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개인에 대한 단속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현행 고용허가제가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와 성착취를 심화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주여성 지원시설 두레방쉼터의 김태정 소장은 “현 이주정책은 이주여성 노동자가 인신매매를 당해도 미등록체류자 단속추방에 몰두해 성착취 피해자를 양산한다”고 문제 제기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민주노총, 이주공동행동 등은 29일 오후 서울 저동 인권위 인권교육센터에서 ‘미등록 이주민 단속실태 파악과 대안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김태정 소장은 이주여성이 성착취를 당하게 되는 주 경로로 ‘E6(예술흥행)비자’와 ‘사증면제’를 꼽았다. E6비자는 외국인이 음악·미술·문학·마술 등 예술활동으로 국내에 체류하도록 한 비자다. 한 번에 최대 2년간 국내에 머무를 수 있다. 사증면제의 경우 국가 간 협정 등으로 입국허가 없이도 30~90일 간 체류허용하는 제도다.

김 소장은 “90년대 중반부터 E6비자 소지 이주여성들이 기지촌에 대거 유입됐다. 이주여성들은 입국하기 앞서 작성한 고용계약과 전혀 다른 부당한 대우를 받고, 성매매를 강요당하기도 한다”고 했다.

 

▲ 김태정 두레방쉼터 소장이 29일 서울 저동 인권위 인권교육센터에서 열린 ‘미등록 이주민 단속실태 파악과 대안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김태정 두레방쉼터 소장이 29일 서울 저동 인권위 인권교육센터에서 열린 ‘미등록 이주민 단속실태 파악과 대안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특히 E6-2(호텔유흥) 비자로 입국한 필리핀 여성들이 인신매매의 주 타겟이 되는데, 복잡한 E6-2 비자의 구조가 여기에 한몫한다. 현지 기획사가 본국에서 지원자 여성들을 모아 현지 공연영상을 첨부해 영상물등급관리위원회에 제출하고, 여성들은 영등위가 발급한 공연추천서로 각국의 한국대사관이나 영사관으로부터 사증을 받아 입국한다.

김 소장은 “클럽 업주는 여성들의 급여를 당사자가 아닌 기획사에 건네게 돼 있다. 업주들은 자기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판매술 할당량(주스쿼터)과 성매매(바 파인)를 여성들에게 강요한다”고 했다. 외국인전용 음식점이 아닌 한국남성을 상대하는 유흥업소로 유입되기도 한다.

문제는 피해 여성들이 사업장을 고발하고 업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이 특정 사업장에서만 일하도록 하고, 허가 없이 이탈하면 ‘불법체류자’가 된다. 사업장 변경 사유에 들려면 성폭력 피해를 입증하거나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김 소장은 “머리채를 휘어잡고 봉고차에 태워오는 수준이 아닌 이상 피해를 입증하는 건 또 기나긴 공방”이라고 했다.

김 소장은 “필리핀의 경우 실제 경찰이 부패했기에 여성들이 한국도 경찰과 출입국, 필리핀대사관이 연계돼 있을 거라 여긴다. 업주도 이를 이용해 거짓말로 협박하기 때문에 피해를 신고하기부터 어렵다”고 했다.

김 소장은 “피해 여성들은 한국에서 거의 감금 생활을 하고, 도망 나올 땐 쓰레기를 버리는 척하며 나오거나, 남자친구의 도움을 받거나, 남자들에게 돈을 주고 도와달라고 요청한다”고 했다.

 

▲ 국가인권위원회와 민주노총, 이주공동행동 등은 29일 오후 서울 저동 인권위 인권교육센터에서 ‘미등록 이주민 단속실태 파악과 대안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와 민주노총, 이주공동행동 등은 29일 오후 서울 저동 인권위 인권교육센터에서 ‘미등록 이주민 단속실태 파악과 대안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사증면제로 입국하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미등록 신분 때문에 더욱 피해를 드러내기 어렵고, 그 규모도 확실치 않다. 김 소장은 태국 여성들을 단적인 예로 들었다.

김 소장은 “이들은 대개 라인 메신저 상 광고를 보고 입국한다. 일반인들은 ‘미등록 체류이니 모든 걸 알고 왔으리라’ 여기지만, 실제로는 ‘건전마사지’로 알고 입국 전 돈을 내고 안마를 배우고 들어온다”고 했다.

여성들은 여러 브로커들에게 거짓정보를 받고 한국에 들어와 성착취 업소에 넘겨진다. 김 소장은 “업주들은 이 과정에서 이들의 탈출의지를 무력화하려는 관문으로 이른바 ‘테스트 성폭력’을 자행한다. 여성들은 ‘관광비자로 들어와 노동을 하고 있다’는 자책감과 소통 문제, 경찰에 대한 두려움, 귀국 시 신변우려 때문에 피해를 신고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정부기관이 피해사실을 인지해도 구제하는 경우는 드물다. 수사기관과 출입국외국인청도 ‘본인이 불법체류를 선택한 결과’라고 인식하는 탓이다. 김 소장은 “이들을 무자비한 단속으로 미등록으로 전락시키기보다 성착취 피해가 드러나도록 상담소와 우선 연계하고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김 소장은 인신매매 성착취를 근절할 방안으로 팔레르모 의정서에 따른 ‘포괄적 인신매매 법안’ 제정을 제언했다. UN의 국제범죄조직 방지협약에 속하는 팔레르모 의정서는 인신매매를 ‘착취를 목적으로 위협·무력행사·강박·납치·사기·기만·권력남용 등을 통해 사람을 모집·운송·은닉·인수하는 행위’로 정했다. 의정서는 개인과 단체, 국가를 행위 주체로 모두 포함했다. 그는 “우선 담당 공무원 인권교육과 함께 가해자인 브로커와 업주를 강력 처벌할 법제 고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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