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현 전 한겨레 사회부 기자가 경찰의 마약 수사에 문제를 제기하는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제출했다. 허 전 기자는 지난해 5월1일 필로폰 투약 혐의로 체포됐고 5월16일 필로폰 ‘양성’ 판정을 받고 한겨레를 퇴직했다. 이후 허 전 기자는 ‘약물중독자의 회복과 인권을 위한 회복연대’(이하 회복연대) 활동가로 일한다.

회복연대는 지난해 10월 출범했고, 약물중독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각계 연구자와 약물중독자가 모여 만든 단체다. 약물중독 예방과 약물중독자 회복, 한국사회에 굳게 뿌리 내려온 잘못된 약물(마약) 제도와 인식 개선을 위해 출범했다.

▲ ‘약물중독자의 회복과 인권을 위한 회복연대’ 허재현 활동가(가운데)와 변호사들이 지난 2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민원실에서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약물중독자의 회복과 인권을 위한 회복연대’ 허재현 활동가(가운데)와 변호사들이 지난 2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민원실에서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허 전 기자는 지난 25일 국가인권위원회에 국내 마약사용자들 인권침해 실태조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냈다. 주요 내용은 △마약 혐의 입건자를 동원해 자행되는 경찰 함정수사 의혹 규명 △마약 혐의 입건자에게 타인 사건 허위진술 강요 △마약사용자들을 범죄 관리의 영역에서만 관리하는 점 등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해 5월16일 허씨가 필로폰(메스암페타민)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허씨는 “데이팅 앱을 이용했다. 그런데 지난해 초부터 계속 ‘좋은 거 하실래요? 그런 거 아세요?’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지난해 3월 해당 문자에 응했다가 ‘좋은 거’를 했다. 마약이었다”고 털어놨다.

허재현씨는 “3월에 한 번 필로폰을 투약했다. 이후 의지적으로 끊어냈다. 하지만 데이팅 앱 접속 때마다 ‘좋은 거 하실래요?’라는 메시지가 계속 왔고 과거와 달리 몸의 반응이 달랐다. 통제가 안 됐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진정이 안 됐다. 5월1일 아침 7시 다시 한번 그 문자에 응했다”고 말했다.

결국 허씨는 경찰에 체포됐다. 허씨는 “모텔 안에서 만남의 상대를 먼저 기다렸다. 10분이 지나도 그가 오지 않았다. 대신 경찰 2명이 왔다. 임의 동행 요청을 받아들여 함께 나가는데 엘리베이터 앞에 어떤 사람이 고개를 푹 숙이고 서 있었다. 직감적으로 제게 메시지를 보낸 사람인 걸 느꼈다”고 밝혔다.

허씨는 나중에서야 사례자 A씨를 만나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사람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회복연대 설명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3월 필로폰(메스암페타민) 투약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에 입건돼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조사 뒤 경찰은 A씨에게 A씨와 상관없는 또 다른 마약 사건의 협조를 강요하고 수차례 수사에 투입했다.

A씨 증언을 종합하면 A씨는 마약수사대 형사로부터 ‘다른 사람 약하는 것을 경찰이 잡도록 돕는다면 기소유예 처분을 위해 힘써줄 것’이라는 취지의 제안을 받았다. A씨는 경찰이 핸드폰 데이팅 앱을 활용해 일반인들에게 마약 사용을 권하는 메시지를 보내 마약 투여 현장으로 유인하고 경찰과 함께 모텔 등으로 불려 다니면서 체포 현장에도 투입됐다고 주장했다.

A씨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을 목적으로 본인과 상관없는 건의 경찰 수사에 강제 동원되는 일을 최종 기소유예 처분받을 때까지 수 개월간 계속 경험했다고 밝혔다.

▲ 사진=gettyimage.
▲ 사진=gettyimage.

특히 A씨는 마약수사대 경찰로부터 참고인 진술서를 허위로 작성하는 일을 강요당했다고도 토로했다. A씨가 마약을 같이 하자고 상대를 유인해 상대가 현장에 나와 경찰에 입건되면 A씨는 참고인 진술서에 ‘만남의 상대가 나에게 마약을 같이하자고 제안했고 이에 경찰에 신고했다’고 허위로 쓰도록 강요받았다고 털어놨다. A씨는 양심에 꺼려졌지만, 경찰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다고 했다.

허재현씨는 “A씨 이외에도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의 증언을 더 확보해 인권위에 인권침해 진정 내용에 포함했다”고 밝혔다.

서울지방경찰청 인권위원인 김자연 변호사는 “마약사용자들이 범죄자라고 해도 수사단계에서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수사기관이 마약사용자의 취약한 처지를 악용하는 방식으로 수사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라고 지적하며 “경찰이 A씨 주장대로 참고인 진술서 허위 작성을 강요했다면 형법상 강요죄나 직권남용, 경찰관 직무집행법 위반 혐의에 해당하는 중대한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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