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자, 취재원, 조력자 없이 시작한 취재가 부른 파장은 컸다. 박유리 한겨레 탐사팀 기자는 국회의원 재산 공개 내역의 수많은 논과 밭이 눈에 띄었다. 등기부등본, 정보공개청구 등 그가 수집·취합할 수 있는 자료를 모았고 노트북 한 대를 들고 ‘홀로’ 전국을 헤맸다. 지난 4월3~22일 6회에 걸친 기획 ‘여의도 농부님, 사라진 농부들’의 시작이었다.

1~2회는 농지를 보유한 국회의원들의 이해 충돌 실태를 공약 전수조사와 그들의 농지 인근 도로 개설을 중심으로 살폈고 3회는 한 마을에서 이뤄지는 농지 투기 실태로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어떻게 부동산 왕국을 이뤘는지 파헤쳤다. 4회에서는 편법으로 취득한 농지취득자격증명과 현장 취재를 대비해 국회의원들이 농지법을 어떻게 허무는지 집중했다. 5회는 농민 12명 구술로 개발 예정지에 대한 투기적 수요가 빚는 피해 사례에, 6회는 농민들이 땅을 어떻게 강제수용 당하는지 법률 문제점에 방점을 뒀다.

 

▲ 한겨레 4월3일자 1면.
▲ 한겨레 4월3일자 1면.

국회의원들은 헌법을 위반했다. “국가는 농지에 관해 경자유전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는 헌법 121조 ‘경자유전 원칙’이 입법기관에 의해 유명무실하다는 사실이 보도에서 확인된다.

 

국회의원이 보유한 땅 근처로 지나지 않던 도로 설계가 의원이 앞장선 뒤 의원의 땅 앞으로 노선이 변경된 사례, 개발 공약을 내세운 뒤 수혜 지역에 땅을 매입한 사례, 허위 공문서를 작성해 농지를 사들인 후 목적과 다르게 사용한 경우, 경자유전 원칙에 따라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데도 소작농을 두고 미래 소득을 기대하는 사례 등이었다. 

보도에 적지 않은 여·야 의원들이 등장했다. 주승용 국회부의장(바른미래당),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 같은 당 주광덕·염동열 의원,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등. 배우자 소유를 포함해 국회의원 99명이 농지 64만6706㎡(19만5628평)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 농지는 자신의 개발 공약과 가까운 것이었다. 의원이 예산을 확보해 도로를 내거나 각종 규제에 앞장설수록 땅값이 뛰었다.

수많은 ‘여의도 농부’들로 실제 농부들이 농업을 포기해야 하는 ‘농촌 젠트리피케이션’ 사례가 이번 보도의 깊이를 보여줬다. 이 작업을 위해 박 기자는 지난해 11월부터 취재에 돌입했다. 그는 30일 통화에서 “올해 들어 주 7일씩 일했던 것 같다”며 취재의 고단함을 토로했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 준비하는 데 얼마나 걸렸나?

“작년 10월 말~11월 초 시작했다. 5개월 정도를 취재했다. 한 달 정도 기사 쓰기에 집중했다.”

-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작년 부동산 문제는 우리사회 이슈였다. 서울 부동산 값이 많이 뛰기도 했고, 탐사보도팀이 부동산 문제를 다뤄줬으면 하는 요구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남들이 다루지 않은 걸 살펴보는 데 관심 있다. 남들이 관심 갖지 않는 사안과 이슈에 흥미를 갖는 편이다. 농지는 크게 이슈된 적 없는 지목이었다. 하지만 농지에도 다양한 투기가 이뤄지고 그 투기로 인해 실제 농사를 지어야 하는 많은 분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어떤 언론도 이 문제에 주목하지 않고 있었다. 방향을 어떻게 가져갈까 고민하다가 국회의원 재산 공개 목록에 논과 밭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국회의원에 집중해 기획을 펼쳐야겠다고 판단했다.”

- 기사를 보면 경기와 인천 등 수도권역에 집중한 것 같다. 개발 이슈와 연결된 지역이라 특히 관심을 두게 된 것인가?

“그런 측면도 있지만…. 원래 농지를 매입하거나 소유한 사례를 모두 취재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자 한 명이 모든 곳을 취재할 수는 없었다. 물론 등기부등본은 다 떼어봤다. 다만 전수 취재를 할 수는 없었다. 공시지가를 확인하고 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사전 취재하면서 문제가 될 법한 곳들로 한정해 현장에 나섰다. 그러다보니 경기, 인천 쪽에 주목하게 되더라.”

- 단순히 의원들의 농지 보유 실태를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았던 것 같다.

“개별 의원들의 농지 보유 사례를 열거하거나 그에 대한 고발에만 머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국회의원뿐 아니라 비농업인들의 불필요한 농지 소유가 일상화한 현실, 그로 인한 피해를 담고자 했다. 한국 언론은 기획 하나에 하나의 견해만 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외국 보도를 보면 하나의 기획에도 여러 견해를 담는다.”

 

▲ 한겨레 4월17일자 10면.
▲ 한겨레 4월17일자 10면.

- 실제 농민들 피해는 어떠했나?

 

“내가 만난 농부들은 ‘지역의 80~90%가 외지인 소유 농지’라고 말씀하시더라. 즉, 실제 농사를 짓지 않거나 불법으로 소작농을 두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거다. 그러나 이 부분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외지인도 농지를 살 때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 받는데, 자기가 농사 짓겠다고 ‘농업 경영’ 목적으로 발급 받아도 진짜 농사를 짓는지, 투기 때문에 매입했는지 통계로는 알 수가 없다. 비농업인 농지 소유에 정확한 통계가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이 없다.”

- 취재하면서 정부 쪽 입장도 많이 들었을 텐데?

“농림축산식품부(농림부) 입장을 들어보면 이번 기획 보도를 봤는데도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지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의지도 강하지 않았다. 개발이 시행되면 농민들은 자녀 학자금 마련 등을 위해 땅을 팔고 소작농이 되거나 싼 가격에 땅을 수용 당하다시피 한다. 그럴 경우 경상도, 전라도로 떠나야 하거나 농업을 포기하는 일이 발생한다. 나는 이를 ‘농촌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명명했는데 이런 현상에 연구가 사실상 전무했다. 정부가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 국회의원들이 지역 공약을 내세우고 그 공약과 가까운 곳에 땅을 산다. 이해충돌 논란이 클 수밖에 없는데?

“부동산에 관한 이해충돌 방지 제도나 법안이 없다. 물론 채이배(바른미래당), 표창원(민주당) 등 관련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이 있지만 통과를 위해선 동료 의원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거기까지 가지 못한 상황이다. 취재를 하면서 느낀 건 의원들의 카르텔이 심하다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국회 쪽 도움을 받기 위해 여러 의원실에 협업을 제안했다. 최초 취재 범위로 고위공직자를 생각했다. 공직자 전반을 다룬다고 했을 때 호응하던 의원실이 취재 범위를 국회의원으로 한정하니 난색을 표했다. 말도 안 듣고 전화를 끊는 의원실도 있었고 대놓고 ‘의원이 의원을 비판하긴 부담스럽다’는 의원실도 있었다. 이번 기획은 의원들 도움을 받기 어렵겠구나 싶었다. 국회 스스로 정화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많이 들었다.”

- 이후 인포그래픽 등 기획을 시각화하는 작업 계획이 있나?

“현재로는 힘들 것 같다. 취재하면서 디지털 작업도 병행했다면 좋았을 텐데…. 올 들어 주 7일 그대로 일했던 것 같다. 잠자는 시간 외 가족도 만나지 못했다. 취재와 기사 쓰기, 사진 챙기는 것 이외에는 다른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었다. 기획이 마무리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도 이후 국토부나 농림부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계속 보도할 생각이다. 6회 보도 이후 국토부가 보도 자료를 냈지만 대안 마련과 후속 조치는 미흡한 상태다. 부동산을 둘러싼 정부와 국회, 기관의 권력관계가 공고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 박유리 한겨레 탐사팀 기자. 사진=박유리 제공
▲ 박유리 한겨레 탐사팀 기자. 사진=박유리 제공

- 국회의원 실명이 많이 나온다. 혹시 소송을 예고한 의원들이 있나?

 

“많은 분들이 법적 대응을 예고했지만 실제 언론중재위를 통해 들어온 건 2건이다. 사실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 같다.”

- 독자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나?

“기사 분량이 많고 내용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독자분들이 모든 내용을 세세하게 다 아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취재를 통해 배워가며 보도한 기획이다. 취재 전에는 농지법이나 토지보상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다만 헌법은 경자유전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미래를 내다보고 농지를 매입하는 게 일상화돼 있다. 그런 현실 위에 국회의원들이 있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을 것이다. 비농업인이 수많은 농지를 보유하는 현실 속에 누군가는 분명 피해를 보고 있다. 땅을 둘러싼 우리사회의 욕망이다. 그 부분을 이해하고 보시면 감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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