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대화의 희열’ 4월20일 방송분에서 제작진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작가 재능을 발견한 계기가 학생 운동과 감옥이었다고 소개했다. 유 이사장은 1980년 5월17일 계엄법 위반으로 잡혀가 두 달간 계엄사 합수부 조사실에 갇혔던 과거를 끄집어 냈다. 그는 “평소에는 그때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 4월20일자 KBS 2TV '대화의희열' 한 장면.
▲ 4월20일자 KBS 2TV '대화의희열' 한 장면.
이날 방송에서 그의 감옥생활은 과하게 ‘미화’됐다. 19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 주모자로 몰려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뒤 쓴 ‘항소이유서’ 필력을 극찬하는 과정에서 교도소 독방 생활 덕분에 ‘명문’이 탄생했다는 식이었다. 그리고 논란은 1980년 당시 조사 과정에서 유 이사장이 “감출 것은 다 감췄다”고 말한 대목에서 시작됐다. 그는 “진술서를 잘 써서 비밀조직을 지켰다”고 말했다.

그러자 1980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5선)이 유 이사장을 비판했다. 심 의원은 “유시민 이사장의 당시 피체(被逮) 상황이 신군부에 상세 좌표를 찍어줄 만큼 절박했었는지 궁금하다. 80년 동료들에게는 겨누어진 칼이 된 진술서에 대해 유 이사장은 ‘수사국장도 감동시킨 문장력을 발견한 계기였다’고 공영방송 전파를 통해 자랑했다”고 비판했다.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었던 유 이사장과 심 의원은 39년 전 동지적 관계였다.

▲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 ⓒYTN화면
▲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 ⓒYTN화면
이후 일요신문이 유 이사장의 1980년 당시 진술서 일부를 공개하면서 파장이 커졌다. 결국 유시민 이사장은 5월1일 유튜브로 해명했다. 약 1시간짜리 영상에서 유 이사장은 KBS 방송에서와 마찬가지로 “감출 것은 다 감췄다”며 심 의원이 이 사안에 시간을 쏟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요시찰 대상이었던 자신이 일병 첫 휴가를 나와 또 다른 요시찰 대상이었던 일병 심재철의 군 면회를 갔던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선 심재철에 대한 애증도 느껴졌다.

하지만 심재철 의원은 비판을 이어갔다. 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80년 서울역 광장에 섰던 우리 세대 대부분은 크건 작건 시대에 대한 부채의식을 느낀다. 미완으로 끝난 80년 민주화운동은 훈장이 아니라 아픔으로 가슴에 새겨질 수밖에 없다”며 유 이사장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거듭 비판했다. 언론은 두 사람의 주장을 ‘공방’으로 보도하기 시작했고, 극우친박 성향 유튜버들은 ‘밀고자 유시민’ 프레임으로 그를 위선자로 묘사하며 공세를 퍼붓고 있다. 이에 유 이사장은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진실은 무엇일까. 19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 인사들은 유시민 이사장이 설령 심 의원 주장대로 다 불었다 하더라도 비판의 대상이 되긴 어렵다고 했다. 1980년대 말 서울대에서 학생운동을 경험한 한 언론인은 “실제로 비밀조직을 지켰는지 다 불었는지 진위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한 뒤 “그 당시면 누구든 들어가면 불었을 것이다. 고문당하면 거짓 진술도 할 수 있다. 모두 이해한다. 중요한 건 감옥에서 나온 이후의 행적”이라고 말했다.

진술서에 누구를 적어냈든, 구타와 고문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그 시대를 살아냈던 사람들은 다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39년 전 서울대생 심재철과 유시민은 부당한 군부독재에 맞서 싸웠고 야만의 공간 앞에서 가장 나약한 몸뚱이와 마주했다. 시간이 흐르며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은 달라졌지만 두 사람이 그 당시 겪었던 괴로움은 동일했다. 두 사람 모두 군부폭력의 피해자다. 그럼에도 심 의원이 유 이사장에게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에선 심 의원이 본인의 부인에도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3위를 기록 중인 유 이사장 ‘공격수’를 자처하며 자유한국당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함이란 해석도 나온다. 계산된 분노라는 것. 이에 발맞춰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유시민 흔들기’도 시작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1980년 유시민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 언론이 몇이나 될지는 회의적이다.

‘의도된 흔들기’라는 해석과 별개로, 유시민 이사장과 심재철 의원 모두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1980년대 초 서울대에서 학생운동을 경험한 한 언론인은 “그때 당했던 고문과 경험으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이뤄낸 역사는 심재철·유시민처럼 몇몇 오픈된 사람들이 전유할 사안이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민주화운동이 소비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방송에 나가 장황하게 안 불었다고 이야기한 사람이나, 그걸 가지고 시비 붙는 사람이나 둘 다 적절치 않다. 당시 상황은 방송에 나가 자랑삼아 얘기할 거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상에 제대로 된 흔적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진 ‘동지’들이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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