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찬가지로 독립운동은 아무리 작아도 정당히 평가해야 옳다. 독립운동은 단순히 ‘희생적’이라는 말로 이해할 수 없다. 친일파가 호의호식하며 자녀를 키울 때, 풍찬노숙하고 후손도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을 정도로 목숨을 건 투쟁의 길이었다.
3‧1혁명 100돌을 앞두고 명토박아둔다. 독립운동을 어떤 이유든 폄훼한다면 자기성찰이 얕아서다. 최종 평가 기준은 1945년 8월15일이다. 아무리 독립운동을 했어도 그 시점에 친일을 했다면 변절자일 수밖에 없다. 친일을 했더라도 ‘개과천선’해서 그 시점에 독립운동을 했다면 유공자로 평가해야 옳다. 요컨대 그 시점에 일제와 싸우고 있었다면 그의 사상이 무엇이든, 또 해방 이후의 행적이 무엇이든 그 사람은 독립유공자로 판단해야 상식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정치적, 사상적 이유로 독립 운동가들을 국가유공자에서 배제하거나 낮춰왔다. 그 가운데 극히 일부를 유공자로 선정하면서도 마치 무슨 시혜나 선심 차원에서 주는 모습마저 나타났다. 국가보훈처가 규정에 따른 심사를 한 뒤에 ‘사상’을 이유로 무조건 한 등급씩 깎는 어이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과연 그래도 좋은가. 이는 보수정부냐 진보정부냐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격의 문제다. 현실은 사뭇 개탄스럽다. 두루 알다시피 노덕술은 단순한 친일경찰이 아니다. 독립투사들을 체포하고 고문하는데 앞장선 천하의 악질이다. 일제로부터 훈장마저 받을 정도로 악명 높았다. 탐욕스런 노덕술이 가장 체포하고 싶던 독립투사가 약산 김원봉이다. 현상금 100만원, 지금 돈으로 340억원 안팎이다. 독립운동의 대명사 백범 김구 현상금의 거의 두 배다.
일제가 세계사적 현상금을 건 독립운동의 상징 김원봉은 지금 남과 북 어디에서도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밀양사람’ 김원봉만이 아니다. 월북했지만 숙청당해 평양에서 아예 지워진 독립투사들을 온전히 평가하는 결단이 오히려 대한민국의 정당성을 높일 수 있다. 더구나 평양의 특정 가계 중심 독립운동사 서술에도 간접적이나마 비판적인 눈길을 던지면서 남북을 아우른 독립운동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수 있다. 지금 국가보훈처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언론을 보라. 가령 조선일보는 “독립운동한 ‘북 지도부’도 대한민국 유공자인가?”라든가 “김원봉 독립유공자 서훈? 김일성에게도 훈장 줘라” 따위의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표제를 엉뚱하게 내놓는다. 사주가 친일파인 신문답지 않게 얼핏 애국심이 넘쳐 보인다.
대체 그 ‘애국자’들이 노덕술에 침묵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묻고 싶다. 대한민국은 노덕술의 국가인가? 약산의 원혼은 작금의 국가유공자 서훈 논란을 정중히 거부할 성싶다. 그럼에도 후손들의 의무는 있다. 약산을 온전히 평가하는 일이다. 뒤늦게나마 남이든 북이든 먼저 그를 올곧게 평가하는 나라가 김원봉의 조국이 될 터이다. 나는 그 나라가 대한민국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