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민간교류 행사를 취재할 기자들이 노트북과 카메라 없이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해야 할 판이다. 그동안 허용됐던 사안인데 미국이 갑작스레 대북제재를 강화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남북 민간단체는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2019년 새해맞이 연대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올 들어 처음 금강산에서 교류행사를 갖기로 했다. 이에 따라 노동·농민·여성·문화·청년 등 각계 단체 260여명은 12~13일 방북해 각 부문 및 분야별 상봉 행사를 갖고 금강산과 해금강 등을 찾는다. 올 들어 최대 규모이고, 각 부문별 행사 교류는 앞으로도 확대 발전할 수 있어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정부 행사의 경우 관련 부처인 통일부 등 출입기자단이 꾸려져 방북한다. 하지만 이번 행사는 민간교류라서 주최 측이 취재진을 정했다. 주최 측은 6개 언론사 10명의 기자를 선정했다.

그런데 취재진은 방북을 하루 앞두고 통일부로부터 노트북과 카메라(ENG)를 가지고 갈 수 없다고 통보 받았다.

새해맞이연대모임 추진위원회는 “통일부가 ‘새해맞이 연대모임’에 참가하는 기자단의 장비신청이 일체 불허되었음을 통보해 왔다”며 “통일부는 ‘대북제재’에 관한 사항이라고만 밝혔을 뿐, 관계부처 결정과정과 기준 등 구체적 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추진위는 아무리 대북제재 때문이라도, 기자들 취재장비까지 통제하는 것은 사실상 취재 제한이어서, 문제제기할 수밖에 없음을 전달하고, 재고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노트북과 카메라를 가지고 가지 못하는 이유는 11일 오후 늦게까지도 파악되지 않았다. 통일부는 공식입장만 발표하겠다고 하고 정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통일부는 11일 오후 6시를 넘겨 “언론 취재에 필요한 물품의 반출을 위해서, 현재도 계속 협의 중이며,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라며 “내일 출경 전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나, 물품 반출을 못할 가능성이 높음을 양지해 주기 바람”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통일부는 공식 입장에서 취재 장비 반출 불가 사유를 명확히 밝히진 않았지만 미국의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는 이전 민간교류 행사 때 취재장비 반출이 허용된 전례가 있어 더욱 당황스런 분위기다. 미국으로부터 대북제재를 이유로 취재장비 반출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왜 기준이 강화돼 이번 민간교류 행사에 적용되는지는 알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부는 미국의 입장이 강경해 12일 취재 장비 반출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입장하고 있다. 2018.9.19.평양사진공동취재단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입장하고 있다. 2018.9.19.평양사진공동취재단

취재 장비 반출은 그동안에도 남북 사이 신경전 때문에 논란이 있었다. 지난 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 취재진 노트북에 민감 정보가 담길 수 있다고 판단, 북한의 문제제기 이후 정부는 아무 정보도 담겨있지 않는 노트북을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미국이 대북제재 기준 강화를 내세워 취재 장비의 반출을 불가한 것은 처음이다.

새해맞이연대모임 추진위원회에 속한 6·15 남측위 관계자는 “유엔의 대북제재도 비영리 목적과 인도적 지원에 한해서는 예외 조항으로 두고 있는데 언론의 취재활동과 관련한 장비는 이와 같은 예외 조항에 포함된다”며 “이걸 두고 일반적인 대북제재에 포함시켜 과거에도 없었던 취재 필수 장비를 불허한 것은 상식적이지 않고 국제사회 기준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평화체제로 가는 현재 국면에서 미국이 어떤 속내로 취재 장비 반출을 불가했는지 당황스럽고 황당하다”며 “다른 측면으로 순수한 민간교류 행사에 취재진의 장비를 통제하는 건 언론 자유의 침해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취재진에 포함된 김치관 통일뉴스 기자는 “노트북이나 녹음기는 취재필수 장비라서 반입을 금지하는 것은 취재를 제한하는 걸로 받아들인다. 기자로서는 납득하기도 어렵다”며 “그 이유가 대북 제재 여파라고 한다면 제재 목적이 북측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작동돼야 할텐데 남측 기자단의 취재를 제한하는 용도로 적용이 된다는 것은 원래 취지에 맞지도 않고 과도한 적용이 아닌가 싶다. 한미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서 재점검해야 될 사안”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