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여야 4당은 자유한국당의 강력한 반발 속에 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지정했다. 한국당이 장외로 나가 결사 투쟁하겠다고 밝히면서, 당분간 ‘포스트(post) 패스트트랙’은 정치권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패스트트랙 저지 국면에서 한국당은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주장을 적지 않게 쏟아냈다. 주요 내용들을 살펴봤다.

공수처로 대통령 측근 봐준다?

황교안 대표는 지난달 29일 비상의원총회 때 “경찰과 검찰이 대통령의 가족과 측근을 수사할 때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언제든 가져와서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며 “공수처가 봐주면 대통령 가족과 측근 수사를 못하게 막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 공수처법 여야4당 안에는 중복 수사 시에 공수처로 옮겨와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 있다. 단 “처장이 수사의 진행 정도와 공정성 논란 등에 비춰 수사처가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 ‘공정성’은 해당 수사기관과 유착 가능성이 있을 경우를 말하기에 대통령과 관련한 사건은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권은희 의원 법안과 2017년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이 제출한 법안에도 대동소이한 내용이 있다.

한국당은 대통령의 뜻에 따라 이뤄질 수 있는 공수처라고 규정하며 측근 봐주기, 정적 탄압용으로 악용할 것이라 우려하지만 이를 막을 몇 가지 안전장치가 있다. 우선 판사, 검사, 경찰 경무관급이 아닐 경우 기소권이 없기에 야당 인사를 겨냥해 기소할 수 없다. 공수처장은 추천위원회를 거쳐 임명하는데 위원 7명 중 6명 이상의 동의로 2명의 후보를 추천한 후 대통령이 1명을 지명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추천위 7명 중 4명을 여야 각 2명씩 추천해 야당이 반대하면 공수처장을 마음대로 뽑을 수 없다.

▲ 4월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비상의원총회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 4월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비상의원총회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비례대표는 지도부가 뽑아 문제다?

자유한국당은 선거법 개정과 관련해 비례대표 문제를 부각해 프레임을 만들었다. 한국당은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면 국민이 직접 뽑을 수 없고 당 지도부가 선임해 문제가 많다고 주장했다. 비례대표제가 완벽할 순 없겠지만 정당이 제대로 검증을 하지 않은 문제이지 제도 자체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도부의 일방적 공천은 지역구 의원도 마찬가지다.

공정한 제도로 보이는 선거가 대중적 인지도가 떨어지는 해당 분야 전문가나 장애인, 청년 등 사회적 약자에겐 쉽지 않은 문턱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투명한 공천제도로 비례대표제를 ‘잘’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여야 불문하고 성실한 의정활동으로 주목받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많다. 19대 국회 때 한국당 이자스민 의원은 소수자를 대표한 대표적인 사례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오히려 비례대표 75명, 지역구 225명으로 구성된 여야4당 안의 개혁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박영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은 지난 3월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최소한 100석이 안 되면 연동형 비례제도의 정상적인 운영이 힘들다고 봤다”고 밝혔다.

본인 원치 않는 사보임은 불법?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패스트트랙 반대파’ 의원들은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4당 합의에 반대하는 오신환·권은희 의원을 사임하고, 채이배·임재훈 의원을 보임한 것이 불법이라 주장한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사임은 법 취지에 반한다는 이유다. 국회법 48조는 임시회 동안 위원의 개선, 즉 교체는 ‘위원이 질병 등 부득이한 사유로 의장 허가를 받은 경우’를 제외하면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들은 2016년 발간된 국회법 해설서를 근거로 관련 조항은 과거 정치적 대립 안건과 관련한 정치적 이유 또는 의결정족수 충족을 위해 위원 의사에 반해 수시로 위원개선이 이뤄진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강조했다.

반면 국회사무처는 지난달 28일 해당 법안 제정 취지는 ‘위원회 전문성 강화’이며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위원 개선 시 의원 동의가 필요하다는 해석에는 “국회법 48조 1항은 교섭단체 대표의원 요청으로 의장이 위원을 개선하도록 하고 있고, 의장은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지 여부를 해당 의원이 아니라 교섭단체 대표의원의 의견을 들어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문 의장은 작년 7월 취임 이후 임시회 회기 중 각 교섭단체 대표로부터 총 238건의 위원 개선 요청을 받아 이를 재가해 왔다. 이번 바른미래당 소속 사개특위 위원 개선도 이 같은 관례를 따른 조치”라고 했다. 현재로서는 법적 해석이 가장 분분한 사안이다.

▲ 4월25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공수처설치법안 등을 발의하기 위해 국회 의안과 사무실을 방문했지만 사무실 안팎을 점거한 한국당에 가로 막혔다. 사진=미디어오늘
▲ 4월25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공수처설치법안 등을 발의하기 위해 국회 의안과 사무실을 방문했지만 사무실 안팎을 점거한 한국당에 가로 막혔다. 사진=미디어오늘

전자입법발의는 불법?

한국당은 사법개혁특위 패스트트랙에 오른 공수처 설치법과 검경수사권조정법 발의 자체가 불법이므로 원천무효라는 주장도 펼쳤다. 지난달 25일부터 시작된 한국당의 의안과 점거로 방문 접수는 물론 팩스·이메일 접수가 불가능해지자 여야4당은 다음날인 4월26일 오후 전자입법발의시스템인 ‘입안지원시스템’으로 2개 법안을 제출했다.

테이프로 봉쇄한 의안과 문 앞을 지키던 한국당 의원과 보좌진 등은 허탈함을 드러냈고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회법에는 전자결재 예를 규정한 적이 없다”며 “입법쿠데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근거 없는 거짓 주장으로 봐야 한다.

우선 국회사무관리규정에 따라 의안은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접수할 수 있다. 정보통신망은 ‘전기통신설비와 컴퓨터 및 컴퓨터 이용기술을 활용한 정보통신체제’로 정의돼 있다. 2005년 도입된 입안지원시스템은 관련 홈페이지에 의원 ID로 로그인하면 온라인에서 법안 발의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 시스템이다. 다만 의원 활용도가 높지 않다는 지적이 몇 차례 제기됐고, 지난해 11월에는 국회 사무처 차원에서 ‘입안지원시스템 사용자 매뉴얼’을 배포하기도 했다. 이번에 접수된 법안 2건이 최초 활용 사례이긴 하지만, 있는 시스템을 안 썼기 때문이지 ‘유례없는 불법’이라는 주장은 틀렸다.

여성단체, 여권 성범죄에 침묵?

임이자 의원 성추행 논란에 여성단체들이 성명을 내고 반발하자 한국당은 지난달 27일 논평을 내고 “문희상 국회의장의 추태를 감싸고도는 희대의 막장 성명”이라며 “좌파 진영의 성추문과 성비위 사건들에는 입을 닫고 때 아닌 묵비권을 시전하던 ‘내로남불’ 자칭 여성단체”라고 비판했다. 한국당은 “한국여성의전화는 현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대표로 있었던 단체”라며 여당과 관계를 부각하며 ‘친여단체’로 개명하라고도 했다.

여성단체는 여권 인사의 성범죄나 관련 의혹에 침묵하지 않았다. 관련 성명에서 여성단체들은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모욕감과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처였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며 “국회의장은 본인의 언행에 대한 심각한 자기반성과 성 평등 인식 제고를 위해 국회의장으로서 마땅히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들 여성단체는 여권의 유력 정치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 땐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여러 차례 집회와 토론회를 열며 적극 대응했다. 한국당이 지목한 한국여성의전화를 비롯해 이번 성명에 연명한 여러 여성단체들도 공대위에 참여했다.

▲ 4월29일 자유한국당 의원과 보좌진 등이 국회 정치개혁특위 회의실 앞에 스크럼을 짜고 드러누워 여야 4당 의원들의 회의장 진입을 막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 4월29일 자유한국당 의원과 보좌진 등이 국회 정치개혁특위 회의실 앞에 스크럼을 짜고 드러누워 여야 4당 의원들의 회의장 진입을 막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불법에 맞선 합법 투쟁?

한국당 집회의 대표적인 구호는 “독재타도 헌법수호”다. 여야4당 합의와 패스트트랙 절차가 불법이며, 한국당이 다수의 횡포에 맞서 정의로운 투쟁을 해나간다는 의미다. 황교안 대표가 지난달 24일 “우리의 반독재 투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선포한 뒤 한국당 의원과 보좌진 등은 국회 회의장 앞 곳곳을 점거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달 28일 “우리는 불법에 저항하기 위해 단순히 연좌시위를 했다. 분명히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단언했지만, 이미 ‘줄 고발’ 당한 한국당 의원과 보좌진 등이 법적 처벌을 피하긴 어려울 거란 전망이 나온다.

2013년 8월 제정된 ‘국회선진화법’ 즉 국회법상 회의방해죄는 ‘몸싸움 방지법’으로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 형법보다 강한 처벌을 뒀다. 누구든 회의 방해 목적으로 회의장 및 부근에서 폭력행위를 통해 회의장 출입 또는 공무집행을 방해한 경우 5년 이하 징역,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이를 위반해 폭행 또는 재물 손괴, 전자기록 손상·은닉한 사람은 7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만약 회의 방해죄로 500만원 이상 벌금형이 선고되면 의원은 피선거권 박탈, 보좌관은 당연 퇴직된다. 특히 입구 봉쇄, 직원 감금, 전자기기 파손 등이 있었던 국회 의안과 사무실 점거는 정당들 뿐 아니라 국회 사무처로부터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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