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자’ 없다고 피해자의 아픔도 없나
‘감시자’ 없다고 피해자의 아픔도 없나
[미디어 현장] 배지현 오마이뉴스 기자

“저희만 아는 아픔의 시간이었다.”

평범해 보이던 여성은 힘겹게 이 말을 내뱉었다. 옆에 앉은 다른 여성도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은 ‘성령 하나님’으로 불리던 이재록 만민중앙성결교회 목사의 성폭행 혐의를 폭로한 피해자들이었다. 지난해 4월 피해자들은 세상에 진실을 폭로했고, 그 대가는 생각보다 가혹했다.

피해자들을 만나게 된 계기는 제보였다. 서초동의 한 취재원을 만나던 중 “이재록 목사 재판에서 2차 피해가 일어나고 있다”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이 목사의 1심은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었다. 재판은 공개가 원칙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성폭력 사건은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된다. 피해자 신변 보호를 위해서다. 이 목사의 재판에도 피해자 상당수가 증인으로 법정에 섰고, 재판부는 피해자를 위해 법정을 공개하지 않았다.

▲ 이재록 만민중앙성결교회 목사. ⓒ 연합뉴스
▲ 이재록 만민중앙성결교회 목사. ⓒ 연합뉴스
해당 제보는 누군가가 ‘감시자’가 없는 점을 악용해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어려운 선택이었지만, 피해자의 목소리 말고는 이 상황을 제대로 보도할 수 없었다. 조심스레 피해자 대리인을 통해 인터뷰 취지를 설명했고, 피해자들은 결국 다시 언론 앞에 서는 걸 택했다.

피해자들은 교회에서 모범적인 신도였다. 청소년기부터 가족과 함께 교회에 다니면서 폐쇄적인 분위기에 세뇌됐다. 이들은 이 목사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순간에도 피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피해자들은 일반 남녀 관계가 아닌 ‘성령’과의 만남으로 받아들여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 목사 또한 이 점을 강조했다. 대상도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녀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 여성들이었다.

그러던 중 한 피해자가 ‘미투’ 흐름에 어렵게 입을 열며 이 목사의 범행이 드러났지만, 동시에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도 시작됐다. 수사 단계에서는 교회 신도들이 피해자를 ‘문란한 사람’으로 몰고 갔고, 법원 직원이 한 만민교회 신도에게 피해자 명단을 유출하면서 이 명단은 ‘거짓고소녀명단’으로 SNS에 게시됐다.

법정에서는 이 목사 쪽 변호인이 있었다. 이 변호사는 증인으로 나온 피해자들에게 ‘회개 편지’를 언급했다. 만민교회는 이성교제 자체를 ‘죄악’으로 다뤄 관련 내용을 회개 편지에 적게 한다. 피해자 중 몇몇은 중학교 때 남자친구와 놀이공원에 놀러 간 일, 이성인 짝꿍과 대화한 일 등을 적었다고 한다. 변호사는 “이미 그때 남자를 겪어보지 않았느냐”라면서 피해자를 쏘아붙였다. 이 목사의 신체 사이즈나 교회 내 양심선언을 한 부목사와 무슨 관계인지를 묻기도 했다.

▲ ⓒ gettyimagesbank
▲ ⓒ gettyimagesbank
이후 한 피해자는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했다. 이들은 처음으로 이 목사를 고소한 걸 후회했다고 했다. 피해자들은 “이제야 현실을 깨달았다, 단순히 고소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후 생기는 2차 피해가 정말 힘들었다”라고 입을 모았다.

‘피해자는 두 번 운다’라는 기획을 준비하면서 찾은 이 같은 피해사례는 적지 않았다. 한 경찰관은 강간을 당해 남성을 신고한 피해자에게 “콘돔을 끼고 강간했는데 그 시간에 충분히 도망갈 수 있었던 거 아니냐”라고 물었다. 어떤 판사는 “여성이 술을 마시고, 성관계를 맺는 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라는 발언을 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 10명 중 7명이 자살을 생각한다. 피해자는 수사부터 재판까지 끊임없이 ‘피해자다움’을 증명해야 한다.

▲ 배지현 오마이뉴스 기자
▲ 배지현 오마이뉴스 기자
피해자들이 바라는 건 거창하지 않다. 한 피해자는 “평범하게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는 자신이 겪은 피해를 증명하기 위해 그들만이 아는 아픔을 겪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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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03-09 17:49:44
일본에서 전해진, 꽃뱀 프레임은 여전하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더하지. 미투하면 해외로 쫓겨나니까. 언제까지 이런 폐쇄적이고 감추는 문화에서 살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