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조선·중앙일보 등이 일제히 판사를 공격하고 나섰다. 판사의 기각사유에 비판을 넘어 이 판사가 학생시절 노동·학생운동을 했고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관계 등을 들춰내 비판했다.

문제는 이 같은 신문이 불과 두 달도 채 안 된 성창호 판사의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법정구속 결정 때 더불어민주당과 온라인 등지에서 성 판사의 이력을 문제삼자 이를 ‘사법농단’ ‘선동’이라고 꾸짖었다는 점이다. 입에 침도 안바르고 자신의 논리를 헌신짝처럼 내팽게친 꼴이다.

조선일보는 12면 머리기사 ‘靑 개입이 ‘관행’이라며 기각… “법리판단 아닌 정치판단”’ 아래에 ‘영장심사한 박정길 판사는’이라는 작은 1단짜리 기사를 배치했다. 조선은 박정길(53) 판사가 한양대 법대를 나왔고, 85학번이며 대학 재학 중 노동운동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며 한양대 출신인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나이는 같지만 대학은 1년 선배라고 소개했다. 이 신문은 임 전 실장과 박 판사가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라고 한다며 박 판사는 2003년 대법관 인선 관행이 촉발한 사법 파동 때 연공서열식 대법관 인선에 반대하는 연판장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고 썼다.

조선은 사설 ‘이제 한국에서 정말 판사가 재판서 정치를 하고 있다’에서 “박 판사를 판사가 아니라 청와대 변호사 같은 모습”이라며 “이 판사는 대학 시절 총학생회 운동권 출신이라고 한다. 운동권 출신 중에서도 평소 정치적 생각이 어떻든 재판만은 철저히 법리만을 따지는 판사들이 있다. 하지만 이 판사의 영장 기각 결정문은 완전히 정치 문서”라고 비난했다. 노골적으로 박 판사의 이력을 문제삼은 것이다.

중앙일보도 3면 기사 ‘영장 기각한 박정길 판사, 대학 때 학생·노동운동’에서 한양대 85학번 동문인 원용선(54) 변호사가 지난해 8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판사와 ‘노동운동을 함께한 동료’라고 언급하면서 학생회 활동과 노동운동을 한 경력이 알려졌다고 소개했다. 중앙은 “이 때문에 박 부장판사가 비슷한 시기에 학생운동을 주도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86학번)과 ‘가까운 사이’가 아니냐는 궁금증도 법조계에서 제기됐다”며 “이날 SNS에선 박 부장판사가 우리법연구회 회원이 아니냐는 글도 돌았다. 법원 관계자는 ‘박 판사는 우리법연구회도, (우리법 연구회의 후신 격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도 아니다’고 밝혔다”고 썼다.

이들 신문은 그러나 두 달 전엔 자신들이 판사의 이력을 문제삼아 공격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1일자 1면 머리기사 ‘여의 사법부 공격에 침묵하는 김명수’에서 “여당은 현재 김경수 지사가 실형 선고를 받은 건 해당 판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친분이 있는 ‘적폐 판사;였기 때문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깡그리 무시하는 말”이라고 비판했다.

▲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유죄 및 법정구속시킨 성창호 부장판사. 사진=연합뉴스
▲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유죄 및 법정구속시킨 성창호 부장판사. 사진=연합뉴스
이 신문은 같은 날짜 사설 ‘김경수 유죄 판사에 與 ‘탄핵’ 협박, 대법원장 침묵, 이게 사법 농단’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성 판사 관련 인척청산, 탄핵 언급을 두고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을 했다고 판사를 쫓아내겠다고 한다. 이것이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의 민낯“이라고 비판했다. 민변의 사법행정권 남용사례에 성 판사를 포함시킬 것을 검토하겠다는 것과 재판부 사퇴 청와대 청원이 폭증한 상황을 두고 조선은 “극성 세력들이 총동원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지금이 독재 시대인가. 이야말로 사법 농단 아닌가”라고 비난했다.

중앙일보도 같은날짜 사설 ‘‘적폐 판사의 보복’이라는 민주당…재판 불복 선동 멈춰야’에서 “민주당과 김 지사 측이 재판 내용이 아니라 재판장의 이력에 공격의 초점을 맞춘 것은 이런 증거들을 부인하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라며 “민주당은 판결 불복 선동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김명수 대법원장은 법치주의 훼손 세력에 엄중히 경고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조선 중앙일보가 성창호 판사의 김경수 지사 판결 때처럼 판결을 비판하는 것은 자유롭게 허용돼야 한다. 하지만 그 판사가 학교다닐 때 운동권이었던 이력까지 끌어와 이런 판결에 갖다붙여 공격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이 얘기는 바로 조선일보 자신이 쓴 기사에 나온다. 상황에 따라 합당하다고 여기는 논리조차 바꿔가면서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공격이자 선동이다. 부끄러워해야 한다.

▲ 조선일보 2019년 3월27일자 사설
▲ 조선일보 2019년 3월27일자 사설
▲ 조선일보 2019년 2월1일자 1면
▲ 조선일보 2019년 2월1일자 1면
▲ 중앙일보 2019년 3월27일자 3면
▲ 중앙일보 2019년 3월27일자 3면
▲ 중앙일보 2019년 2월1일자 사설
▲ 중앙일보 2019년 2월1일자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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