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충격적 제목의 보도가 나왔다. 강현석 경향신문 기자가 쓴 “5·18 공군 수송기, 김해로 ‘시체’ 옮겼다”라는 기사다.

강현석 기자는 ‘소요진압과 그 교훈’이라는 군의 3급 비밀문건에서 5·18 민주화운동 기간 계엄군이 공군 수송기로 ‘시체’를 운반했다는 기록을 찾았다. 5·18 당시 행방불명자였던 민간인 희생자의 시신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5·18 행불자 현황에 따르면 242명 신청자 중 행불자로 인정된 사람은 76명이다. 지난 1997년부터 2018년까지 광주지역 11곳을 발굴했지만 유해 한 구도 못 찾았다. 경향신문 보도는 행불자 가족에게 시신을 찾을 한줄기 희망을 보여줬다.

강 기자가 기사의 근거로 든 문건은 육군본부가 5·18 민주화운동 1년 뒤인 1981년 6월 ‘광주사태의 종합분석’이라는 부제를 달고 243권만 만든 문건이다. 강 기자는 190쪽 분량의 문건에서 이상한 대목을 발견했다. 1980년 5월25일 공군 수송기의 운항구간을 3개로 나눠 명시한 표의 둘째 줄에 의약품과 수리부속품, 특수장비와 통조림 등을 적어놓고 비고란에 ‘시체(屍體)’라는 말이 쓰여져 있었던 것.

강 기자는 ‘시체’라는 말이 5·18 희생자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전제 아래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 우선 5·18 당시 사망한 계엄군일 가능성과 관련해 23명의 군인 시신이 공군 수송기를 통해 김해가 아닌 성남비행장으로 옮겨졌고 광주에 투입됐던 군대의 주둔지가 수도권과 강원도에 있고 김해에는 없다는 점도 확인했다. 또한 군 문서와 전문가를 통해 군인 사망자에겐 ‘영현(英顯)’이라고 표기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군의 다른 문건을 통해 1980년 5월25일의 기록을 찾아 ‘시체’의 흔적을 추적했다. 강 기자는 공군의 광주소요사태 상황전파자료에서 공군 5전술비행단과 35전대가 광주와 성남, 김해구간을 100차례 넘게 운항한 사실을 확인했고, 날짜별 수송기 운항 시간과 구간, 수송품목 등이 기록된 걸 발견했다. 하지만 모든 날짜에 같은 방식으로 적혀 있던 내용이 하필 5월25일에만 수송기 운항구간만 있을 뿐 운송 화물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강 기자는 육군본부가 1982년 2월 편찬한 ‘계엄사’ 문건도 들여다봤더니 5월25일 공군 수송 지원 내용만 누락된 것을 확인했다. 운항 구간과 화물 품목을 포함해 시체라고 표기한 문건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다른 문건에서 운송 화물기록이 없거나 아예 누락됐다는 것은 누군가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으로 돌아왔다.

강 기자가 기사를 쓰고 기대했던 것은 정부의 공식 답이었다. 시체가 5·18 희생자일 가능성이 있다면 지금까지 광주지역에 한정됐던 5·18 행불자 작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15일 현재도 돌아온 답은 없다.

강 기자가 합리적 의심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시간은 짧지 않았다. 5·18 관련 군 기록은 대부분 기밀 문건이다. 1988년 전두환 청문회 때 국회에 제출한 자료와 2007년 과거사위원회 자료가 광주시에 넘어온 일부 문건들을 조사관이 보관하는 경우가 있다. 강 기자는 2년 전 5·18 연구자에게 3급 비밀문건을 입수해 복사해놨다. 그리고 지난 3월 5·18 당시 군작전 정보요원의 행적을 추적하는 연구자가 강 기자에게 5·18 자료를 요청해 논란의 문건을 다시 끄집어내서 보다가 ‘시체’라고 표기된 대목을 발견했다.

강 기자는 “사실 굉장히 놀라웠다. 시체라는 표현도 처음 봤다. 어떻게 이런 단어가 등장했는지 연구자를 찾아 자문했다”며 “한달 정도 자문했다. 문건의 작성 형식, 시체라는 단어의 군 사용 여부 등을 물어보고 합리적 추론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데스크에선 보도를 늦추더라도 시체라는 표기가 과연 5·18 희생자를 뜻하는 건지 교차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강 기자는 일자별 화물운행 정보를 담은 2개의 군 문건을 어렵게 찾아냈다. 결국 세 문건을 비교한 결과 첫 번째 문건에서 시체라고 표기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이 같은 단어를 썼고, 나머지 두개의 문건에서 이를 감추거나 누락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강 기자는 “광주지역 11곳에서 발굴 작업을 했지만 76명 행불자의 유해 1구조차 발견되지 못한 상황에서 1% 가능성이 있다면 김해로 옮겨진 ‘시체’의 정체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았다”며 “관련 보도 내용은 충격적일 수 있어서 더욱 조심했다. 신중해야 했다. 무턱대고 의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데스크에선 감정적으로나 시선을 끄는 쪽으로 가지 않으려고 했다. 휘발성이 높아 합리적 의심을 한 과정과 팩트를 보여주고 독자들의 판단을 구하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 4월 8일 경향신문 "5. 18 때 공군 수송기, 김해로 '시체' 옮겼다"
▲ 4월 8일 경향신문 "5·18 때 공군 수송기, 김해로 '시체' 옮겼다"

강 기자는 “이제 누군가는 합리적인 설명을 해야 될 때가 온 것 같다.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지면 강제 수사권도 있으니 관련 의혹을 해소할 수 있다. 화물 품목을 적었다는 것은 공군도 ‘시체’의 존재를 알았다는 얘기가 된다. 국방부는 의지만 있다면 당시 공군수송기의 관련자 개인 정보를 알 수 있다. 이제 누가 그 문건의 내용을 얘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강 기자는 김해로 옮겨진 ‘시체’가 있었다면 시체를 처리하는 것도 윗선의 명령에 따랐을 것이라고 본다. 5·18 당시 전국에 비상계엄이 확대된 상황에서 행불자 처리 역시 윗선의 명령체계에 따랐을 것이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다. 실제 강 기자는 5·18 당시 영남지역 공군에서 근무한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관련 문건의 진위를 파악해줄 사람은 찾지 못했다.

강 기자는 두 가지를 당부했다. 이제라도 수많은 5·18 군 기밀 문건을 해제해서 누구라도 열람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 기자는 “5·18 관련 언론보도를 보면 어떤 문건을 발견해놓고 해석이 어렵다, 증언은 많지만 원본 문건이 없는 상태에서 누군가 반박하면 확인을 할 수 없다”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공유해서 문건을 본다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정부가 진상을 밝힐 의지가 있다면 문건을 분류해 기밀을 해제하고 다양한 연구자가 접근해 새로운 시각으로 보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기자는 이번 보도로 행불자 문제에 여론을 환기시키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강 기자는 “사실 행불자는 90년대 보상이 되기 전엔 관심 자체가 없었다. 정부 통계에 사망자 집계는 있었지만 행불자는 집계 자체가 없었다. 이제라도 정부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6·25 이후 단일사건 최대의 집단 실종이다. 전사자는 지금도 정부가 발굴하는데 왜 5·18 행불자는 그대로 놔두나”라고 비판했다.

강 기자는 “의혹만 생산되고 사그라지는 게 제일 두렵다. 제 기사가 오보라면 ‘그래 광주 어딘가에 있겠구나’라고 안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만약 오보가 아니라면 광주가 아닌 다른지역에서 찾을 가능성이 열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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