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NM 사외이사 출신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CJ로 대표되는 영화계 스크린 독점 등을 해소하겠다며 취임 이후 영화인들을 가장 먼저 만나겠다고 약속했다. tvN을 비롯한 방송계 비정규직 스태프 사망 사건의 재발 방지도 약속했다. 그러나 원론적 답변을 반복했을 뿐 구체적 방안을 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장관 후보자로 소신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26일 인사청문회 질문은 박 후보자가 몸을 담았던 CJ의 영화산업 독점 문제에 집중됐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후 “스크린독점을 못하도록 강제하는 방향으로 개별 영화 스크린 수를 제한하는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고 본다. ‘프라임 타임’ 때 거의 80% 독점이 이뤄진다. 영화 다양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며 “프라임 타임 때 특정 영화 스크린이 50%를 넘지 않도록 제한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박 후보자는 “오전부터 의원들께서 (독과점 문제를) 지적했는데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인을 제일 먼저 만나서 그 얘기를 듣겠다. 독과점 문제는 개선돼야 한다.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박 후보자는 앞선 오전 청문회에서 ‘스크린 독과점 금지 법안’ 찬반을 묻는 질의에 즉답을 피했다. 비판이 이어지자 오후 들어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인 셈이다. 극장업(CGV)과 영화유통업(ENM)을 겸하는 CJ는 롯데·메가박스 등과 더불어 전국 상영관의 92%, 좌석의 93.4%, 매출액의 97%(2017년 한국영화연감 기준)를 독점하고 있다. 영화·언론 등 미디어 업계는 박 후보자가 국내 영화 산업을 독점한 CJ사외이사 출신으로 사실상 이해당사자였다는 점에서 문체부장관으로서 부적절하다고 주장해왔다.

▲ 2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박양우 후보자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2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박양우 후보자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박 후보자가 영화계 종사자들을 만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조경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영화인도 어렵지만 미술인도 어렵고 음악인도 어렵고 체육인도 어렵고 다 어렵다. 목소리 크게 낸다고 해서 먼저 찾아간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신경민 민주당 의원의 경우 “후보자가 CJ에 오래 있었는데 고(故) 이한빛 PD 사건을 아느냐. 제2, 제3의 이한빛 PD가 나오고 있다. ‘킹덤(넷플릭스)’,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SBS)’ 스태프가 사망했다. 직접 계셨던 tvN ‘나인룸’, OCN ‘플레이어’, SBS ‘황후의 품격’도 마찬가지였다”며 “(1주일에) 200시간 일하다가 사고가 난 거 아니겠나. 안전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안전사고로 다치고 죽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문제 어떻게 할 건가”라고 물었다. 박 후보자는 “문체부 표준계약서가 실질적으로 현장에 적용되도록 지도하고 방송통신위원회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련 부처들과 논의해 실행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태를 극복하고 문체부가 바로 서도록 해야 한다는 당부도 있었다.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박 후보자에게 “문체부가 다른 부처와 다르게 블랙리스트 사태로 엄청난 풍파 겪지 않았나. 100퍼센트 회복됐다고 보기 어려운데 정권 입맛에 휘둘리는 사태를 끊어낼 복안이 있느냐”고 물었다. 박 후보자는 “문체부가 힘든 거 다들 아실 거다. 일은 공무원들이 해야 하기 때문에 일할 수 있는 자부심을 갖도록 잘 보듬고 가야 한다. 정말 깊이 유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체부 조직문화혁신위원회 활동 내용을 점검하고 가슴으로 소통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이날 청문회는 불거진 논란에 비해 순조롭게 진행됐다. 박 후보자는 청문회를 앞두고 증여세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 등 의혹으로 ‘문재인 정부 7대 인사원칙’에 반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러나 관련 의혹들을 후보자가 시인하거나 사과하면서, 의원들 질의도 재발 방지를 당부하는 수준에서 정리됐다. 의원들이 서로 질의를 가로막거나 불필요한 트집을 잡는 상황들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 질의 시간이 지체되는 일도 없었다. 이에 여야 간사 간 협의로 오후 보충 질의 후 추가 질의 시간을 의원 1인당 3분에서 5분으로 늘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장관 임명을 전제한 듯한 질의에서 ‘날카로운 검증’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이와 더불어 충분한 답변 시간을 가진 박 후보자가 소신이나 철학을 설득력 있게 밝히지 못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사안의 성격을 막론하고 ‘송구하다’, ‘검토하겠다’는 답변이 주를 이뤘다. 이를 지켜본 안민석 문체위원장은 질의 중간 틈이 날 때마다 장관 후보자는 자기 소신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헌 민주당 의원은 본인 질의 시간을 할애해 “내게 5분의 시간이 있다. 다양한 질문을 받았는데 시원한 답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자유롭게 말하라”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후보자는 “질문을 주는 것에 그때그때 답변하겠다”고 답하는 데 그쳤다.

국회 문체위는 오는 27일 전체회의를 열어 박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여부를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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