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19세에 첫 아르바이트를 했다.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일이었다. 사장의 차를 타고 이동해 어딘지도 모를 곳에 내려 자신에게 할당된 양의 전단지를 뿌렸다. 정말 열심히 했다.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에 사장은 A에게 몇 개의 장소를 짚어주며, 네가 그곳에 전단지를 뿌리지 않았노라고 말했다. A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분명 사장이 짚은 곳은 빈틈없이 전단지를 뿌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장은 막무가내로 달리던 차를 세우고 A에게 말했다. "야, 너 내려." 항변도 못하고 임금도 못 받은 채로 A는 해고되었다. 달리던 차 안에서 사장의 그 말을 A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후 30대 초반까지 5인 미만, 비정규직 사업장을 전전하였다.

그의 친구 B도 마찬가지다. B는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 같은 중화요리식당에서 배달 일을 했다. 4대 보험 가입은 B에게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B는 사회보험 혜택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다. 알려주는 이도 없었고, 사장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고가 났을 때도 사장이 병원비를 대줬지만, 요양기간 휴업급여 지급이나 사고 후유증 치료비 보장 등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배달업종의 특성상 B는 잦은 사고에 노출되었고, B는 사고가 날 때마다 사장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B가 근로기준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을 것이다. 4인 이하 사업장은 근로기준법 일부 적용 배제 대상 사업장이기 때문이다. 11년 동안 일하던 곳에서 퇴사했을 때, 그는 국가로부터 자신의 실업상태를 인정받을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구직 지원금을 받으며 재취업을 준비하지 못했고, 다시 4인 이하 사업장에 취업할 수밖에 없었다. B는 첫 직장에 청춘을 바쳤지만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덧 30세 중반이 된 그가 구하게 된 두 번째 직장도 역시 4인 이하 사업장이었다. 그런 그에게 국민연금은 너무 버거운 대상이었다. 그는 현재까지도 국민연금을 붓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에게 노후에 대한 대책은 공백상태다.

두 사람은 모두 4인 이하 사업장에서 첫 직장생활을 했고, 그것이 30대 중후반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중년을 맞는다. 그들은 노년을 계획하지 않는다.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11일, 헌법재판소는 ‘4인 이하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 배제’는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그렇게 공식적으로 그들의 노년은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헌법재판소. ⓒ 연합뉴스
▲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헌법재판소. ⓒ 연합뉴스
4인 이하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우리는 소위 아르바이트로 4인 이하 사업장에서 첫 직장을 경험하는 사회초년생 10대, 20대 노동자들을 심심찮게 만난다. 동네 상권은 거의 대부분이 4인 이하 사업장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마찌꼬바, IT업계, 출판업계 등의 대부분이 4인 이하 사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4인 이하 사업장 종사자는 사업장의 열악함으로 인해 그 직장을 퇴사하더라도 소위 더 좋은 일자리로의 이직이 어렵다.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실직 기간 동안 구직을 위한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하므로, 생활고로 인해 다시금 4인 이하 사업장, 비정규직 일자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4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들이 이직할 때 믿을 것이라고는 사업주가 자신을 덜 착취할지도 모른다는 불투명하고도 불안정한 기대뿐이다.

출판노동자의 경우는 애초 5인 이상 사업장으로의 이직이 어렵다. 한국출판문화진흥원의 ‘2015년 출판산업 실태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 출판기업은 전체의 76.6%가 4인 이하 사업장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업종의 툭성에 따라 5인 이상 사업장으로의 이직이 불가능에 가까운 노동자들도 많은 것이다. 결국 출판노동자들은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업장을 전전하다가 외주노동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시스템의 바깥에서 시스템 내에서의 상식을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차라리 프리랜서의 길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4인 이하 사업장은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SNS에서도 ‘웬만하면 5인 미만 사업장 안 가려고 했는데 들어가게 되었다’거나, ‘(근로기준법 일부 적용 배제 사업장인 것을)알고 들어왔는데도 너무 힘들어 퇴사하고 싶다’는 등의 글들이 넘쳐난다.

그렇다면 4인 이하 사업장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몇 개의 실태조사 보고서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 2016년 한국노동연구원의 ‘4인 이하 사업장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4인 이하 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동자의 수는 358만 7천명에 이른다. 이들의 월 평균 임금은 138만원으로 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의 절반 수준이며, 유급휴가가 주어지는 이는 23.9%, 초과근로수당을 받는 이는 15.0%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4인 이하 사업장 종사자 가운데 10대~20대의 비율은 20%였다. 성별 분포에서는 여성 종사자의 비율이 56.3%로 남성보다 높았다. 여성, 청년 노동자들이 이 사업장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2017년 서울노동권익센터의 ‘서울지역 여성 비정규직 노동실태와 지원방안 연구’ 보고서는 여성 비정규직일수록 영세‧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특성을 가졌으며, 따라서 비정규직 여성의 문제가 영세기업 노동자의 문제와 중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한다. 서울지역 여성비정규직 노동자의 사업체 규모별 분포를 살펴봤을 때 5인 미만 사업장에 종사자가 26.1%로 가장 높았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 5인 중 4명이 5인 미만 사업체에서 일하고 있다고 밝혀 4인 이하 사업장의 비정규직 집중화 현상을 여기서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울며 겨자먹기로 저임금, 장시간 노동과 해고의 위협에 노출된 4인 이하 사업장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사회 최약 계층 노동자들일 수밖에 없다. 노동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나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남성들보다는 젠더차별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여성들, 높은 실업률로 인해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사회초년생들, 청소년들이 다양한 차별들에 떠밀려 4인 이하 사업장으로 가게 된다. 차별에 가장 많이 노출된 만큼 국가는 이들의 권리를 가장 우선해 보장해야 함에도, 도리어 이들을 시스템 밖으로 몰아내버리고 있는 것이다

여성노동자들이 영세사업장에 집중되다보니,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젠더차별이 일상적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성희롱의 문제 역시 심각하게 나타난다. 2018년 한국여성노동자회의 평등의 전화 상담 통계 분석 결과를 보면, 4인 이하 사업장의 직장 내 성희롱 교육 미실시율이 97.7%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동일 규모 사업장에서 가해자는 69.7%로 사장이 가장 많았다. 사업장의 최종 인사결정권자인 사장에 의한 성희롱은 해고 등 직접적인 고용불안정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중 불리한 처우를 경험한 비율이 60.4%로 높게 나타났다. 4인 이하 사업장 여성노동자들은 성희롱에 대한 국가 차원의 보호책 미흡과 노동권 침해에 대한 대책이 없어 위험과 위기를 고스란히 각자가 떠안고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가려진 사실들

이렇듯 4인 이하 사업장의 문제는 단지 사업장 규모의 문제만이 아닌, 한국사회의 여성·청년 비정규직 문제를 관통하고 있다. 여성·청년 비정규직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현 정부의 주요한 국정 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는 “4인 이하 사업장 근로기준법 일부 적용 배제는 합헌“이라고 판결하면서, 4인 이하 사업장 사업주의 영세함을 강조하며, 근로기준법 준수는 4인 이하 사업체에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행정적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1999년 헌법재판소의 판결 내용을 그대로 가져오고 있다. 사용자의 위기가 노동자의 위기보다 우선한다고 본 기존의 판단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사용자의 위기는 고용한 사람의 책임일 뿐이다. 노동자를 고용했을 때 착취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노동자를 고용하면 안 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착취에 대한 사용자의 책임을 용인하였다. 이로서 권력의 불균형은 더욱 강화되었다.

지난 20년 동안 국가는 일관되게 여성, 청년 비정규직이라는 인권의 사각지대 해소를 반복적으로 선전해왔다. 그러나 정부가 바뀔 때마다 형식적으로 거론만 될 뿐,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가 5인 미만 사업장에만 근로기준법 주요 규정을 배제할 만한 합리적 이유가 없으며, 모든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목표로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하라는 내용의 권고가 무색하게 아무런 계획이나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2012년 국회입법조사처는 ‘근로기준법 적용범위 확대방안’에서 “노동자 수를 기준으로 노동관계법 적용을 배제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독일‧프랑스가 종사자 수에 따라 해고 규정을 완화하긴 하지만 이는 고용부담을 덜어줘 고용을 촉진시키려는 취지”라고 보고하였다. 그러나 근로기준법 적용 배제 해소를 위한 어떠한 방안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 그렇게 여성·청년 비정규직의 문제는 사실상 계속 방치되어 왔으며, 인권의 사각지대는 이렇듯 매번 형식적으로 호명됨으로써 삭제되고 있었다. 형식적으로 반복 호명하는 행위는 사실상 그 형식 속에 내용을 가두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해결을 위한 호명이 아닌 호명 그 자체를 위한 호명인 것이다.

2019년 4월11일 ‘4인 이하 사업장 근로기준법 일부 적용 배제는 합헌“ 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 속 가려진 내용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사각지대가 아닌 사각지대 안 국민들을 없애는 국가

인권의 사각지대에 대한 반복적 호명은 그것을 없애가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 조성과 정치적 행동으로 이어가기 위한 의지의 표현이어야 한다. 국가가 사회적 공간을 어떻게 배치하고 구성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인권척도가 결정되는데, 헌법재판소는 이번 판결로 인권의 사각지대로 호명된 '공간'을 블럭화하여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도 무화시키는 공간을 공식화했다.

제도의 변화는 노동자들의 구체적 삶을 바꾼다. ‘비정규직이제그만 1100만 공동투쟁’에서 진행하는 팟캐스트 ‘바꿀래오’ 1회 방송에서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조 위원장이 소개하는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5인의 노동자가 근무하는 A 사업장에서 임금체불을 당한 편집노동자들이 사업주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신고하려고 하였으나, 사업주가 청소노동자 1인을 회유하여 자신이 해당 사업장의 근로자가 아님을 증언하도록 했다. 임금체불 노동자들은 구제받을 길이 없어져버렸다. 노동권 보장이 사업주의 의무에서 벗어나자 그 공간은 협박과 강요가 난무하는 암흑지대가 되어버렸다.

새로운 난민의 탄생

대한민국의 헌법은 제 1조 2항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모든 권리와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선언과도 같은 법조항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법과 제도라는 테두리를 마련해 놓고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2019년 4월11일은 헌법재판소가 헌법 1조 2항을 스스로 부정한 날이다. 국가 내에서 법과 제도의 외부에 존재하는 인간의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어찌보면 난민의 지위와도 같다. 분명히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모순 속에 우리는 놓여있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난민의 지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권리가 없는 사람들의 비운은 그들이 생명, 자유, 행복추구, 또는 법 앞의 평등과 의사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더 이상 어떤 공동체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비극은 법 앞에서 평등하지 않다는 점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한 법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녀가 말하는 난민의 비운과 비극은 지금 한국사회의 4인 이하 사업장의 노동자들의 또 다른 현실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기본권을 결정하는 기관인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11일 국민의 일부를 공식적으로 난민의 지위로 몰아냈다. 우리가 끝없이 반성해야 할 역사의 순간은 그렇게 탄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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