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극은 그 자체로 평가 받을 때가 있다. 이를 테면 조선시대 계급 모순과 전복을 위한 연대를 담고 있는 2010년 KBS 드라마 ‘추노’는 “이명박 시대로부터의 탈주”(텐아시아)라는 평을 들었고, 영화 ‘광해’와 ‘변호인’은 보수정권의 정적을 자연스레 소환하며 1000만 관객을 극장에 불러 모았다. 극이 갖고 있는 텍스트와 시대상이라는 콘텍스트가 맞물려 더 큰 반향을 부른 작품들이다.
지난 26일 첫 선을 보인 SBS 금·토 드라마 녹두꽃도 시대극이다. ‘녹두’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배경으로 운명이 엇갈린 이복형제(조정석·윤시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드라마는 KBS 사극 ‘정도전’과 현대 정치극 ‘어셈블리’를 집필한 정현민 작가와 ‘뿌리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를 연출한 신경수 감독이 의기투합한 작품으로 방영 전부터 화제였다.
고부 봉기에 성공한 전봉준과 동학 농민들이 세금을 수탈해 만든 ‘만석보’(고부군수 조병갑은 정읍천에 만석보를 세워 수세를 거뒀다. 분노한 농민들은 고부 관아를 점령한 뒤 보를 헐어버린다. 동학농민운동 시발점으로 평가받는다)를 폭파시키는 장면이나 접주들이 동지들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손목에 노란 끈 차고 있는 모습 등에서는 ‘4대강’, ‘세월호’를 떠올리게 된다.
정현민 작가는 22일 언론 인터뷰에서 “(동학 관련) 자료를 찾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 처절한 시대를 살다 간 민초들의 이야기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며 “슬픔과 절망, 고통과 체념을 딛고 다시 일어났던 민중의 의지, 그 굳센 희망을 ‘녹두꽃’을 통해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 26~27일 방영된 1·2회(쪼개기 편성 1~4회) 시청률은 8.8%를 기록했다. 출발이 나쁘지 않다. 드라마 녹두꽃에 대한 관심과 시청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더 지켜봐야겠지만 드라마를 찾는 이들의 갈증은 ‘청산’에 있지 않을까 해석한다.
촛불 혁명으로 정치권력이 교체됐지만 “대통령과 일부 고위 관료들 밖에 안 바뀌었다”(고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 2017년 12월 tbs라디오)는 말처럼 촛불 전후 우리 삶의 변화는 더디다. “백성에겐 쌀을, 탐관오리에겐 죽음을”이라는 청산 구호가 아직 가슴을 뛰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는 열악한 노동 환경에 놓여있는 20~30세대들이 노동 인권을 다루는 드라마 MBC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에 주목하는 현상과도 맞닿아있다.
정 작가가 집필한 작품 ‘정도전’, ‘어셈블리’나 신경수 감독이 연출한 ‘뿌리 깊은 나무’ 등이 백성 또는 시민을 대리한 정치권력과 기득권 세력의 갈등을 다뤘다면 ‘녹두꽃’은 보다 민중 시선에서 극을 풀어갈 것으로 보인다.
촛불 이후 내 삶의 실질적 변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콘텍스트에 ‘녹두꽃’이 어떻게 호응할지 살펴보는 것도 유의미한 일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