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들이 실제로 정보를 얻을 곳이 없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는 정도다. 창업컨설팅업체 말만 믿으면 안 된다. 취재하면서 망한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노후자금 등으로 자신의 인생에 투자하려면 적어도 3달 정도 관심 있는 업계에서 일해볼 열정은 있어야 한다.” 

‘자영업 약탈자들’을 연속보도한 장나래 한겨레 탐사팀 기자가 말했다.

장나래 탐사팀 기자는 지난달 19일부터 총 7차례에 걸쳐 “자영업자 등쳐 억대 연봉 챙기는 ‘권리금 사냥꾼들’”이라는 기사를 시작으로 창업컨설팅업체가 자영업자들의 소박한 꿈과 정직한 땀으로 일군 권리금을 중간에서 가로챈다고 보도했다.

 

▲ 장나래 기자가 한겨레 보도국에서 피해 매수인인 OO필레테스 가맹주와 통화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TV.
▲ 장나래 기자가 한겨레 보도국에서 피해 매수인인 OO필레테스 가맹주와 통화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TV.

 

한겨레 탐사팀은 지난해부터 임대료와 최저임금 말고 자영업자들이 힘든 근본적 원인을 쫓았다. 장 기자는 “자영업자가 힘든 이유가 ‘임대료와 최저임금뿐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조금 다른 접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영업 시장에 매년 100만여 명이 새롭게 유입되고 있다. 이 시장을 노리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다”고 했다.

장나래 기자는 지난해 무작정 부동산과 상가를 방문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부동산중개업자에게 “상가 임대하려면 어떻게 하냐”고 묻자 사장은 “부동산에서 상가 거래하는 거 본 적 있나? 가게 거래는 안 한다. 강남에 있는 한 두 개 창업컨설팅 업체가 꽉 잡고 있다. 서울뿐 아니라 경기권 매물까지 다 갖고 있다”고 말했다.

 

▲ 한겨레 지난달 19일 자 4면.
▲ 한겨레 지난달 19일 자 4면.

 

취재를 위해 장 기자는 일주일간 강남의 A창업컨설팅업체에 위장 취업했다. 입사 요건은 생각보다 까다롭지 않았다. 이력서를 요구하긴 하는데 이름과 생년월일, 메일주소, 경력 등의 간단한 정보만 제출하면 됐다. 장 기자는 “다른 건 있는 그대로 쓰고 자기소개서에는 ‘직접 자영업을 하고 싶어서 이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는 내용을 썼다”며 “이후 진행된 면접에서는 자신들의 급여 체계를 설명하며 동의하는지 묻는 형식적인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장 기자는 하루에 전화 200통씩 돌려 양도·양수할 ‘내 점포’를 구해야 했다. 일일이 매장에 전화를 돌려 매매 의사를 묻고 점주들에게 가게가 팔리지 않는다며 권리금을 0원까지 깎는 작업, 일명 ‘후려치기’를 했다. 전화로 팔 매장을 구하는 작업을 ‘매물화’라고 한다. 매물화 작업은 신분을 속이는 ‘사칭’으로 시작한다. 알바 노동자만 근무하는 매장에서 점주 번호를 얻기 위해 ‘10가지 사칭 매뉴얼’을 참고해 전화했다.

 

▲ A창업컨설팅업체의 ‘점주 전화번호 확인 방법 매뉴얼7’. 사진= 한겨레TV.
▲ A창업컨설팅업체의 ‘점주 전화번호 확인 방법 매뉴얼7’. 사진= 한겨레TV.

 

거짓말을 밥 먹듯 해야 했다. 매뉴얼에는 “같은 프랜차이즈 ○○점 점주입니다. 사장님하고 긴히 상의할 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직접 말씀드려야 하니까 핸드폰 번호 좀 알려주세요.” “매장 앞 도로공사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사장님께 직접 말씀드려야 하니까 핸드폰 번호 좀 알려주세요” 등의 말로 속이며 점주와 연락해 가게를 내놓게 했다.

일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자책하는 경우가 많았다. 장 기자의 입사 동기 중에는 부모님이 자영업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하나(가명)씨는 “자영업자들이 이런 식으로 당했다는 생각이 들면 분통스러워 참을 수가 없다가도 일단 돈을 한푼이라도 벌고 나가야 하니까 같은 짓을 하고 있다”고 괴로워했고 결국 입사 10일 만에 퇴사했다. 장 기자도 “열심히 일 할 수도 없었다. ‘점주들이 자신들 가게 권리금을 깎는 데 동의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일을 파악하는 데 의의를 뒀다”고 토로했다.

장 기자는 200통 전화를 돌리며 충격받은 이유는 개업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절반 이상의 가게들이 망해있었던 점이라고 밝혔다. 장 기자는 “그중에서도 창업컨설팅을 통해 소규모 프랜차이즈 업체를 연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또 슬펐던 점은 점주가 권리금을 컨설턴트에게 3000만원씩 뜯기고도 자신의 가게를 사게 될 사람한테 죄의식을 갖는 모습이 속상했다”고 말했다.

한겨레 기사가 나간 후 창업컨설팅업체들은 누리집(인터넷 사이트)을 폐쇄했다. 강남 회사를 다시 방문한 장 기자는 파쇄된 문서 뭉치를 발견했다. 장 기자는 “허위매물을 올려 판매해 왔기 때문에 폐쇄 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하나 심각한 문제는 탈세다. 권리금을 가로챌 때 현금거래만 한다. 최소한의 이익만 신고하고 이중장부를 써서 세금 신고조차 하지 않는다”고 했다.

 

▲ 신도시 건물 내에 병원이 입점하는 줄 알고 있던 상인 B씨가 의사가 병원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TV.
▲ 신도시 건물 내에 병원이 입점하는 줄 알고 있던 상인 B씨가 의사가 병원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TV.

 

특히 병원창업컨설팅업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이들은 신용불량자나 늙어서 진료할 수 없는 의사들을 섭외해 신도시에 병원을 열 것처럼 속이고 약국을 열려고 하는 약사들과 분양주에게 수백억원의 돈을 뜯어냈다. 장나래 기자는 “창업컨설턴트들은 일 안 해도 천만 원씩 꽂힌다는 달콤한 말만 한다. 이 말에 흔들리지 말고, 꼭 발품을 팔아 공부한 후 창업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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