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7살에 가출한 상태에서 임신했다. 수많은 산부인과를 방문했다. 수술을 위해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만 20살이었던 친구 주민등록증을 빌려 80만원을 혼자 마련해 수술을 받았다.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보호자 동의를 강제하는 것은 청소년 건강권 침해다.” (집회 참가자 ‘라일락’씨)

“불과 어제 일이다. KTX 화장실에 탯줄이 그대로인채 숨진 신생아가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학생인 이 여성은 자수했다. 아마 영아유기죄로 입건돼 2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것이다.” (권혜진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사서분과장)

▲ ‘헌법재판소 낙태죄 위헌 판결 촉구’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낙태죄 폐지 새로운 세계라는 피켓을 들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 박서연 기자.
▲ ‘헌법재판소 낙태죄 위헌 판결 촉구’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낙태죄 폐지 새로운 세계라는 피켓을 들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 박서연 기자.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등 65개 단체가 30일 오후 3시30분부터 서울 중구 세종대로 파이낸스빌딩 앞 광장에서 집회를 열었다. 헌법재판소가 다음 달 낙태죄 위헌소송(2017헌바127)에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이날 주최 측 추산 1500여명이 참여했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전면 비범죄화 △포괄적 성교육과 피임 접근성 확대 △유산유도제 도입을 통한 여성건강권 보장 △우생학적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 △낙인과 차별 없는 재생산권 보장 등을 외치며 현행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집회는 이유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집행위원의 사회로 진행됐다. 수진 전남대학교 페미니스트 모임 F;ACT와 권혜진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사서분과장,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김민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활동가 등이 발언자로 나섰다.

▲ 권혜진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사서분과장이 서울 중구 세종대로 파이낸스빌딩 앞 광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박서연 기자.
▲ 권혜진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사서분과장이 서울 중구 세종대로 파이낸스빌딩 앞 광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박서연 기자.

전남대학교 페미니스트 모임 F;ACT 수진씨는 “국가가 만든 가임기 여성 지도를 기억하시나. 여성을 자궁으로 보는 정부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나. 미혼모 정책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몸을 함부로 굴렸다는 둥 사회에서 보내는 시선은 너무도 뻔하다”고 비판했다.

자신을 19살 고등학생이라고 밝힌 집회 참가자는 “아직도 학교에서 콘돔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낙태죄를 폐지하면 사회가 문란해진다는 걸 보면 한숨만 나온다”며 “하지 말라고 말하라고 그만하라고 소리 지르라고 그러면서 여성의 몸에 국가가 가해하는 모든 재앙은 왜 하지 말라고 할 수 없나? 제 마음대로 제 몸을 컨트롤 하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아직 많은 학생 미성년자 여성이 힘들게 낙태를 결정하고 불법 낙태 시술을 무서워해 위험하게 시도하고 있다. 배를 발로 찬다든지 여성을 거꾸로 묶거나 담배와 술을 억지로 해서 태아가 죽기를 유도한다. 여성의 건강권은 점점 더 침해되고 있다. 낙태죄는 누구를 위한 법이냐”고도 말했다.

▲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낙태죄 위헌’ ‘낙태죄 폐지 새로운 세계’라고 써진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박서연 기자.
▲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낙태죄 위헌’ ‘낙태죄 폐지 새로운 세계’라고 써진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박서연 기자.

이날 집회에는 남성들 모습도 눈에 띄었다. 고등학생 주태영(16)씨는 “낙태죄가 여성들만이 고민할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만이 아이를 낳아야 하는 상황에서 여성의 몸을 두고 다른 성이나 타인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명백한 권리 침해”라며 집회참가 이유를 밝혔다. 김형식(25)씨는 “상식적으로 폐지하는 것이 맞다. 국가가 여성의 권리를 통제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여대에 재학중인 A(22)씨는 “학교 친구들이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한 후에 불안해한다. 정작 남자친구들은 불안해하지 않는다. 학내 자유게시판에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며 암암리에 낙태하는 곳을 찾는 게시글도 봤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대학생인 이초원(20)씨는 “대학생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서 낙태할 곳을 찾아 헤매는 여성의 글을 봤다. 낙태 경험한 사례를 봤을 때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낙태죄 폐지를 두고 토론한 적이 있다. 여자친구들은 모두 자기결정권을 주장했지만, 남자인 친구 중에서는 태아의 생명권을 주장하는 의견도 있었다. 참담했다”고 전했다.

▲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등 총 65개 단체는 이날 조선일보 계열사의 취재를 거부했다. 사진= 박서연 기자.
▲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등 총 65개 단체는 이날 조선일보 계열사의 취재를 거부했다. 사진= 박서연 기자.

한편 총 65개 단체는 집회 현장에 조선일보 계열사 기자들의 취재를 거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주최 측은 이날 “왜곡보도를 일삼는 조선일보와 TV조선, 조선비즈 등 조선일보 계열사의 취재와 촬영은 정중히 거부한다. 집회 참가자들도 조선일보 계열사 인터뷰 요청에 적극 거부해달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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