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오늘(5일) 대형 산불이 발생한 강원도 일원에 ‘재난사태’를 선포한 가운데, 강원도 고성·속초 산불이 급속도로 번진 4일 밤 자유한국당에 의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 청와대 주요 인사들이 국회에 붙들려 있었다는 비판이 높다.

비판이 한국당에 집중되자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5일 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어제 오후 3시반 청와대 업무보고를 시작한 뒤 정의용 안보실장이 한미 정상회담 준비해야 되니 이석하겠다고 요구했고 우리는 한 번씩 질문하게 해 달라고 했다”며 “오후 9시20분에 회의를 개의하고 잠시 시간이 지났더니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갑자기 불이 났는데 보내야 되지 않겠나 했다”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는 “전혀 (산불) 심각성을 얘기 하지 않았다. 이후에 질의를 하고 (안보실장이) 이석했다”며 “일부 언론에서 이상하게 쓰고 있는데 상황이 그렇다는 걸 알려드린다”고 주장했다.

실제 상황은 어땠을까. 고성 산불이 상풍을 타고 속초 시내로 번지기 시작한 오후 9시25분경 국회 운영위원회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대상으로 질의를 이어갔다. 오후 10시를 넘길 무렵 더불어민주당 소속 홍영표 국회 운영위원장은 “오후부터 여러 사정이 있어 안보실장이 일찍 떠나면 좋겠다고 했는데 (야당이) 합의를 안 해줬고, 고성 산불이 굉장히 심각한 것 같다. 속초 시내에서 민간인들을 대피시키고 있다. (정의용 안보실장은) 위기 대응 총 책임자라고 양해를 구했더니 안 된다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 안타깝다”며 “대형 산불에 대응해야 할 책임자를 이석(離席)시킬 수 없다고 붙잡아놔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때가 되면 위원장이 직권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가 참석하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사진=노컷뉴스
▲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가 참석하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사진=노컷뉴스

이에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고성 산불 얘기하면서 ‘발목잡기’라고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나 원내대표는 “홍 위원장 발언에 심한 유감을 표한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건 운영위원장이지 여당 원내대표가 아니다. 공정하게 진행해줄 것을 부탁한다. 고성 산불 심각하게 생각한다. 저희도 정의용 안보실장 빨리 보내고 싶다”며 “여당 의원들 말고 먼저 야당 의원들이 질의하게 했으면 조금이라도 빨리 가실 거다. 분명히 아까 안보실장은 한 번 질문할 때까지 계시고 관련 비서관이나 모두 가도 좋다고 말했다. 생방송에서 마치 저희가 방해하는 것처럼 말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질의가 이어지는 동안 속초 시내 대피령이 확산됐고 주민 피해가 속출했다. 10시37분께 홍 위원장은 “모니터를 켜고 속보를 보라. 화재경보가 3단계까지 발령됐다. 전국적으로 번질 수 있는 화재라고 한다. 계속 질의를 하겠느냐. 이런 위기 상황에는 담당자가 이석하도록 문제의식을 함께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뒤 정 안보실장에게 이석을 명했다. 정 안보실장은 10시40분쯤에야 국회를 떠날 수 있었다.

노영민 비서실장은 이보다 늦은 오후 11시30분이 되어서야 청와대로 향할 수 있었다. 11시 20분쯤 홍 위원장이 “나머지 비서실장 등 여기 계신 분들도 지금 운영위 회의를 진행하고 있어서 얼마나 (산불이) 심각한지 모르는데 다들 돌아가서 위기관리 역할을 해야 하는 건지 설명하라”고 말했다.

이에 노 비서실장은 “사건 사고가 있을 때 위기관리센터에 항상 제 위치를 점하고 상황을 판단하고 종합적인 분석을 통해 결정을 내린다. 제가 없으면 다른 분이 할 수 있겠으나, 저 나름대로 역할은 있다”고 답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에 “비서실장이 꼭 가야 한다면 가는 데 동의한다. 추후 질의가 집중될 정책실장, 인사수석, 홍보수석이 꼭 같이 가야 하는 필수 요원인지 말해 달라”며 “(운영위 회의) 차수 변경을 원하고 있는데 안 할 건지 말씀해 달라. 비서실장은 가셔도 좋다”고 전했다.

한편 SNS에서는 화재 지역을 지역구로 둔 이양수 한국당 의원이 회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트위터를 중심으로 강원 속초시고성군양양군의 이양수 의원 프로필이 공유됐고, 이 의원이 지역구 주민들은 내팽개치고 정쟁에 가담했다고 비판하는 게시물들이 현재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에 이 의원은 5일 오전 페이스북에 “오후 11시30분경 고성 대책본부에 도착해 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산림청, 소방청, 강원도 등 관계당국과 협의하며 산불진화에 총력을 다했다”고 밝혔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산불 발생 소식을 듣고 8시쯤 속초로 출발했다. 운영위가 오후 9시20분 속개해 정의용 실장 이석이 논의됐을 때는 이미 속초로 가는 중이었기 때문에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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