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집회 금지 장소 조항이었던 집시법 11조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현재 국회에는 이에 대한 개정안이 여럿 발의된 상태다. 하지만 개정안의 대부분이 집회 금지 규정을 유지하며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단서를 두는 식이다. 공권력은 제한과 금지가 넘쳐나는 집시법을 들먹이며 언제나 탄압해왔다. 이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면서 끊임없이 목소리와 행동을 이어온 것이 집회의 자유를 지켜온 역사다. 집회 금지 성역 규정에 다름 아닌 집시법 11조를 이유로 가로막혀왔던 목소리들을 다시 들어본다. 국무총리공관, 국회의사당, 대사관, 법원, 청와대 앞, 그때 그곳에서 내고자 했던 다양한 외침들이 모여 지금 함께 요구한다. 집회 금지 성역을 열어라! 집시법 11조를 폐지하라! - 편집자주


우리사회 최후 성역인 미국에 맞서온 미대사관 앞 집회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이끌어 온 미대사관 앞 집회는 내용적으로는 우리 사회 최후의 성역인 미국의 부당한 지배와 간섭, 오만과 횡포에 맞서는 투쟁의 현장이었고, 법적으로는 집시법 11조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이에 맞서 집회의 자유를 사수하고 확장하여온 역사라 할 수 있다.

1999년 10월부터 시작돼 매달 진행되어 온 미대사관 앞 집회는 지난 20년 동안 미국에 대해 자주와 주권을 지키기 위한 우리 국민의 목소리를 거리에서 대변해왔다. 미대사관 앞 집회는 노근리 양민학살 및 조중필 피살사건 진상규명과 불평등한 한미SOFA 개정, 한강 독극물 방류사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매향리 미군국제폭격장 폐쇄, 여중생 압사사건 진상규명,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 참여 반대, 이라크 파병 반대, 굴욕적 용산미군기지 이전 및 평택미군기지 확장 반대, 작전통제권 환수, 한미FTA 반대,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사드배치 반대, 한미연합연습 반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실현 등 미국과 관련된 우리사회의 요구가 집약되고 확산되는 저수지 노릇을 해왔다.

▲ 2004년 7월13일 미대사관 옆 열린시민공원에서의 집회. 상근자들이 연행이 되기도 하면서 집회 공간을 마련함. 사진=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 2004년 7월13일 미대사관 옆 열린시민공원에서의 집회. 상근자들이 연행이 되기도 하면서 집회 공간을 마련함. 사진=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집회의 주제가 미국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이 집회의 장소는 우리나라에서 미국을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기관인 미대사관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되는 것이 마땅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한 미대사관 인근 장소에서 집회를 진행해왔다. 처음에는 종로구청 인근에 있던 석탄공사 앞에서 집회를 시작했고, 2001년부터는 광화문 건너편의 열린시민공원에서 진행했고, 2007년 3월부터는 현재의 광화문 KT 앞에서 진행하고 있다.

투쟁과 소송 통해 외교기관 100미터 이내 집회 금지 규정 무력화시켜

미대사관 앞 집회의 수난은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여는 집회 때부터 시작되었다. 경찰은 당시 집시법 11조의 ‘외교기관 100미터 이내 집회 금지’ 규정을 근거로 우리 집회를 불법집회로 몰면서 온갖 탄압을 자행했다. 경찰은 매번 집회 때마다 경고방송과 고착과 폭행을 시작으로 연행, 원거리 격리, 유치장 구금과 벌금 부과를 일삼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끌려간 사람들이 돌아올 때까지 노숙농성을 하는 처절하고 지난한 싸움이 계속되었다.

집회 주최자들은 경찰의 집회 방해의 불법성을 밝히기 위해 미 대사관과의 거리 실측을 통해 집회 장소가 100미터 이상임을 입증했지만 경찰은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마지막 방법으로 경찰의 집회 금지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그 결과 서울행정법원은 2002년 12월13일 “헌법이 보장한 집회시위의 자유는 부득이 제한하는 경우에도 필요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는 점에서 외교기관 100미터 이내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은 집회시위가 금지되는 범위를 최소한으로 하여 집회시위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될 수 있는 방향으로 해석되어야 하므로 집회장소의 일부가 금지장소에 해당될 경우 직접 접촉되는 부분을 제외하고 남은 부분에서 집회가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는 취지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고, 대법원이 2003년 12월11일, 원고 최종 승소를 확인함으로써 고난에 찬 열린시민공원 집회의 합법성이 쟁취되었다.

2003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집회장소는 특별한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고 전제하고 “집회의 자유는 다른 법익의 보호를 위하여 정당화 되지 않는 한 집회장소를 항의의 대상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을 금지한다”면서, 이에 외교기관 인근에서의 집회를 예외 없이 전면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하였다.

그 결과로 2004년 1월29일, 집시법 11조 일부가 개정되었다. 11조에 4항을 신설하여 ‘국내 주재 외국의 외교기관이나 외교사절의 숙소’에 대한 100미터 이내 집회를 금지하되 “외교기관이나 외교사절의 숙소의 기능이나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단서를 달았다. 그리고 그 경우를 “가. 당해 외교기관이나 외교사절의 숙소를 대상으로 하지 아니하는 경우, 나.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경우, 다. 외교기관의 업무가 없는 휴일에 개최되는 경우”로 제시했다. 외교공관과 외교사절 숙소에 대한 100미터 이내 집회 금지가 부분적으로 완화된 것이다.

▲ 2006년 1월10일 평택미군기지 확장반대 76차 미대사관 앞 열린시민공원에서의 집회. 사진=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 2006년 1월10일 평택미군기지 확장반대 76차 미대사관 앞 열린시민공원에서의 집회. 사진=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경찰의 ‘장소경합’을 이유로 한 광화문 KT 앞 집회 금지 통고도 소송 통해 이겨

집시법 11조 개정으로 법적으로 미대사관 100미터 이내의 집회가 가능해짐에 따라 2007년 3월부터 열린시민공원보다 미대사관에 더 가깝고 가시권도 확보되는 광화문 KT 앞으로 집회 장소를 옮겨 진행했다.

그런데 경찰은 2년 동안 아무런 방해를 하지 않다가 이명박 정부의 도심집회 불허 방침에 따라 2009년 6월16일에 여는 집회 신고에 대하여 ‘장소경합’, 즉 ‘KT 광화문 지사의 선 집회신고가 있다는 이유로 광화문 KT 앞 집회에 대해 금지 통고’했다. KT 광화문 지사는 이전부터 의례적으로 집회신고를 해 계속 장소가 경합되었지만 경찰의 금지 통고는 없었고, 실제로 그들의 집회도 매번 열리지 않았다.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명백한 탄압이었다.

이에 평통사는 경찰의 집회 금지 통고 처분에 대하여 ‘옥외집회금지통고처분 취소청구소송’과 함께 ‘행정처분 효력정지신청’을 제출하였고, 법원은 효력정지신청을 받아들였다.

법원은 결정문에서 “(경찰의) 집회금지 통고가 헌법에서 금하고 있는 사전허가가 되지 않기 위하여는 …(중략)… 집회의 실질적 내용에까지 들어가 그 위법 여부를 판단하여 허부를 결정하여서는 안 되고, 그 제한이 공공의 안녕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범위 안에서 필요 최소한도에 그치도록 엄격히 해석하여야 한다”고 전제하였다. 그리고 △평통사의 반미 집회와, 먼저 신고된 KT 광화문 지사의 ‘KT상품홍보 및 환경캠페인’ 집회가 개최 목적이 상반된다고 볼 수 없는 점, △집회 공간이 비교적 넉넉하여 50명으로 신고된 평통사 집회와 70명으로 신고된 KT 집회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점, △집회 방해 부분은 각 집회 주체간 조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점, △양 집회의 진행방식에 대한 검토도 없이 이 사건 집회의 진행이 선 집회의 진행을 방해한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점 등에 비추어, “(양 집회가) 그 목적으로 보아 서로 상반되거나 방해가 된다고 인정되지 않아 법 제8조 제2항의 금지통고의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 2017년 6월13일 효순미선 15주기 추모제. 사진=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 2017년 6월13일 효순미선 15주기 추모제. 사진=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외교공관 100미터 이내 집회를 이유로 한 경찰의 잇따른 집회 금지 통고도 꺾어

2015년 10월, 경찰은 외교공관 100미터 이내 집회라는 이유로 또다시 평통사의 광화문 KT 앞 집회 신고에 대해 금지 통고했다. 8년 넘게 진행해온 집회에 대해 느닷없이, 그리고 2004년 개정된 집시법에도 어긋나게 또다시 태클을 걸어온 것이다. 평통사는 다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법원은 “평통사가 매월 이 사건 개최 장소(미국대사관 경계지점에서 약 52m 떨어진 곳)부근에서 옥외집회를 개최하면서 대규모 항의시위 등을 유발하여 외교기관의 업무를 방해하거나 외교관의 신체적 안전을 위협한 사례가 없었”다고 밝히면서 “이 사건 개최 장소에서 옥외집회가 열린다 하더라도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될 우려나 외교기관의 기능이나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 사건 옥외집회는 집시법 제 11조 제4호 단서에 따라 외교기관 인근에서 개최할 수 있는 예외적 허용사유에 해당된다”고 결정했다.

그런데 경찰은 자신의 1심 패소에도 불구하고, 평통사가 새로 제출한 동일 장소 집회 신고에 대해 또다시 금지 통고를 했고 이에 대한 소송으로 다시 패소했다.

실소할 일이지만, 집시법 11조 4항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이때까지 평통사만 예외적으로 광화문 KT 앞 집회의 자유를 누려왔다. 평통사가 1999년 10월부터 시작해온 미대사관 집회를 온갖 탄압을 뚫고 매달 진행해온 역사성과 장소 경합을 이유로 한 법정 소송에서 승소한 사실을 경찰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못마땅히 여긴 경찰이 평통사만 누리던 ‘특권(?)’을 박탈하려고 무모하게 나대다가 오히려 누구든지 미대사관 100미터 이내 지점에서 집시법 11조 4항에 따라 집회를 할 수 있다는 법원의 명확한 판결을 이끌어낸 것이다. 지금은 누구나 미대사관 100미터 이내 집회가 가능하다. 경찰 입장에서는 혹 떼려다가 혹 붙인 격이다.

집회 장소를 마음대로 금지하는 집시법 11조, 없어져야

위 사례들은 집시법 11조가 개정이 아니라 폐지되어야 할 이유를 명확히 보여준다. 정권과 경찰의 입맛에 따라 집시법을 제멋대로 운용하거나 아예 무시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정치적·법적·신체적 불이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집회 탄압을 매번 이겨왔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커다란 손실을 감내해야 했다. 경찰의 자의적 해석으로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탄압의 빌미를 아예 주지 않는 방법은 집시법 11조를 적당히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없애 버리는 것이다. 지난한 투쟁을 통해 권리를 쟁취하는 수고를 감내하는 자에게만 집회의 자유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경찰의 반헌법적, 반민주적 행태의 빌미를 더 이상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헌법이 보장한 집회`결사의 자유를 온전히 보장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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