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

백기완 선생의 ‘버선발 이야기’는 버선발(맨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아이가 모진 풍상을 겪으면서도 세상을 바꾸는 사람으로 당당하게 일어서는 모습을 담은 이야기다. 버선발은 똥속(욕심)으로 채워진 알범(주인)의 막심(폭력) 때문에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생이별을 하고 험난한 벗나래(세상)을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버선발은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런 과정을 겪으면 겪을수록 강철처럼 더욱 단단해지고 스스로 니나(민중)의 든메(사상)을 깨우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노나메기(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래서 너도 나도 잘 살되 올바로 잘 사는) 벗나래(세상)를 열어간다. 버선발의 한살매(일생)는 그야말로 한 편의 변혁의 대서사시다.

백기완 선생의 글은 한 눈으로 훑어 읽을 수 있는 글은 아니다. 특히 버선발 이야기는 더욱 그러하다. 우선 순수한 우리말임에도 생소하게 생각되는 단어들이 많아 곳곳에서 눈길을 멈추게 한다. 그러나 인내를 가지고 찬찬히 읽다보면 어느새 아름다운 우리말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된다. 주을대(자존심), 뿔대(노여움), 나간집(빈집), 세울(도덕), 똑둥이(쌍둥이), 뿔다구(분노), 바랄(꿈), 하재(희망), 됨새(인물), 한내(큰 강물) 등 당장이라도 모든 글에서 우리말로 바꿀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undefined

그리고 우리말이 이처럼 뜻 전달에 뛰어나다는 것에 새삼 놀라게 된다. 역시 생소한 단어임에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밥네(식구), 날나발(괜한 뜬소문), 말뜸(화두), 큰들락(큰대문), 먹취(제 입에 처넣는 것 밖에 모르는 놈), 묏소리(높은 산자락에 바람 맞는 듯한 소리) 등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단어인데도 느낌으로도 그 뜻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참에 우리말 사용하기 운동이라도 일어났으면 하는 기대를 갖게 된다.

버선발의 이야기는 까마득히 먼 옛날의 이야기 같지만,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모습이고, 노동자들의 삶의 이야기다.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리고 차별도 착취도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가 다 평등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힘이 좀 세다는 먹취(제 입에 처넣는 것 밖에 모르는 놈)들이 똥속(욕심)을 부리면서 세상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과 나누고, 가진 사람들은 이상한 틀거리(구조)와 할대(법)를 만들어 다스리는 사람과 다스림을 당하는 사람의 세상을 만들었다. 그래서 세상은 먹취(제 입에 처넣는 것 밖에 모르는 놈)와 쥘락네(권력층)들이 사람 위에서 사람이 사는 벌개(사람 못 사는 지옥)의 세상이 되고 말았다. 바로 바투(현실)의 모습이다.

버선발은 이런 벌개(사람 못 사는 지옥)의 세상에서도 알범(주인)과 쥘락네(권력층)들의 온갖 악정에 단 한 번도 굴복하지 않는다. 좌절하지도 않는다. 어렵고 힘들수록 도리어 더욱 단단한 새뚝이(거짓을 깨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가 된다.

▲ 백기완 선생(왼쪽)과 단병호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이사장. 사진=통일문제연구소
▲ 백기완 선생(왼쪽)과 단병호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이사장. 사진=통일문제연구소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버선발 이야기 속의 벌개(사람 못 사는 지옥)와 과연 다를까? 사람들은 온통 돈의 무게에 짓눌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다. 청년들은 먹고 살기 힘든 일자리라도 경쟁적으로 찾아나서야 한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 자발적 구속을 위한 경쟁이다. 일자리에서도 차별과 경쟁에 내몰리다 언제 또 쫓겨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속에서 지내야 한다. 오늘도 비정규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노동이 이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바로 버선발 이야기 속의 벌개(사람 못 사는 지옥)가 아니던가!

일한 사람은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가져야 한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당연히 존중 받아야 한다. 일하는 사람이 편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바른 이치다. 그런대 이런 당연하고 바른 이치는 다 무너지고 알범(주인; 자본가)과 먹취(제 입에 처넣는 것 밖에 모르는 놈)와 쥘락네(권력층)들의 세상이 되었다면 이제 모든 노동자가 버선발이 되어 괏따 소리(거짓을 깨뜨리고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는 소리) 한 판을 크게 벌려야 하지 않을까!

백 선생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동자는 노나메기 세상을 꿈 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나메기는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나도 잘 살되 올바르게 사는’ 세상이라고 한다. 버선발 이야기 속에는 노나메기의 민중 사상이 오롯이 담겨 있다. 노동자가 가슴에 담아보기에 더 바랄 것이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 왼쪽부터 단병호 평등사회교육원 이사장, 백기완 선생, 천영세 전 민주노동당 의원. 사진=통일문제연구소
▲ 왼쪽부터 단병호 평등사회교육원 이사장, 백기완 선생, 천영세 전 민주노동당 의원. 사진=통일문제연구소
많은 노동자들이 버선발 이야기를 읽었으면 한다. 노동자들이 버선발을 통해 인내를 배우고, 용기를 배우고, 저항을 배우고, 그래서 지금과 다른 세상의 꿈을 꿀 수 있었으면 한다.

출판사와 저자의 통일문제연구소는 내달 23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출판기념마당을 연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