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적폐수사와 국정농단과 관련해 사실일 경우 타협하기 어렵고 수사를 통제할 수도 없다며 분명한 입장을 내놓았다.

문 대통령은 2일 오후 청와대 본관 2층에서 사회원로들과 오찬 간담회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날 간담회는 2시간동안 진행됐고 문재인 정부 출범 2주년을 앞두고 사회계 원로의 평가와 제언을 듣기 위해 마련됐다. 이홍구 유민문화재단 이사장(전 국무총리) 등 원로 12명과 청와대 비서실장, 정책실장, 정무수석, 사회수석 등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어떤 분들은 이제는 적폐수사 그만하고 좀 통합으로 가야 않느냐, 그런 말씀도 많이 듣다”며 “살아 움직이는 수사에 정부가 통제할 수도 없고 또 통제해서도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개인적으론 국정농단, 사법농단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주 심각한 반헌법적인 것이고, 또 헌법 파괴적인 것이기에 타협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빨리 진상을 규명하고 청산이 이루어진 다음, 그 성찰 위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나가자는데 공감이 있다면 그 방안에 관해 얼마든지 협치하고 타협도 할 것인데 국정농단이나 사법농단 그 자체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입장이나 시각이 다르니까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아마도 우리 사회에 걱정이 많으실 것”이라며 “저도 정치라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고 절감하고 있다. 그래도 각오했던 일이기에 어떻든 제가 반드시 감당해 내고 국민께 실망을 드리지 않아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정치권이 정파에 따라서 대립이나 갈등이 격렬하고 그에 따라 지지하는 국민 사이에서도 갈수록 적대감이 높아지는 현상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협치를 위해 문 대통령은 과거 어느 정부보다 야당 대표들, 원내 대표들 자주 만났다고 생각하고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도 드디어 만들었으나 벌써 2달째 못 열리고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주장에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윤여준정치연구원장)은 “성과를 내야 할 때인데, 국회가 극한대결로 가면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게 순조롭게 안 된다”며 “야당이 극한저항으로 나오면, 대통령이 포부를 펴기 힘들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민주당은 여당된지 2년이 됐는데, 야당처럼 보인다”며 “이 국면에서는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풀기가 힘들다”고 주문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사회원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간담회를 열고 있다. 이홍구 전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사회원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간담회를 열고 있다. 이홍구 전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김우식 전 청와대 비서실장(창의공학연구원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의 문제점을 “첫째는 인사로, 한 계파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두의 대통령”이라며 “탕평과 통합, 널리 인재등용을 해주시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밖에도 김 전 실장은 “두 번째 국민불안이다. 경제·정치·사회적 불안, 국제정세적 불안을 빨리 종식시켜야 할텐데, 그 중 경제불안을 해소해야 한다”고 했고, 탈원전 문제를 들어 “에너지 안보와 직결돼 있다. 정부가 탈원전이라는 명칭보다 에너지믹스, 단계적 에너지 전환으로 말했어야 한다”고 했다.

김명자 전 환경부장관(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요즘 뉴스를 보지 않고 정치에 혐오를 느끼는 분이 많다. 국가적 불행”이라며 “모든 이슈에서 진보와 보수 두 갈래로 갈라져서는 해결하기 어렵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어떻게 분열에서 통합으로 이끌지’다. 결국 우리 모두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자신감을 가지라, 언론보도 하나하나를 쫓다보면 본질을 놓친다 등 격려성 주문도 나왔다. 조은 동국대 명예교수(사회학)는 “우리는 왜 산업화 수출에만 열심이고 왜 민주화 성과는 얘기하지 않는가”며 “지금 당장의 고용, 못먹고 사는 것에만 초점 맞추지 말고 자신감을 가져달라, 우리는 지금의 민주주의 발전을 이루었다”고 강조했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사회학)도 “너무 잘하려는 것보다 천천히 전문적으로 가는 방안을 찾을 때”라며 “위험을 감수하며 일할수록 망쳐지는 사회다. 하면 된다는 식으로 가면 어느 대통령도 힘들다”고 주문했다.

특히 안병욱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문재인정부가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 관련해 의미있는 일을 해왔으나 아직 ‘남북분단’만큼은 해결되지 않았다면서도 문재인 정부가 이 난제를 해결하려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사관이라면 반드시 이걸 기록으로 남기겠다고 했다. 안 원장은 “매일 언론의 목소리를 쫒아가면 사태의 본질 파악이 안 된다”며 “긴 안목에서 기존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뛰어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30년 전, 1989년 새로운 통일방안을 일련의 과정을 거쳐 합의를 이뤘다”며 “여야합의가 원천적으로 어렵다는 사람도 있지만, 지속적 대화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우당장학회 이사장)은 “일본과 관계가 좋지 않다”며 “일본은 레이와 시대로 바뀌는 등 새로운 전환점을 찾고 있다. 국왕이 바뀌었으니, 새로운 움직임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고 했다.

김영란 전 대법관(대법원 양형위원장)은 청탁금지법 제정 때 이 법이 공무원과 국민을 압박할까봐 우려가 많았다면서도 국민이 이 법안에 학습이 잘 이루어졌고, 현재 법안이 시행되고 있다고 했다. 김 전 대법관은 다만 “지금 국민은 획일적 기준과 혜택보다 개별적이고 맞춤형 행정과 혜택을 기반으로 사고하는 수준높은 국민으로 변했다”면서 “제도와 행정은 여전히 양적 기준으로만 사안을 본다”고 지적했다.

삼성백혈병위원회, 구의역사고 위원회, 신고리원전공론화위, 김용균사고조사위원 등을 맡아온 김지형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전 대법관)은 “우리는 사회적 논의, 사회적 파트너십을 많이 얘기하는데, 정작 사회적 논의의 참여 주체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며 “참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기본적인 사회적 논의 참여 파트너로서 책임을 다하는 건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조언을 들은 문 대통령은 자신의 견해도 다시 밝혔다. 문 대통령은 “종북좌파라는 말이 어느 한 개인에게 위협적인 말이 되지 않고, 생각이 다른 정파에게 위협적인 프레임이 되지 않는 그런 세상만 되도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진보·보수의 이런 낡은 프레임은 이제는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됐다”며 “오히려 상식, 실용, 이런 선에서 판단해야 되고 4차 산업혁명이 불러일으킬 엄청난 산업구조의 변화, 일자리의 변화, 사회 변화에 우리가 대응해 나갈 것인가, 생각하면 진보·보수 이런 것은 거의 의미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한일관계를 “과거의 불행한 역사 때문에 파생되는 문제들이 나오고 그것으로 양국 관계가 때로는 불편해진다”며 “양국 관계의 어떤 근간이 흔들리지 않게끔 서로 지혜를 모아야 되는데. 요즘은 일본이 그런 문제를 자꾸 국내 정치에 이용하면서 문제를 증폭시켜 아쉽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사회갈등을 “따져보면 우리 사회의 정책 전반이 그냥 거대한 갈등으로 뭉쳐져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싸고 찬반이 나뉘고 실제로 피해 보는 국민도 있고, 노동시간 단축도 마찬가지라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변화 모두에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를 해결하려고 더 큰 틀의 사회적 대화와 그것을 통한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한데, 아직은 그것이 활성화 돼 있지 않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원로들에게 “더 독려해 주시고 말씀해 주시고 마음들을 모아주신다면, 큰 힘이 되겠다”고 당부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사회원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간담회를 열고 있다. 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사회원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간담회를 열고 있다. 사진=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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