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인터넷신문의 편집인 및 인터넷 뉴스 서비스의 기사 배열 책임자는 독자가 기사와 광고를 혼동하지 않도록 명확하게 구분해 편집해야 한다(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편집자는 독자들이 기사와 광고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도록 편집한다(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신문윤리실천요강).

기사형광고에 “취재”, “편집자 주”, “독점인터뷰”, “글(또는 취재)○○기자”, “전문기자”, “칼럼니스트” 등 기사로 오인하게 유도하는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기사형광고 심의규정).

유명무실한 법률과 규정이다. 대부분의 언론, 특히 메이저라고 불리는 언론일수록 잘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신문사가 기사와 광고를 구분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기사형광고(협찬기사), 홍보성 기사를 싣는 것을 이젠 당연시하고 있어 자율 개선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앞서 미디어오늘은 언론사가 홍보대행사와 지면에 실리는 기사를 마치 광고처럼 단가표를 정해 거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 성금으로 운영하는 사회복지 모금기관에까지 직접 협찬기사 계약을 수년간 맺어왔음을 밝혔다.

[ 관련기사 ]

조선일보, 기부단체까지 돈 받고 기사 팔았다
동아·중앙일보도 기부기관과 기사 거래했다
“지면 2/3 보도에 2000만원, 네고 가격 1200만원”

▲ 언론사들은 국민 성금으로 운영하는 사회복지 모금기관에까지 직접 기사협찬 계약을 맺고 기사 1회당 많게는 2000만원 이상을 받았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 언론사들은 국민 성금으로 운영하는 사회복지 모금기관에까지 직접 기사협찬 계약을 맺고 기사 1회당 많게는 2000만원 이상을 받았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이미 추락할 대로 추락한 언론윤리를 방증해서인지 기사를 협찬비와 거래한 언론사들 어느 곳도 독자에게 사과하거나 해명한 곳이 없다. 이 같은 침묵은 ‘앞으로 우리 신문은 광고도 기사처럼 실을 테니 무조건 신뢰해선 안 된다’고 공표하는 것과 다름없다.

특히 국내 최대 법정모금기관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열매)로부터 가장 많은 협찬금을 받고 기사를 팔았던 조선·중앙·동아일보는 2016년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 이후에도 대부분 기사에서 ‘협찬’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언론이 나눔문화 확산을 실천하기 위해 ‘지면 기부’의 일환으로 사회복지기관과 언론공동캠페인을 진행했다면 언론계와 국민으로부터 칭찬받아 마땅했다. 하지만 이들 언론은 독자를 속였다. 마치 공익 캠페인을 선의로 홍보해주는 척하면서 뒤로는 상당액의 협찬금을 받았다. 지면은 광고처럼 거래할 수 없는데도 광고단가를 기준으로 협찬비를 책정했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2014년 이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언론공동캠페인(협찬기사) 진행 현황 자료에 따르면, 모금회가 언론사에 집행한 기사 협찬비 중 드러난 것만 17억원이다. 공동모금회로부터 100만원의 생계비 지원을 기다리는 위기가정 1700곳에 돌아갈 수 있는 기부금이다.

가장 많은 협찬금을 받은 언론사는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모금회의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를 홍보해주고 6억5000만원을 받았다. 조선일보는 본지 외에도 공익섹션인 ‘더나은미래’ 별지로도 기사 1회에 1500만원의 협찬계약을 했고, 계열사인 스포츠조선도 2016년과 2017년 ‘착한가게’ 특집기사를 3000만원에 팔았다.

▲ 지난 2016년 1월26일 조선일보 공익섹션 ‘더나은미래’ 별지 1면. 공동모금회와 조선일보 계열사 더나은미래가 작성한 협약서에는 ‘취재와 지면 제작 1회 협찬료로 1500만원을 지급한다’고 나와 있다.
▲ 지난 2016년 1월26일 조선일보 공익섹션 ‘더나은미래’ 별지 1면. 공동모금회와 조선일보 계열사 더나은미래가 작성한 협약서에는 ‘취재와 지면 제작 1회 협찬료로 1500만원을 지급한다’고 나와 있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도 공동모금회와 협찬기사 계약으로 각각 총 3억8200만원, 1억6000만원씩 받았다. 협찬비 차이는 있지만 다른 신문사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5년간 매일경제는 9950만원, 세계일보·일간스포츠 6000만원, 문화일보·한국경제 5000만원, 헤럴드경제 4700만원, 국민일보 2000만원, 한국일보 1500만원, 한겨레·LA중앙일보 1000만원 등의 기사협약을 공동모금회와 맺었다.

사회복지 모금기관 관련 기사를 써 왔던 한 일간지 기자는 “취재기자 입장에선 최대한 현장을 취재하고 현장 인터뷰를 가미해 성의 있게 기사를 쓴다면 그나마 원래 취지를 살릴 수 있다”며 “그런데 그냥 주는 자료를 받고 그대로 여과 없이 입장을 내보내는 방식으로 진행한다면 말 그대로 돈 주고 기사를 팔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 협찬계약 방식이나 금액의 적절성과 관련해서도 이 기자는 “광고나 협찬 기획에 대한 기준이나 금액 규모의 선이 어느 정도인지 모호한 상황에서 언론사나 집행하는 기관의 문제는 계속 불거질 것”이라며 “그런 지적이 계속되면서 다들 방법을 바꾼다거나 금액을 축소하는 식으로 변화가 이뤄지는데, 정부 산하 공공기관 중에선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되기도 해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봤다.

그렇다고 한국신문윤리위원회나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에서 이를 모니터링해 심의·제재하는 것도 쉽지 않다. 기사만 봐서는 협찬 유무를 파악하기 어렵고, 설사 홍보성 기사나 기사형 광고로 심의한다고 하더라도 과태료 등으로 이행을 강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신문윤리위 관계자는 “지면을 보면 기사와 광고 지면은 구분돼 있고 상식적으로 봐도 기사에 돈을 지급하면 안 되지만 (협찬기사로) 의심 가는 부분이 있어도 근거 없이 우리가 제재하는 사례는 현실적으로 나오기 어렵다”며 “홍보성 기사로 심의하더라도 경고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고 신문사 경영이 어려운 부분도 우리가 도외시하긴 어려워 대개 이런 건 하지 말자고 주의를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신문윤리위와 별도로 기사형광고를 심의하는 광고자율심의기구도 자체 심의규정에 따라 심의·제재를 내리고 있지만 과태료 조항이 없어 언론사에 보내는 심의 권고는 유명무실에 가깝다. 과거 신문법에는 광고임을 명시하지 않으면 2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항이 있었지만 지난 2009년 신문법이 개정되면서 폐지됐다.

▲ 지난해 8월24일 매일경제 28면. 매일경제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기부 캠페인 ‘나눔리더스클럽’ 등의 홍보기사 협약을 맺고도 지면에 협찬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 지난해 8월24일 매일경제 28면. 매일경제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기부 캠페인 ‘나눔리더스클럽’ 등의 홍보기사 협약을 맺고도 지면에 협찬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기사형광고의 폐해를 막기 위해 과태료 조항을 부활하는 신문법 개정안이 지난 19대(김세연 새누리당 의원) 국회에 이어 20대(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한국신문협회 등의 반대에 부딪쳐 통과에 어려움을 겪었다.

김병욱 의원은 “현행법에 따르면 기사와 광고를 혼동하지 않도록 명확하게 구분해 편집하도록 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어 그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법 개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반면 한국신문협회는 “시대 변화에 역행하는 과잉규제”라며 문화체육관광부에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신문협회는 “국내에서 네이티브(native) 광고, 애드버토리얼(advertorial) 등이 독자에 대한 새로운 정보전달 형태로 신문사의 신규 수익원으로 자리매김해 가는 상황에서 이 같은 변화를 봉쇄하는 차별 조항을 신설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광고자율심의기구 관계자는 “현행법에 따르더라도 문체부에서 표시광고법 등을 폭넓게 적용해 광고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를 규제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다룰 수도 있을 텐데 공정위가 매체사를 상대로 팔을 걷어붙이기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신문사 경영이 아무리 어려워도 언론의 영향력이 매우 막대하고 사회적 책임을 최소한 지고 가야 하는데 사회적 책임은 없이 영향력만 행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가 협찬기사 등 변종 기사를 심의하는 데도 한계가 있고 신문법 자체에 과태료 조항이 없어 솜방망이 처분조차 내릴 수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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