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이하 한경) 노동조합이 직장 내 성폭력 사례를 접수해 공개했다. 한경 노조는 동의 없는 신체적 접촉 사례까지 나왔다며 사내 성폭력이 만연한 것으로 파악했다. 지난해에도 성희롱‧성추행 사례를 공개했는데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게 한경 노조의 주장이다. 이에 회사는 강력한 징계를 약속했다.

한경 노조는 26일 “더 은밀하고, 교묘하게…여전한 사내 성희롱”이라는 제목의 노보를 통해 직장내 성폭력이 발생한 구체적인 사례를 공개했다.

한경 노보에 따르면 한경 여성 직원은 도움을 받아 저녁을 사겠다는 남성 직원의 제안을 받고 식사를 했는데 술을 강권했고, 스킨십을 시도했다. 남성 직원은 어깨를 붙잡고 입을 맞추려는 등 노골적 성추행을 시도했고, 여성 직원은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자리를 떠났다.

입사 3년차 여성 직원은 남성 직원 선배들이 술자리에 참석할 것을 강권하면서 한 말에 상처를 입었다. “네가 와야 자리가 빛난다”, “남자들끼리 먹으면 재미가 없으니 와달라”라는 말을 들었다. 술자리 불참 의사를 밝히자 술자리 참석률을 인사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입사 초 또 다른 여성 직원은 남성 직원과 술자리에서 “나랑 연애할래? 난 네가 여자로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이후에도 둘만의 술자리를 하자며 회식 이후 쫓아왔고 여성 직원은 근처 가게로 들어가 “무서운 사람이 쫓아오고 있으니 친구인 척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노조는 전했다. 이후 사과를 받았지만 단톡방에서 뒷담화를 하는 등의 괴롭힘을 당했다.

한경 여성 직원들은 “남자 선배들이 수시로 만드는 사적인 술자리에 여자 후배들이 참석을 꺼리자 아예 한달에 한 번 공식 술자리를 만든 것 같다”고 노조에 알렸다. 술자리를 빙자한 성폭력이 만연돼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성희롱성 발언도 아무렇지 않게 나왔다. 남성 직원들은 술자리에서 “나는 와이프와 섹스리스다”라거나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 좋은 데를 못 가서 아쉽다”라는 말을 여성 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했다고 한다.

한경 노조는 “연차나 지시 관계 등을 고려하면 대부분 권력 관계의 상위에 있는 사람이 가해자였다”면서 “지난해 바실회보에서 밝혔듯 성희롱이나 성추행의 본질은 권력관계라는 것이 이번에도 확인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경 노조는 지난해에도 바른언론실천위원회(공보위) 회보를 통해 여직원들의 성희롱 성추행 사례를 공개한 바 있다.

한경 노조는 “이후 편집국에는 성희롱이나 이를 야기하는 불필요한 술자리가 일부 줄었다는 평가도 있다”면서 “그러나 최근 노조에 제보된 사례들은 보면 사내 그릇된 성 인식이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업무지시관계를 이용하거나 잘 드러나지 않는 다른 부서의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등 좀 더 교묘하게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한경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면서 성폭력 가해자에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감사실장 명의로 발표한 입장문에서 한경은 “김기웅 사장은 이번 노보를 접하고 충격적인 내용이라며 ‘앞으로 이런 사건이 발생할 경우 동정 없이, 냉정하고 엄격한 잣대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또한 김기웅 사장은 “여러 차례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했지만 이런 일이 또 발생한 것을 보면 아직까지 이 문제의 심각성을 많은 이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지금까지의 대책으로는 재발을 막을 수 없는 것 아닌가하는 의문마저 든다”며 “회사 차원은 물론 각 국별로도 즉각 방지대책을 마련해 시행하라. 각 국장과 부장은 지금보다 더 큰 책임감을 갖고 직원 간 성희롱이 근절되도록 신경을 쓰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사측은 전했다.

한경은 “회사는 성희롱, 성폭력 사건에 ‘무관용’과 ‘원스트라이크 아웃’ 원칙을 정립하고 엄격한 인사 조치를 해왔다. 감사실은 앞으로도 성희롱, 성폭력 사건이 접수될 경우 이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해 관련자를 징계할 방침이다. 피해자 보호 조치도 더욱 확실히 하겠다”고 밝혔다.

성희롱 성폭행 문제를 해결하려면 징계 요구를 적극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한경 노조는 피해자와의 소통을 강조하며 피해자 보호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강현우 한경 노조 위원장은 “피해자 의사가 중요하다. 노보에 나온 사례 중 한 피해자는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 내용도 있다”면서 회사 측의 단호한 조치 입장이 나왔다는 것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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