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18일 워시 웨스트모어랜드 연출,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영국 영화 ‘콜레트’를 수입한 영화사 ‘퍼스트런’이 흥미로운 보도자료를 보냈다. 약 한 달 전인 3월27일에 개봉한 ‘콜레트’가 적은 상영관 수에도 불구하고 누적 관객을 4만 6000여명 이상을 모아 전격적인 상영관 확대를 결정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콜레트’는 개봉 첫 주 169개 스크린에서 상영되었지만, 둘째 주부터는 바로 스크린수가 40여개 수준으로 추락했다. 관객은 2만 8000여명 밖에 모으지 못했다.

일반적인 영화였다면 이 순간부터 종영과 VOD 발매를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콜레트’는 달랐다. SNS에서는 ‘콜레트’가 ‘여성 서사 영화’라는 이유로 극장에서 내려가기 전에 최대한 많이 보고, 주변 사람들도 보게 하자는 ‘관람 운동’이 벌어졌다. ‘콜레트’는 20세기에 프랑스에서 활동한 실존 인물이자 초기 페미니즘적인 경향이 담긴 소설을 주로 집필했지만, 초창기에는 자신의 이름 대신 남편의 이름으로 책을 내야만 했던 작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이야기를 그린 전기물이기 때문이다.

그 덕분이었을까. 스크린수는 계속 30~40개를 간신히 유지했지만 ‘콜레트’의 관객수는 이후로도 계속 늘어났다. 4월18일에 누적 관객 4만 6000여명을 기록한 ‘콜레트’는 4월25일 현재 총 4만 9271명의 관객을 기록하며 곧 5만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콜레트’만의 일은 아니다. 2015~2016년 여러 여성혐오 범죄 발생을 계기로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의 물결이 흐른 이후, 2018년부터 영화 영역에서는 적극적 관람과 지지를 통하여 ‘여성 서사 영화’에 힘을 실어주자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이러한 운동으로 인하여 작년 가장 크게 주목 받았던 작품은 이지원 연출, 한지민 주연의 ‘미쓰백’이었다. 전과를 지녔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계속 소외받는 성인 여성이 가정 폭력으로 상처 입은 어린 여자 아이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미쓰백’은 녹록치 않은 과정 속에 제작됐다. 오랜 시간 투자를 받지 못하다 겨우 순제작비 16억 5000만원의 저예산으로 제작된 ‘미쓰백’은 작년 10월 11일 개봉했지만, ‘창궐’과 ‘암수살인’에 밀려 3위의 성적을 기록하며 저조한 흥행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점차 ‘미쓰백’의 종영이 점쳐지던 중에 SNS 상에서 ‘미쓰백’을 감상하자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 영화 '미쓰백' 포스터.
▲ 영화 '미쓰백' 포스터.

여성 감독이 여성을 주연으로, 여성의 고통을 다룬 작품이 흥행에 성공했다는 성과를 입증해야 앞으로도 이러한 작품이 계속 제작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 결과 ‘미쓰백’은 총 관객수 72만 2560명으로 손익분기점 70만명을 넘을 수 있었다. 비록 100만 관객 돌파에는 실패했지만, 최소한 제작비 회수가 가능한 성과를 관객들의 힘으로 만들게 된 것이다.

이외에도 2018년에는 민규동의 ‘허스토리’, 전고운의 ‘소공녀’, 이환의 ‘박화영’이 ‘여성 서사 영화’로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흐름은 2019년에도 이어져 ‘콜레트’는 물론 여성 히어로를 전면에 내세운 디즈니-마블의 영화 ‘캡틴 마블’, 그리고 3·1 운동의 상징 유관순의 옥중 투쟁을 그린 ‘항거 : 유관순 이야기’가 관람 운동의 대상이 됐다. 5월9일 개봉을 준비 중인 라미란, 이성경 주연의 ‘걸캅스’ 역시 4월부터 관람 운동의 분위기가 싹트고 있다.

이렇게 여성 서사 영화에 대한 요구가 싹트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새롭게 전개된 페미니즘 운동의 여파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오랜 시간 여성 배우가 주연으로 나서는 것은 물론, 여성 감독, 여성의 삶과 심리가 중심이 되는 영화가 쉽게 나오기 어려웠던 상황이 존재한다. 여성들은 단순히 여성 서사 영화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적극 관람 분위기를 조성해 ‘영화 산업 시장’에서 여성 서사 영화에 대한 평가가 상승하여 더욱 많은 여성 영화가 제작될 수 있는 환경이 정착되기를 원하는 방향으로 운동을 이끌고 있다.

▲ 걸캅스 영화 포스터.
▲ 걸캅스 영화 포스터.

이런 상황에서 ‘걸캅스’의 투자배급사가 CJ 엔터테인먼트(이하 CJ)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 초중기에는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을 만들다 점차 박근혜 정권에 대한 비난이 증가하고 정권 교체가 확실시 될 때는 ‘마스터’, ‘1987’ 같은 영화를 만드는 등 일찌감치 CJ는 분위기 변화에 민감히 반응했다. CJ가 ‘걸캅스’를 제작한 것에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점차 여성 서사 영화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짚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CJ의 이러한 움직임을 근거로 여성 서사 영화 관람 운동이 성공했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쉽지 않다. CJ의 지난 행보가 그랬던 것처럼, 자본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이익에 충실할 뿐이다. 우울한 상상이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쉬’가 더욱 거세질 때에도 CJ가 꾸준히 여성 서사 영화를 만든다고 확증하기는 어렵다. 시장의 이해관계를 넘어 영화인들이 주체적으로 젠더의 문제를 고민할 때, 여성 서사 영화 관람 운동이 없이도 여성 영화에 자연스레 관객들이 방문할 때. 그 때 비로소 운동은 운동을 넘어 하나의 일상이 되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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