원들과 가족들의 고통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갑을자본은 해결을 위한 그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았고, 이에 노동조합은 교섭재개를 위해 불법대체인력 투입을 막지 말라는 회사의 요구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집중교섭을 통해 이틀이면 합의할 수 있다던 대표이사의 태도는 돌변해 교섭을 파행으로 끌고 갔다.

노동조합은 살기 위해, 공장 정상화를 위해 직장폐쇄 효력정지를 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했고 4월7일 심리가 종결됐다. 하지만 법원은 심문기일 종료 후 바로 판단하거나 직접 조정에 나섰던 과거의 사례와 달리 이례적으로 결정을 3주 넘게 미루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만다. 4월18일 김종중 열사가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렇게밖에 못해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혹스러웠고 비통했다. 9개월 넘게 지속되고 있는 불법직장폐쇄와 노조파괴는 가족관계 악화, 사회적 고립, 생활고, 건강악화를 가져왔고 삶을 파괴했기에 또 다른 죽음이 발생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노동조합은 절박한 마음으로 4월28일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편파수사와 늑장수사로 사태를 악화시킨 경찰과 노동부, 그리고 이미 수사와 명백한 증거로 불법임이 확인된 갑을자본의 불법대체인력 투입과 부당노동행위 등에 대해 기소하지 않고 있던 검찰을 규탄하고, 또 죽을 수 없다며 직장폐쇄 효력정지 가처분 인용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기각했다. 노동조합의 쟁의행위가 생산에 타격을 입히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업무복귀선언(쟁의포기)을 하지 않았다는 획일적 기준을 들며, 사측이 요구한 천막과 현수막 철거 등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갑을자본이 불법직장폐쇄를 노조파괴의 주요 수단으로 삼았고 그 증거가 법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이를 정당하다고 결정한 것이다. 이에 노동조합은 5월8일 법원을 상대로 ‘이렇게 또 절망을 주십니까’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후 노동조합은 직장폐쇄 효력정지 가처분 재신청을 했고 법원의 조정으로 2017년 6월21일 11개월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긴 시간 지속되었던 직장폐쇄가 끝난다.

촛불정권 이후에도 달라진 건 없다

이후 현장에 복귀해 일을 시작했지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갑을자본은 단체협약 해지를 빌미로 현장을 탄압하며 노동조합을 협박했다. 김종중 열사의 죽음에 대해 사과하라는 최소한의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기에 노동조합은 최소한의 투쟁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어처구니없는 소식을 듣는다. 촛불혁명으로 박근혜가 탄핵된 후 적폐청산을 외치며 당선된 문재인 정권이 국정원 기조실장에 신현수 변호사를.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에 박형철 변호사를 임명했다는 것이었다.

2016년에서 2017년으로 이어지는 겨울, 노동조합은 불법직장폐쇄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중에도 온 힘을 다해 박근혜 탄핵, 적폐청산을 위한 촛불집회에 적게는 20명, 많게는 200명까지 빠짐없이 참석했다. 당장 우리도 힘들지만 권력과 자본의 부당한 세상을 바꾸는데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권이 적폐의 온상이었던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갑을자본의 노조파괴를 기획하고 실행했던 자를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임명하고, 자신이 대전고등검찰청 재직 시 발생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퇴직 후 그 불법을 저지른 갑을자본의 변호를 맡고 있던 자를 반부패비서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들이 청와대 요직에 임명될 경우 갑을자본이 저질렀던 불법과 범죄가 제대로 처벌받을 수 있을지 의심되고 갑을자본의 노조파괴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웠다. 이들의 임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노동조합은 2017년 7월19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전관예우, 거짓변론, 증거인멸 갑올오토텍 노조파괴 공범 신현수, 박형철 해임촉구 및 형사고소’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이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2017년 7월19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 충남지부 갑을오토텍지회는 신현수 국가정보원 기조실장과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 비서관 해임 촉구 및 형사고소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민중의소리
▲ 2017년 7월19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 충남지부 갑을오토텍지회는 신현수 국가정보원 기조실장과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 비서관 해임 촉구 및 형사고소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민중의소리
동료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갑을자본의 횡포를 드러내고 바로잡기 위한 호소로 2017년 4월과 7월, 법원과 청와대 앞에서 열었던 세 건의 기자회견을 공권력은 불법집회라며 기소했다. 재판에서 법원 앞 기자회견은 작년 7월 헌법재판소의 ‘집시법 제11조 제1호 중 각급 법원 부분은 헌법에 합치하지 아니한다’는 결정으로 무죄 판결이 났지만 검찰은 항소한 상태다. 청와대 앞 기자회견의 경우 노동조합은 기자회견을 진행한 것으로 규모와 내용, 진행경과 등을 볼 때 집회가 아니며, 집회금지 장소를 규정한 집시법 11조가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위헌적 조항이라는 주장이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아 유죄로 판결되었다. 청와대 앞 100미터 내 집회금지 헌법소원에 대한 결정이 났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렇듯 현행 집시법은 ‘집회 및 시위의 권리 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라는 목적과 다르게 권력과 자본의 잘못을 고발하고 정의구현을 외치는 목소리를 탄압하는데 쓰이고 있다. 부당한 공권력에 대한 항의로부터 권력기관들을 보호하는 수단에 불과한 집시법 11조는 폐지되어야 한다. 나아가 집시법 11조만이 아니라 각종 제한과 금지로 집회의 자유를 가로막는 집시법의 많은 부분이 고쳐지고 없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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