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하 부산일보 사회부 기자는 지난 13일자 1면에서 미군의 생화학 실험 의혹을 제기했다.

2016년 부산 남구 감만동 8부두에서 미군의 생화학전 대처 능력을 기르기 위한 연구과제 ‘주피터(JUPITR·미군 생물학전 대응) 프로젝트’가 시행될 것으로 알려진 지 3년여 만이었다.

황 기자는 미 국방부의 ‘2019 회계연도(2018년 10월~2019년 9월) 생화학방어 프로그램 예산 평가서’를 단독 입수해 13일부터 연속 보도 중이다. 그의 단독 보도에 지역사회도 “미군 생화학실험 프로그램을 철폐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부산일보 13일자 1면.
▲ 부산일보 13일자 1면.

황 기자는 지난 2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부산 8부두 근처에 부모님이 사신다. 아이를 부모님에게 맡기고 근무하는데,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 미군 차량이 지나가는 걸 봤다”며 “‘아, 주피터 문제가 있었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지난 2016년 부산에서 논란이 된 뒤 소강 상태였다. 내가 주민이고 당사자였기 때문에 보다 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의 국내 생화학 실험은 지난 2015년 경기도 오산 미 공군기지에 살아있는 탄저균 배달 사고가 발생하며 세간에 알려졌다. 2016년 부산에서도 주피터 프로젝트가 논란이었지만 2017년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시험 등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면서 주피터 프로젝트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분위기였다.

황 기자가 입수한 ‘2019 회계연도 생화학방어 프로그램 예산 평가서’를 보면 미국은 주피터 프로젝트에 △2019년 1014만 달러 △2018년 876만 8000달러 △2017년 865만 6000달러의 예산을 지출했다.

또 ‘2018년 회계연도(2017년 10월~2018년 9월) 생화학방어 프로그램 예산 평가서’를 보면 2016년 주피터 예산으로 2751만 8000달러를 마련했는데 모두 합치면 4년간 적어도 5000만 달러 이상을 쏟아부었다. 황 기자는 보도에서 “2016년부터 8부두에서 주피터 프로젝트가 단 한 해도 중단 없이 계속 진행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8부두에서 생화학무기 관련 △환경탐지평가(AED) △조기경보(EW) △생화학무기 감시포털(BSP) 보고 △생화학무기 식별(BICS) 등을 지원하기 위한 테스트를 지속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주한미군이 자국 방산업체의 다양한 생화학 탐지 장비를 들여와 탄저균과 같은 고위험 병원체 시료로 성능 시험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 부산일보 13일자 3면.
▲ 부산일보 13일자 3면.

황 기자는 보도에서 “가장 충격적인 점은 주피터 프로젝트에 화생방 감염 회피를 위한 통합 프로젝트 관리를 지원하기 위해 환경탐지평가 장비를 이용한 ‘살아 있는 매개체 실험’을 포함했다는 점”이라며 “이는 주한미군이 생물무기 탐지 실험을 목적으로 탄저균이나 페스트균과 같은 고위험 병원체를 언제라도 8부두에 들여올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밝혔다.

 

황 기자는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이번 예산평가서는 비공개 문서가 아니다. 구글링을 통해 미 국방부 홈페이지에서 찾았다”며 “다만 자료가 방대했다. 원문을 해석하고 확인하는 작업이 힘들었지 자료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산항 8부두는 인구 밀집 지역으로 주요 물류 시설을 포괄한다. 반경 5km 주변에 대학과 수많은 아파트 단지가 분포하고 있다. 남구와 수영구, 동구, 부산진구 등 주민만 어림잡아 수십만 명이다.

황 기자는 “여러 언론이 그동안 보도해왔지만 탄저균에 감염되면 치사율이 90%를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부산항 8부두는 인구가 밀집돼 있어 피해가 엄청날 것이다. 미국도 탄저균과 같은 고위험 병원체 시료를 실험할 때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지하 특수터널 구조에서 한다. 도심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황 기자는 “2015년 미군은 탄저균을 오산 공군기지에 배달해 논란을 불렀다. 그때도 비활성화 처리된 탄저균 샘플인 줄 알았는데 실은 살아있는 탄저균이었다”며 “미군의 고위험 병원체 관리가 완벽하지 않다. 허점이 많다. 주민들 불안이 가시지 않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황 기자 보도로 지역사회가 들끓고 있는 가운데 국방부는 “주피터 프로그램은 검증된 장비를 사용하고 있어 생화학 실험과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 부산일보에 “부산항 8부두에 직접 들어가서 주한미군 장비를 확인했다”는 입장을 전했을 뿐 해당 장비들이 검증됐다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주한미군 측은 “답변하지 않겠다”고 했다.

부산일보는 사설에서 “부산시와 정부는 8부두에서 진행되고 있는 주피터 프로젝트에 대해 이제는 사실 그대로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보도 이후 “주피터 프로젝트는 시민 안전과 직결되는 사안”이라며 “이 문제를 계속 방치할 수 없다. 국방부는 물론 주한미군과도 논의하고 협의할 것”이라고 했다.

 

▲ 황석하 부산일보 사회부 기자.
▲ 황석하 부산일보 사회부 기자.

황 기자는 “국방부가 입장을 밝혀도 미군이 응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며 “주한미군이 이 사안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미 국방부 생화학방어합동참모국(JPEO-CBD)이 주피터 프로젝트를 총괄하는데 이들이 주한미군과 상의 없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황 기자는 “미국을 무조건 옹호하는 여론이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지역사회의 반발 여론은 뜨겁다”고 전했다. 황 기자는 “독일 소파 규정을 보면, 미군이 고위험 병원체를 독일에 가져오려면 독일 당국 허락이 있어야 한다”며 “우리는 통보 외에 이를 감시·통제할 방법이 없다. 그런 부분을 바꿔야 한다는 지역 여론이 있다”고 말했다.

황 기자는 이번 보도와 관련 “(보도 이후) 지역 연합뉴스와 CBS노컷뉴스 등이 이 사안을 주목했다. 저보다 이 문제를 오래 추적하신 민중의소리 김원식 기자도 자료를 찾아 보도했다”면서도 “아직까지 대형 매체들은 보도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김원식 민중의소리 전문기자도 지난 14일 “단일 기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는 주한미군 평택기지에 주한미군의 이전과 함께 ‘생화학 실험실’도 함께 들어서 본격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2019 회계연도 생화학방어 프로그램 예산 평가서’를 분석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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