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가맹조직 언론담당자가 참여하는 회의에서 십수년 유지된 언론 취재 제한 방침을 재평가한다. 기존 방식을 돌이켜보고 노총 내 이견을 허심탄회하게 나누며 ‘헌법상 노동3권’을 존중하는 매체가 있다면 재검토를 해보자는 취지다.

민주노총 대변인실은 오는 14일 16개 가맹조직과 16개 지역본부 언론담당 실무자들이 모이는 회의에서 이 논의를 안건 중 하나로 올릴 예정이다.

내부 기류 변화는 지난 1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의 매일경제TV 출연에서 감지된다. 김 위원장은 ‘서정희의 경제펀치’에 출연해 서정희 매일경제TV 사장과 20여분간 인터뷰했다. 매일경제TV가 속한 매경미디어그룹엔 민주노총이 취재를 거부해 온 언론사 매일경제와 MBN이 있다.

▲ 2012년 서울 정동 민주노총 건물에 붙은 취재금지목록(왼쪽)과 지난달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 기자석에 붙은 취재제한목록
▲ 2012년 서울 정동 민주노총 건물에 붙은 취재금지 언론사(왼쪽)와 지난달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 기자석에 붙은 취재제한 언론사들. 왼쪽엔 조중동과 4개 종편이 모두 들어갔지만, 오른쪽엔 종편 JTBC가 빠지고 문화일보와 매일경제가 추가돼 있다.

집행부는 출연을 두고 고민했다. 민주노총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 합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조건부’ 비준 등 문제를 두고 부분 파업을 예고하며 적극 반발 중이다. 노동계 입장을 알릴 스피커가 필요했지만 언론 창구는 부족했고 마침 입장 전달에 용이한 인터뷰 프로그램에서 취재 공문을 보냈다. 매일경제TV는 명시적 취재 제한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이 더해져 위원장 출연이 결정된 것.

현재 민주노총이 취재 응대를 제한하는 매체는 일간지 조선·중앙·동아일보, JTBC를 제외한 3개 종합편성채널, 매일경제 등 7곳 정도다. 모두 보수지·경제지다. 제한은 사별로 짧게는 7년, 길게는 20년째 지속됐다. 양상은 시기마다 다르지만 보통 인터뷰, 기고, 취재진 사무실 출입 등을 거부하는 식이다.

재논의 방향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당장 위원장의 매일경제TV 출연을 두고도 내부 비판이 나온다. ‘매경그룹의 논조가 분명한데 왜 출연을 했느냐’ ‘인터뷰 질문부터 노조에 대한 편견이 깔려있다’부터 ‘민주노총 언론 대응방식이 변해야 한다’까지 다양한 지적이다.

대변인실은 이와 관련 “조선·중앙·동아일보, 채널A, TV조선 등 극우적이라 할 만큼 노동권을 고려 않는 매체는 재고 여지가 없지만, 나머지에 대해선 기준이 모호했다. 한국경제는 거부 대상이 아닌데 매일경제는 대상인 기준 문제도 있었다”며 “취재 제한을 최소화해야 한단 내부 의견도 있고 산하 언론노조가 지향하는 올바른 보도 원칙도 있다. 둘을 어떻게 절충시킬지 고민”이라 말했다.

한 민주노총 관계자는 취재진이 언론노조 조합원인 MBN을 거론했다. 민주노총으로선 소속 조합원들의 취재를 거부하는 셈이라 개선이 필요하다는 건의도 계속돼왔다. 실제 MBN지부는 조합원들로부터 민주노총 취재에 애로사항이 있다는 건의를 듣고 지난해부터 민주노총 및 언론노조 관계자를 만나며 관계개선에 힘써왔다.

▲ 2018년 4월 동아일보 보도 ⓒ노동과세계
▲ 2018년 4월 동아일보 보도 ⓒ노동과세계
▲ 2012년 9월13일 조선일보(왼쪽), 2007년 5월19일 매일경제 사회면
▲ 2012년 9월13일 조선일보(왼쪽), 2007년 5월19일 매일경제 사회면

거부 매체 보도 내용은 취재와 무관하게 늘 정해져 있는데 논의가 필요하냐는 반문도 있다. 한 언론대응 실무자는 “우리 주장의 근거·맥락을 다 빼거나 입맛대로 워딩을 활용하고, 인력충원·차별개선 요구를 하는데도 왜곡하고, 흠집만 찾는 걸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다. 사회적 역학관계를 쏙 뺀 파업 때리기 보도도 그대로다. 그런 언론에 우리 입장을 전하면 내용이 바뀌느냐”며 “재논의가 섣부르다”고 밝혔다.

노조 활동가들도 여론에 영향을 주는 언론을 활용하고 싶어한다. 이해관계자에게 질문하는 게 언론 역할이고, 약자에게 언론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취재 거부하는 까닭은 취재에 협조해도 악의적 보도가 줄지 않아서다. 

실제 지난해 왜곡 피해를 입은 인천공항지역지부(인천공항 비정규직노조)는 “왜곡보도는 조합원들에게 큰 상처를 주더라. 답이 정해진 취재에 응하는 게 더 손해”라고 답했다. 조선일보·TV조선 등은 지난해 10월 확인취재도 없이 ‘비정규직노조가 정규직화 과정에서 채용 비리를 저질렀다’고 보도했다.

민주노총 실무자들은 JTBC 사례를 들며 ‘신뢰가 열쇠’라고 했다. 취재거부 매체였던 JTBC는 2013년 ‘철도 민영화’라 불린 수서발 고속철도 자회사 설립에 맞서 장기 파업을 했던 철도노조의 입장을 충실히 다뤘다. 한 실무자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보도까지 거치면서 JTBC는 신뢰를 거의 회복해 거부 대상에서 자연스레 빠졌다. 이젠 조합원이 먼저 찾는 종편 채널”이라고 말했다.

취재 거부 시작은 2001년 ‘6·12 연대파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주노총은 당시 태동하던 ‘안티조선운동’과 결합해 조선일보 취재거부를 처음으로 방침화했다. 

언론은 민주노총이 그해 6월12일 벌인 공동파업에 “이 가뭄에 파업한다”고 일제히 비판했다. 당시 파업한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엔 ‘항공대란’, 병원노동자들엔 ‘의료대란’ 책임을 지라며 “국민이 볼모냐”고 물었다. 왜 파업 하는지 설명은 없고 합법파업에 ‘불법파업’ 꼬리표만 붙였다. 사회적 갈등의 결과물인 파업을 가뭄이란 자연현상과 연결짓는 바람에 민주노총엔 기사를 본 시민들의 비난 전화가 빗발쳤다. 결국 민주노총은 언론이 왜곡한 여론에 떠밀려 레미콘 100대를 끌고 논에 물까지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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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2003년 11월3일 언론노조가 주최한 '노동 적대적 언론환경의 현실과 대책' 토론회 자료집중
▲ 사진=2003년 11월3일 언론노조가 주최한 '노동 적대적 언론환경의 현실과 대책' 토론회 자료집중

대대적 ‘노조 때리기’는 해마다 최소 한 번은 있었다. 19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 파업, 1991년 현대차·현대중공업 파업, 1992년 MBC노조 파업, 1993년 현대그룹노조총연합 파업, 1994년 지하철·철도 파업, 1995년 병원노조 동시 파업, 1996년 노동법 개악(정리해고 도입·파견법 제정) 저지 총파업 등에서다. 파업 이유, 노·사 역학관계, 노조 단결권을 반영하는 매체는 소수였다. 언론은 이런 방식으로 지난 수십년 동안 편파보도를 해왔다.

2001년 당시 언론을 응대한 손낙구 전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은 보도가 ‘고립-분열-섬멸’ 3단계 군사작전과 같았다고 했다. “사회혼란과 경제위기의 주범, 가뭄에도 파업하는 이상한 놈들이라 사회로부터 고립시킨 뒤, 노노갈등 보도로 분열시키면 한 줌도 안 남는다. 그 다음 ‘노조 이대론 안된다’ 기사로 섬멸시켰다”는 것이다.

20년이 지난 지금 보도 지형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손 전 교선실장은 “똑같다”고 했다. 그는 “비정규직 양산도 정규직 노조 탓, 청년 실업도 노조 탓, 경제위기는 대기업 정규직과 ‘공공부문 철밥통’ 때문이란다. 10% 쯤 책임을 가진 경제주체에게 90%의 책임을 돌린다. 보수지·경제지가 진짜 책임있는 재벌 대기업에게 화살이 안 가게 공중전을 편다”고 비판했다.

손 전 교선실장은 현재 조건에선 전술적으로 풀 문제라 제언했다. 그는 “보수·경제지 논조가 개과천선할 리 없다. 취재 거부한다고 문제 기사를 안 쓸 매체도 아니고 협조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그럼 지금 환경에서 취재 거부 방식이 민주노총에 얼마나 유효할지 생각해 봐야 한다. 길을 가는데 살짝 돌아갈지, 뛰어갈지, 쉬었다 갈지의 문제니 그 작은 차이에서 답을 찾으면 될 것”이라 말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노조는 공공기관이 아니다. 취재 대응은 노조가 결정할 문제”라며 “노조 존재 자체를 부정해온 언론사에 응하지 않는 건 성소수자 정체성을 부정하는 언론사에 소수자 당사자가 취재를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취재 제한이 문제라면 언론사 스스로가 민주주의 사회의 기준을 지키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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