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2년차 ‘여성’ 촬영기자입니다
저는 12년차 ‘여성’ 촬영기자입니다
[미디어 현장] 김현미 YTN 영상촬영기자

그러고 보니 벌써 12년 차 촬영기자(카메라 기자)다. 꽉 채워 11년, 나에겐 ‘촬영기자’ 앞에 ‘여자’라는 수식어도 늘 붙어있었다. ‘여자’로서 특별한 것도 아니고 ‘촬영기자’로서 특별한 것도 아니지만, ‘여자 촬영기자’란 여전히 조금 특이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 같다.

YTN에서는 첫 ‘여자’ 촬영기자로 2008년 2월에 입사를 했다. “한 명 뽑는데 여자 뽑았어?” 국회에 계신 선배들께 인사하러 갔는데 뒤에서 타사 선배가 우리 회사 선배에게 걱정스럽다는 듯하는 말이 들렸다. 회사 내에서도 한 명을 뽑는데 그것도 ‘여자’를 뽑았다는 것 때문에 영상취재부 전체회의까지 열렸고 많은 선배들의 반대 의견이 있었다고 했다. ‘여자’ ‘남자’를 떠나 ‘사람’이 귀한 촬영기자들에게 힘들다고 금방 그만둘 것 같은 ‘여자’를 뽑는 것은 사치처럼 생각되는 때였다.

촬영기자는 도대체 얼마나 힘든 일을 하기에? 우선 ‘카메라’라는 장비를 이용하기 때문에 체력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ENG 카메라는 10kg 정도로 그냥 들기만 해도 무거운데, 이걸 들고뛰는 것은 물론 산을 올라가거나 강을 건너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언론사가 많아진 요즘은 덩치 큰 남자들 여럿과 몸싸움도 자주 한다.

▲ 방송 카메라 자료사진. ⓒ gettyimagesbank
▲ 방송 카메라 자료사진. ⓒ gettyimagesbank
물론 힘들긴 하지만 이런 이유가 ‘여자’는 하기 힘든 일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여자’도 ‘여자’ 나름이고 ‘남자’도 ‘남자’나름. 비록 여자이지만 나는 체력이 좋은 편인지라 카메라를 들고뛰는 일도, 산에 올라가는 일도, 눈길을 걷는 일도 다 했었고 그랬다고 아픈 적도 없다. ‘남자’라도 이 일을 하다가 아프기도 하고, 아프다는 핑계로 힘든 일은 피하는 사람도 있다. 체력적으로 힘든 것은 여자나 남자나 다 같은 것이고, 체력 약하고 무거운 거 들기 싫은 ‘사람’은 못할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카메라’의 무게보다는 ‘기자’로서 가졌던 ‘고민’의 무게가 더 컸다. 입사하자마자 겪은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현장에서부터 카메라에 붙은 YTN이란 이름으로 시민들에게 외면도 당해보고 비난도 많이 들었다. 기자로서 자부심을 갖기 이전에 자괴감을 먼저 느꼈다고 해야 할까. 회사 내부에서는 ‘여자’임에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면 외부에서는 ‘YTN 촬영기자’로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YTN은 찍지 마세요.” “찍어도 방송도 제대로 안 하잖아요.” 심한 욕을 들을 때도 있고 물리적 폭력을 당할 때도 있다. 어쩔 땐 억울한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 더 중요한 것은 철저한 ‘자기반성’이다. 촬영기자들은 현장을 한번 놓치면 그 순간은 영원히 남길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 옳은지,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지 그 모든 것을 순간적인 판단으로 해내야 한다. 평소 사회 현상과 사건, 피해자, 가해자 등에 대한 개념과 가치관 등을 고민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역사에 남을 한 장면을 놓칠 수도 있다. 이런 고민은 10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어려운 문제다. 그런데 이런 ‘기자’로서의 ‘고민’도 ‘여자’이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10년 사이 그래도 ‘여자’ 촬영기자가 늘었다. YTN에도 올해 또 한 명의 ‘여자’ 촬영기자가 생겼다. 여자 후배가 뽑힌 것이 공지되고, 사내에 많은 선배들이 나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했다. “왜 내가 축하받아야 해요?”라고 반문했지만, 그 이유는 물론 내가 가장 잘 안다. 내가 버티지 못했으면 ‘여자’를 또 뽑는 일은 그만큼 더 주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배들의 축하 속에는 “그동안 잘 버텼다”라는 격려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일일이 감사하다는 말은 못 했지만 그렇게 축하해준 사람들이 내가 버티게 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꼭 ‘촬영기자’가 아니어도 ‘여자’가 어떤 직업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일은 아직도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여자’가 없는 직업일수록 얼마 없는 ‘여자’들이 버텨야 조금씩 변한다. ‘여자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은 어찌 보면 ‘여자’가 없는 상황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 김현미 YTN 영상촬영기자
▲ 김현미 YTN 영상촬영기자
‘이건 성별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은 결국 많은 ‘여자’가 해내는 것으로 증명할 수밖에 없다. 이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데도 버티는 것은 맞지 않겠지만 나처럼 ‘촬영기자’가 적성에 맞는 사람이라면 좀 더 많은 ‘여자’들이 이 일에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아니 꼭 ‘여자’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사람’들이 ‘세상을 기록하는 촬영기자’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다양한 ‘촬영기자’가 양성될수록 다양한 시각을 요구하는 지금 사회에 언론이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 역시 이제는 ‘여자’인 것을 넘어서 다양한 세상을 이해하고 진실을 기록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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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날 2019-04-27 22:35:10
ENG...10kg. 화질 면에서 그렇게 무거운 ENG 카메라 못지 않게 훌륭한 소형 6mm 디지털 카메라가 나온지 벌써 십몇년이 흘렀는데 왜 아직도 방송카메라를 그 무거운 ENG만 고집하는 지 모르겠어요. 가벼운 거 들고 다니면 여성 촬영기자들도 기동성 있게 다닐텐데. 스마트폰 카메라로 영화도 찍는 세상이예요. 세상이 변하고 기술도 얼마나 많이 발전했는데 사람들의 마인드는 못 따라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여성 촬영기자가 많아지려면 장비부터 시대에 맞게 바꿔야 합니다. 무겁고 비싼 ENG. 취재현장에서 위압감을 과시하려는 의도는 없는지... 직종이기주의는 아닌지....불편한 진실이예요.

난데 2019-04-27 19:51:37
고생 많군요..........

평화 2019-04-27 16:26:56
꾸준한 관심과 인내가 불평등을 해소한다. 일본은 일부로 여의사를 축소해서 뽑았다. 한국도 은행원 중 여자 비율을 일부러 줄였다. 성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데, 편견으로 적게 뽑는 게 한국/일본의 특징이다. 능력과 관계없이 뿌리 깊은 유교와 남아선호사상이 그 이유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