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KBS 이사회가 방송 프로그램에 개입해 통제하고 자율성을 침해했던 사례를 KBS진실과미래위원회(진미위)가 공개했다.

진미위가 지난 11일 채택 의결한 ‘이사회 등 내외부 기구의 방송통제 사례’ 조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5년 5월 일본 주재 특파원이 이승만 정부가 6·25 발발 후 일본정부에 6만 명 망명의사를 타진했다는 기록을 일본 야마구치 현사에서 발견 취재해 보도한 당시를 이사회의 방송통제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당시 취재진은 2015년 6월24일 9시 뉴스에서 리포트를 내보냈고, 디지털뉴스국은 이승만 대통령과 선조를 비교한 내용으로 ‘전쟁 통에 지도자는 망명 시도…선조와 이승만 닮은 꼴’이라는 제목의 뉴스를 보도했다.

방송이 나간 후 이인호 KBS 이사장은 관련 보도 내용을 따져보자며 임시이사회를 소집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6만명의 망명정권을 야마구치현에 세우고 싶어 한다”는 전보를 받았다는 날짜가 야마구치 현사에 없다는 게 확인돼 일부 보도 내용이 오류로 밝혀지면서 내외부 압박이 거세졌다.

망명정부 요청 날짜는 오류였지만 1950년 6월27일 무초 주한미국 대사가 본국에 보낸 전문에 당일 신성모 국장방관이 일본에 망명 정부를 세울 수 있는지 문의했다는 내용이 나오면서 전체 보도 내용 취지는 허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승만기념사업회는 KBS를 항의방문하고 반론보도를 청구했고, 실제 후속 리포트에서 이승만기념사업회 고문인 이인수씨의 인터뷰 내용과 주장이 실렸다. 진미위는 “일반적으로 반론보도는 언론중재 등의 절차를 거치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이례적으로 이러한 절차 없이 신속하게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또한 방송 이후 2015년 7월15일 보도국 국제주간과 국제부장, 디지털뉴스국장, 디지털뉴스부장이 보직해임됐고, 7월21일 국제부팀장까지 보직해임됐다. 진미위는 “보도의 일부 오류를 문제 삼아 5명의 간부를 한꺼번에 보직해임한 것은 유례가 없던 일로, 이사회의 방송개입 논란 사건 중 가장 고강도의 징벌적 조치가 가해진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진미위는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보도본부의 ‘대선후보진실검증단’이 기획한 방송에 대해서도 이사회가 개입한 사례로 발표했다.

대선후보진실검증단이 기획한 “2012 대선후보를 말하다”는 2012년 11월26일 방송예정이었지만 나흘을 앞두고 편성실무회의에서 대통령 후보의 주변 의혹을 다루는 게 적절치 않아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보류 결정을 했다.

그리고 그해 12월4일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정책과 의혹을 검증하는 내용으로 방송됐는데 12월5일 정기이사회는 △박근헤 후보에 대한 내용이 전반부, 문재인 후보 부분이 후반부에 나오게 구성된 점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장면은 나오는데 육영수 여사 장례식 장면은 나오지 않는 점 등을 지적했다.

진미위는 “이사회가 명백히 보도 프로그램에 직접 개입한 사례라 할 수 있다”며 “이사회 참석 후 단장은 휴가를 떠나 사퇴를 했고, 이후 다시 복귀했지만 검증단의 취재는 사실상 중단됐다”고 지적했다.

▲ KBS 본관 전경.
▲ KBS 본관 전경.
이밖에 진미위는 2011년 8·15 광복절 기획 ‘KBS 스폐셜’에서 재중 항일음악가 정율성 삶을 주제로 한 방송을 나흘 앞두고 열린 이사회 간담회에서 당시 여권 추천 이사들이 정율성은 북한에서 활동한 공산주의자라고 했고, 손병두 이사장이 “이런 방송이 나갈 경우 이사장직을 그만두겠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결국 방송이 불방됐고 석 달이 지나 방송이 결정됐지만 또다시 무산됐다. 해를 넘겨 2012년 1월15일 방송이 나가고 나서 열린 이사회에서 담당 PD에 대한 징계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진미위는 밝혔다.

2015년 2월7일 방송된 “광복 70주년 특집-뿌리 깊은 미래” 방송에 대해서도 “이인호 이사장이 이것이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방송이냐, 이러고 어떻게 수신료를 올리려고 하느냐의 등의 전화를 주말에 여러 군데에서 받았다고 말했다”고 진미위는 밝혔다.

자유경제원도 나서 관련자 징계, 내부통제 방안 마련, 대국민 사죄를 요구했다. 그러자 2015년 3월31일자로 기획제작국장이 보직해임됐다. 진미위는 “임명된 지 8개월이 채 안된 상태였고, 갑자기 보직해임이 될 특별한 사유가 없었다”면서 “이인호 이사장은 프로그램에 대한 언급이 자유로운 의견 개인이고 방송 개입이 아니라는 취지로 말했지만 경영진은 이사장의 문제제기를 단순한 의견 개진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프로그램에 명백한 오류가 없었음에도 이례적으로 담당 국장이 보직 해임까지 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방송법에 따라 설치한 시청자위원회를 통해 방송 보도나 편성 관련해 의견 제시 또는 시정요구를 할 수 있도록 돼 있어 이사회 등이 개입하는 것은 월권이면서 방송 독립성과 제작 자율성 침해 행위에 해당한다.

진미위는 사장과 이사회가 논의를 통해 이사회 권한을 넘어선 과도한 방송 편성 개입을 근절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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