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성폭력으로 논란인 ‘기자 단체 카톡방’에서 불법촬영물이 추가로 확인됐다. 버닝썬 VIP룸 화장실에서 심신상실 상태의 여성이 한 남성으로부터 유사강간을 당한 불법촬영물이다. 지난 1월 온라인상에 광범위하게 퍼진 이 영상은 1월31일 기자들 카톡방에 올라왔다. 이로써 기자 단톡방에서 확인된 불법촬영물은 최소 3건이다.

죄책감은 없었다. 이들은 성범죄 정황이 뚜렷한 영상을 놀이처럼 즐겼다. 영상은 “슨배임(선배님)들 혹시 버닝썬 성관계 영상이라고 보신 적 있습니까”란 톡이 올라온 지 1시간 만에 유포됐다. 제지는커녕 ‘#버닝’ 등의 농담만 오갔다. 유포 후엔 “아흐~조하~♡”, “대박”, “물뽕 먹인건가요?” 등의 낯뜨거운 답만 달렸다.

▲ 2018년 10월12일 유포된 성관계 영상(왼쪽), 2019년 1월31일 유포된 ‘버닝썬 유출영상’(가운데), 2019년 2월14일 공유된 또다른 ‘버닝썬 유출영상’.
▲ 2018년 10월12일 유포된 성관계 영상(왼쪽), 2019년 1월31일 유포된 ‘버닝썬 유출영상’(가운데), 2019년 2월14일 공유된 또다른 ‘버닝썬 유출영상’.

불법만 문제가 아니다. 일부 기자의 실종된 성 윤리와 성인지 감수성이 여과없이 확인됐다. 지난 1년 반 동안 공유된 사진은 590여장. 여성의 노출 사진부터 유흥업소에서 만난 여성이나 KFC에서 몰래 찍은 ‘귀여운 알바생’ 사진까지 무분별하게 촬영·공유됐다. 포르노·불법촬영물 사이트 공유 링크만 140여개다. 헤비업로더는 예닐곱명, 대화에 적극 참여한 인원은 20여명 안팎이다.

이들은 여성을 성적 도구로 봤다. 카톡방에선 ‘먹는다’는 표현이 가장 자주 쓰였다. 사진이 올라오면 “얘는 얼마야?”라 묻는가 하면 “먹으셨어요?”, “맛있겠네”, “냠냠” 따위의 성희롱은 셀 수 없이 이뤄졌다.

왜곡된 성인식은 미투운동에 대한 조롱으로 이어졌다. 미투운동은 성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에게서 찾고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회 구조를 성찰한 계기였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미투 그 지랄 조심하라”거나 “미투 때문에 무서워서 아무 것도 못 한다” 등의 반응만 보였다. 성추행 의혹 폭로로 목숨을 끊은 배우 고 조민기씨 사건엔 “가슴이 찡했다. 남 일이 아니다”란 톡이 달렸다.

자연히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도 남발됐다. 참가자들이 양예원씨 사진 공유를 머뭇거리자 “왜 안되냐”, “여긴 그런(공유하는) 방”이라며 공유를 재촉했다. 모 가구회사 성폭력 피해자 사진을 공유하곤 “한번 유혹해볼만 하네”, “유혹이라기보다 남자 3명이 발정날만 한 게 정확한 듯”, “위 사진은 어디 업소 에이스처럼 생겼고, 아래는 수녀님 비슷한데” 등이라 성희롱했다. 언론계가 미투운동을 계기로 선정적 성폭력 사건 보도 관행을 반성할 때였다.

▲ ‘문학방’이라 불린 한 기자들 익명 오픈채팅방은 한 성폭력 피해자 사진을 공유하곤 “한번 유혹해볼만 하네” “유혹이라기보다 남자 3명이 발정날만 한 게 정확한 듯” 등이라 성희롱했다.
▲ ‘문학방’이라 불린 한 기자들 익명 오픈채팅방은 한 성폭력 피해자 사진을 공유하곤 “한번 유혹해볼만 하네” “유혹이라기보다 남자 3명이 발정날만 한 게 정확한 듯” 등이라 성희롱했다.

이번 카톡방 사건을 사생활 문제라 보는 시각도 있다. 김신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꼬리자르기다. 익명이지만 기자 자격으로 모인 방에서 일어난 일이고,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자료를 공유하고 서로 요청하는 게 어떻게 직업윤리와 연관되지 않을 수 있느냐”며 “사건 보도 후 어떤 언론사도 입장을 설명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언론을 불신할 이유가 되기 때문에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계보다 시민단체 비판이 더 매섭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25일 “여성을 동료 시민이 아닌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이들에게,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회 문제를 비판하고 감시할 책무가 있는 기자직을 맡길 수 없다”며 “(이런) 이들이 취재와 보도로 사회의 스피커로서 역할을 할 때 그릇된 의식이 그대로 기사에 투영될 위험이 너무 크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언론노조도 지난 24일 엄중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했다.

가해자와 이들에 적극 동참한 이들은 익명 뒤로 숨었다. 논란이 된 날 모두 방을 나갔고 이 방이 파생된 별개의 기자 단톡방도 운영이 중지됐다. 수사가 진행되면 명확한 불법행위인 촬영물 유포자만 확인될 여지가 크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29일 국민신문고를 통해 한 시민의 수사 촉구 민원을 전달받고 “사안을 검토 중”이라 답했다. 고소·고발은 아직 접수되지 않았다.

(관련기사 : 기자 단체 카톡방에 “성관계 영상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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