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국보법)은 한반도의 미래를 자유롭게 상상할 자유를 억압하면서 한국에 정상적인 미래학이 발붙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반도 미래학은 남북한을 동등한 존재로 전제삼아 긍정·부정을 모두 고려한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인데 국보법에 규정된 북한은 반국가단체로 없애야 할 존재에 불과하다. 남북한이 상호작용하는 미래의 평화통일 전망 작업 등은 상상할 수 없다.” 

고승우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회장이 지난 24일 국보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헌법재판소 청구하며 지적한 내용이다. 고 회장은 2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국보법으로 스크린한 것을 배우고 있다”며 “반세기 이상 허용된 공간에서만 생각하고 활동했다. 이런 사회에서 언론과 학문의 자유가 빛을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고 회장 본인이 국보법으로 대표되는 독재 권력에 희생당한 사람이다. 연합뉴스의 전신 합동통신사에서 근무하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에 찍혀 강제 해직당했다.

▲ 지난 2006년 11월 고승우 6·15남측언론본부 정책위의장(왼쪽)이 발언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지난 2006년 11월 고승우 6·15남측언론본부 정책위의장(왼쪽)이 발언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고 회장은 “언론은 매일 국보법 범위 내에서만 언론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다”며 “북한에 대해 ‘저의가 있다’ ‘노림수가 있다’라고 하지 않으면 찬양고무죄(국보법 7조)에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언론이 제4부의 역할을 하려면 비판 뿐 아니라 견인하며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비핵화 국면에서도 트럼프·문재인 입만 보고 베끼는 것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고 회장이 위헌을 주장한 부분은 국보법 2·3·4·6·7·10조다. 2조는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 변란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 결사·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를 ‘반국가단체’라고 규정한 조항이다. 북한을 뜻한다. 3조는 반국가단체를 구성·가입한 자를 처벌한다는 내용, 4조는 반국가단체 구성원이나 지령을 받은 자를 처벌한다는 내용, 6조는 반국가단체 지배하에 있는 지역에 잠입하거나 그 지역으로 탈출한 자를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이미 2017년 헌법소원이 청구된 7조는 반국가단체 구성원 등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하거나 동조해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를 7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끝으로 10조는 앞 조항들에서 정한 범죄자라는 걸 알면서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은 자를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10조 단서에는 심지어 친족관계가 있는 때는 형을 감경·면제한다는 내용까지 있다.

친족 역시 감시대상으로 전제한 조항이다. 고 회장은 “국보법은 적을 약화시키기 보단 내부에 적이 있다고 생각하며 내부를 병들게 만든다”며 “남북간 경제력·군사력이 40배나 차이나고 사상논쟁은 냉전 종식과 함께 끝났는데 북한 체제에 대해 박수치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결국 국보법이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국보법은 1948년 12월 이승만 정권이 만들었다. 분단에 대한 불만이 커지던 같은해 10월은 해방 후 3년이나 지체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처벌을 위해 반민특위를 구성한 시기다. 조선총독부에서 미군정으로 이어지는 기득권을 계승할 것인가, 임시정부와 3·1운동을 계승할 것인가 기로에서 이승만 정권은 반공을 죄악시하며 전자를 택했다.

▲ 1948년 7월24일 당시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던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광장에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취임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 1948년 7월24일 당시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던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광장에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취임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이런 역사적 사실은 국가인권위원회도 15년 전 지적했다. 지난 2004년 8월 국가인권위원회(당시 위원장 김창국)는 국회의장과 법무부장관에게 “국보법은 제정과정부터 태생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며 “국보법은 법률의 규범력이 부족한 법으로 그 존재 근거가 빈약한 반인권법”이라고 폐지를 권고했다.

그는 지난해 이런 내용을 담은 책 ‘인문사회과학적 시각으로 본 국보법’을 펴냈다. 이승만을 국부로 모시겠다는 이들이 이승만이 만든 국보법을 찬양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고 회장은 “북을 절대적으로 적대시하고 모든 공격을 합리화하며 정권비판세력을 국보법으로 때려잡으면서 수구보수들이 수십년 집권했다”며 “국보법을 이용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 최소 30%의 지지기반을 제도적으로 만들어 준 게 이승만이라 국부로 추앙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보법을 폐지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헌재는 이번 헌법소원에 대해 당사자 적격 등 청구요건을 심사한 뒤 사건을 정식 심판절차에 회부할지 결정한다. 헌법소원을 청구할 때는 ‘위헌 사유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90일 이내’ 청구해야 한다. 고 회장은 지난 20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김정은 대변인 역할만 하고 있다”는 등 색깔공세를 제기한 것을 거론하며 “국보법을 시급히 폐지해 정의롭고 올바른 정치문화를 정립해야 한다고 절감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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