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정권 때도 선거법만큼은 여야 합의로 개정하는 전통을 지켰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전 대표가 지난 28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30일 새벽 0시30분께 심상정 국회 정개특위 위원장도 선거법 패스트트랙 지정 가결을 선포한 직후 한 정리발언에서 이 말을 넘어서진 못했다. 심상정 위원장은 정개특위 산회 선포 직전 “그동안 여야 합의로 선거법을 개정하는 건 맞지만, 그건 국민 뜻과 달리 선거제도를 개혁하지 않으려 한 합의였다”고 비판했다.

▲ 30일자 한국일보 5면.
▲ 30일자 한국일보 5면.

과연 선거법은 늘 여야 합의로 개정해왔던가. 한국일보가 이 말을 팩트체크해봤다. 유승민 전 대표의 말처럼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 때 실시한 선거법 개정은 늘 여야가 합의한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많은 현행 소선거구로 바꾼 1988년 3월8일 선거법 개정은 당시 여당이었던 민정당이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소수정당의 원내진입을 막고 1표만 많아도 당선되는 승자독식 구조를 만들어왔다.

1988년 노태우 정부는 형식은 민간정부지만 군인으로 12·12 쿠데타의 주역이었던 터라 내용은 군사정부였다. 그래서 우리는 1992년 연말 김영삼 대통령의 출현을 최초의 민간정부라고 부른다.

한국일보는 30일자 5면에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민정당이 소선거구제로 날치기 통과시킨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한국일보 1988년 3월8일자 1면 머리기사 ‘선거법 새벽 본회의 통과, 민정당 야측 저지 속 단독강행’)

당시 한국일보 기사에 따르면 1988년 3월8일 새벽 2시쯤 여야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 의석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단상 양옆 문을 통해 국회 경위들에게 둘러싸여 장성만 부의장(민정당)이 단상으로 올라가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은 채 의안을 상정하고 의사봉을 두드렸다. 제안설명은 유인물로 대체하고 찬반토론은 생략됐다. 이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이 몰려가 소리를 지르고 서류를 던지며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통과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 1988년 3월8일자 동아일보 1면.
▲ 1988년 3월8일자 동아일보 1면.
당시 이 소식은 한국일보만 보도한 게 아니다. 모든 일간지가 1면으로 보도했다. 동아일보도 1988년 3월8일자 1면에 ‘선거법안 새벽 강행통과’라는 제목으로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여야 대치로 아수라장이 된 의장석에서 장성만 부의장이 민정당 의원들의 엄호 하에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안의 통과를 선포하는 사진까지 실었다.

30일 새벽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에게 가장 거세게 항의하던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31년 전 선거법을 날치기 통과시킨 주역인 장성만 당시 국회 부의장의 아들이다. 역사는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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