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말과 사건 속에서 인권의 가치를 벼리기 위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들의 고민을 미디어오늘에 연재합니다. 우리의 말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에 대한 싹이 되고, 인권감수성이 돋아나는 건넴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문재인 정부가 노동자들의 시위로 올라온 정부라서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줄 알았어요. 작년에 최저임금이 만 원대로 간다고 해서 부푼 꿈도 잠깐 있었지만 그건 바라지도 않아요. 최저임금이 8천원으로 오른 상황에서도 우리는 7천 원대 시급을 받고 있어요. 아니 그것도 주지 않으려고 상여금도 매달 나눠서 임금에 넣겠다고 해요”

“상여금을 다달이 주는 꼼수를 써서 매달 받는 월급이 줄었어요. 그게 100만원 돈이니 애들 학원비를 줄이거나 대출을 받은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우리 애도…”

올 초부터 줄어든 임금에 대해 말하던 현대그린푸드 식당노동자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공부를 더 하고 싶다던 자녀에게 학원을 끊으라고 말했던 순간이 떠올랐나보다. 갑자기 월급이 100만원이나 줄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작년보다 일을 덜 하거나 회사 사정이 나빠져서 월급이 삭감된 것이 아니다. 현대그린푸드는 현대그룹 일가가 최대주주인 식당업체로 현대기아차 공장을 비롯한 여러 공장과 백화점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대기업이다. 달라진 건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뿐이다.

최저임금마저 뺏는 최저임금법 개악

정부가 최저임금(기본급)을 판단하는 데에 상여금과 식대, 교통비 등 복리후생비를 포함(최저임금산입범위)시킬 수 있도록 개악한 결과다. 아랫돌 빼서 웃돌 괴는 수준이 아니라 아랫돌을 빼앗는 격이다. 그 돈을 기업이 고스란히 가져간다. 현대그린푸드가 상여금 월할 방식으로 지급하지 않은 임금인상분은 직원 8000명 기준으로 매달 13억 7100만원, 연 164억원이나 된다.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각종 수당, 상여금 인상분까지 포함하면 회사가 떼먹는 임금은 훨씬 더 크다. 억울해서 노동자들이 줄어든 임금명세표를 들고 회사에 항의했더니 돌아온 말은 “문재인 대통령이 시킨 거니 정부를 원망해라, 2024년까지 임금 동결이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 금속노조 현대그린푸드지회 노조원들이 지난 2월17일 본사가 있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 앞에서 ‘현대그린푸드 최저임금 무력화 규탄 금속노동자 결의대회’를 열었다. 사진=임연철
▲ 금속노조 현대그린푸드지회 노조원들이 지난 2월17일 본사가 있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 앞에서 ‘현대그린푸드 최저임금 무력화 규탄 금속노동자 결의대회’를 열었다. 사진=임연철

사실 최저임금은 기업주가 이윤 때문에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이하를 주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만든 제도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최저임금은 최저선이 아니라 최고선이 된 지 오래다. 게다가 최저임금은 최소한의 생활도 어려운 수준으로 낮고 그마저도 지급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많다. 그래서 유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위원회(약칭 유엔사회권위원회)에는 한국정부에 2009년부터 “노동자와 그 가족이 적절한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도록 최저임금 수준을 보장해야 한다”는 권고를 두 차례나 했고, 2017년 “최저임금이 모든 부문에 적용되도록 할 것과 근로감독과 [위반시] 충분한 처벌을 통해 준수되도록 할 것”을 권고했다. 심지어 최저임금에 식대, 교통비, 수당 등을 포함시키는 것은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이주노동자 최저임금 산입시 숙식비를 공제하려던 시도와 유사하다. 당시 이 정책에 대해 유엔사회권위원회는 우려를 표한 바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작년 5월 오히려 국제인권기구의 권고를 이행하기는커녕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도록 개악했다. 상여금 및 복리후생적 급여도 일정 비율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하고, 2024년부터는 전액 포함되도록 했다. 그 결과 2018년, 2019년 최저임금이 인상되었지만 노동자들의 임금은 오히려 인하되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노동권 후퇴정책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2019년 1월 정부는 최저임금 결정체계와 결정기준을 바꾸는 개악안을 발표하더니 2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신창현의원이 개악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악안에 따르면 당사자인 노동자의 참여가 제한되는 최저임금 구간설정위원회에서 먼저 논의하게 됨으로써 최저임금 인상폭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사회보장급여 현황, 고용에 미치는 영향, 경제성장률’을 포함시켜 마치 고용을 핑계 대며 최저임금 인상을 피해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발의한 안에는 유급주휴수당 최저임금법 적용제외,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업종·지역·사업체규모 등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는 안과 이주노동자 최저임금 예외로 하는 안도 내놓았다. 국회의원들이 누가 더 개악하는가를 다투는 듯하다.

이제는 과로사로 내몰겠다고요?

정부의 노동권에 대한 의도적 역행조치(후퇴조치)는 최저임금만에 국한되지 않는다. ‘과로사법’으로 불리는 탄력근로시간제 확대안이 발의됐다. 탄력근로제 개악안은 소위 사회적 대화기구라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노동시간 제도개선 위원회가 만들었으나 노동자대표들의 불참으로 경사노위 본회의도 거치지 않은 안이다. 그런데도 경사노위는 국회 의결을 요청했고 이를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3월8일 대표 발의했다.

▲ 금속전북지부 현대그린푸드지회 노조원들이 지난 2월17일 ‘현대그린푸드 최저임금 무력화 규탄 금속노동자 결의대회’에서 무대 위에서 율동하고 있다. 사진=임연철
▲ 금속전북지부 현대그린푸드지회 노조원들이 지난 2월17일 ‘현대그린푸드 최저임금 무력화 규탄 금속노동자 결의대회’에서 무대 위에서 율동하고 있다. 사진=임연철

개악안에 따르면 주 52시간 노동시간 제한을 무의미하게 할 뿐 아니라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의 시간외수당마저 주지 않아도 된다. 노동시간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함으로써 주 52시간을 넘게 일을 시켜도 된다. 평균 단위기간을 넓혔으니 연장근로수당 없이 장시간 노동을 시킬 수가 있다. 예를 들어, 3개월은 최소시간으로 일하게 하고, 나머지 3개월은 64시간까지 강제하는 게 가능하다. 주당 최대 52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하면 최장 64시간까지 일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건강권 보호방안이라고는 겨우 11시간 휴식시간을 주는 정도다. 노동자의 건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영화나 방송계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장시간노동으로 심각한 건강상의 위협을 받고 있다. 얼마 전 일주일 동안 70시간 이상 노동에 시달리던 30대 그래픽 제작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을 생각하면 탄력적 근로시간 확대안은 과로사법이라는 말이 들어맞는다. 이 법이 통과된다면 많은 노동자들은 죽음을 강요받게 된다.

이미 한국은 주 40시간제도가 제도가 야근과 특근으로 지켜지지 않는 세계 최장노동시간으로 악명 높은 나라다. 그래서 주52시간제를 도입한 것인데 이마저도 거꾸로 돌리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현재 누리고 있던 노동자의 노동권과 건강권 수준을 후퇴시키는 것은 인권에 반하는 일이다.

노동자의 집단적 권리마저 옥죄는 노조법 개악

설상가상으로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개악에 멈추지 않고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행동권까지 개악하는 안이 발의됐다. 한정애의원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이하 노조법)’ 개악안에 따르면, 해고자는 노동조합원이 될 수 없으며 사업장 출입도 불가능하다. 심지어 해고자가 아닌 하청노동자의 경우도 사업장 출입이나 단체행동이 제한된다. 현대기아차나 한국지엠처럼 하청이나 용역등의 비정규직은 자기가 일하는 사업장에 ‘목적, 시기, 장소, 인원 등을 사용자에게 사전 통보’해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전임자임금 급여 미지급에 대한 처벌규정도 삭제했다. 사회권 규약에 명시된 노동자의 집단적 권리를 무시하는 법안이다.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라는 국제사회의 요구를 지키지 않고 오히려 노동자 결사의 권리를 거꾸로 돌리려 하고 있다. 마치 ILO 핵심협약 비준하려면 노조의 권리도 후퇴시켜야 하는 것인양 후안무치하게 개악안을 내놓았다.

인권을 운운한 정부인만큼 2017년 유엔사회권위원회의 권고를 상기하기를 바란다. 당시 유엔사회권위원회는 “노동조합의 자주적 활동을 방해하는 해고자 노조가입 금지 조항 등에 대해 우려”했으며, “모든 사람이 노동조합에 자유롭게 가입하도록 보장하고 노조 활동에 대한 [행정당국 및 사용자의] 자의적 개입을 예방하도록 노동법을 개정할 것을 권고한다. 위원회는 당사국이 결사의자유와 단결권에 관한 ILO 협약 87호와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에 관한 ILO 협약 98호를 비준할 것”을 권고했다.

노동법 개악은 국제인권기준에 반하는 인권침해

이번 국회 환경노동위 전체회의에서 다루는 3개의 노동악법이 통과된다면 민주노총 조합원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의 삶이 망가질 것이다. 현대그린푸드 여성노동자가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노동자들은 기존의 삶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대출을 받아야하는 처지에 놓일 것이다. 노동소득에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많은 사람들은 기업주의 필요에 따라 장시간 노동을 수행하며 과로로 쓰러질 것이다. 그나마 노조가 있는 경우에는 개악의 효과가 나타나는 시기를 조금은 늦출 수 있을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노동자는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명백한 인권침해적 법 개악이다. 유엔사회권위원회는 “(a)사람들이 현재 향유하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지속적으로 보장 하는 데 필요한 법률의 공식인 폐지 내지는 효력 정지. (b) 법률에 의한 차별 혹은 강제 차별을 통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것”, “(e)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가 보장되는 수준을 감소하려는 의도적인 역행 조치(deliberately retrogressive measures)”를 작위에 의한 인권침해로 보고 금지한다.(유엔사회권의 마스트리히드 가이드라인) 의도적 역행조치에는 국가가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인권을 침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 권리의 기존 향유 수준이 감소되는 정책도 포함된다. 다시말해, 문재인 정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노동법 개악은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금지하고 있는 ‘의도적 역행조치’다. 노동존중을 구호로 건 정부여당이 재벌존중 법안만 발의하는 현실! 문재인 정부는 ‘인권’은 아예 무시하기로 작정한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더 문제는 노동권을 비롯한 사회권의 후퇴는 사회권의 후퇴에만 그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신자유주의정책에 의한 사회권 후퇴는 노동자․시민들의 저항으로 이어졌고 정부는 이를 탄압했다. 즉 사회권의 후퇴는 집회시위의 탄압 등 자유권의 후퇴로 이어진 것을 수없이 목도한 바 있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사회권 후퇴를 사회구성원들의 자유권 후퇴까지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이제라도 사회권의 후퇴조치를 철회하고 민의를 존중할 것인가? 어제 보여준 민주노총 조합원들에 대한 경찰의 탄압은 문재인정부가 기로에 섰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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