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비서 성폭력’으로 2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2심 재판부는 업무상 위력이 있긴 했으나 행사되진 않았다는 1심 무죄 판단을 뒤집었다.

1심의 무죄판단이 뒤집힌 이유에 대해 언론은 2심 재판부가 재판에서 ‘성인지 감수성’ 판례를 읽으며 시작할 정도로 해당 개념을 유의해 판단을 내렸고, 1심 재판부의 ‘피해자스러움’에 대한 고정관념을 비판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성폭력 사건 선도적 판결 내려온 부장판사의 이력을 부각한 언론도 있었다.

▲ 2일 경향신문 1면.
▲ 2일 경향신문 1면.
토요판을 발간하는 주요 종합일간지는 모두 1면에 안희정 전 지사의 유죄판결과 법정구속을 보도했다. 종교면 위주의 국민일보 토요판은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기사를 지면에 싣지 않았다. 서울신문과 세계일보는 토요판을 발간하지 않는다. 다음은 토요판을 발간하는 주요 종합일간지 1면의 안희정 관련 보도 제목이다.

경향신문 “‘비서 성폭력’ 안희정 2심 유죄 법정구속”
동아일보 “안희정 2심선 성폭행 유죄 법정구속”
조선일보 “안희정 2심서 법정구속”
중앙SUNDAY “10개 혐의 중 9개 유죄 안희정, 고개를 숙였다”
한겨레 “‘안희정 권력이용 성폭행’ 법정구속”
한국일보 “‘안희정 위력 행사했다’ 뒤집힌 판결”

이번 판결이 1심과 달랐던 이유는 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을 판단 기준으로 세웠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10면 기사 “1심 뒤집은 ‘성인지 감수성’ 범죄 혐의 10개 중 9개 인정”에서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개념을 따로 설명했다. 이는 성별을 이유로 상대방을 비하하거나 차별하지 않도록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 민감성을 말한다.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유엔여성대회에서 처음 사용됐다. 성폭력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대법원이 작년 대학교수 성희롱 사건에서 이를 언급하면서 성범죄의 새 판단 기준이 됐다.

▲ 2일 조선일보 10면.
▲ 2일 조선일보 10면.
한겨레 역시 5면 “무죄 뒤집은 ‘성인지 감수성’ 법원 ‘피해자다움은 편협한 관점” 기사에서 이번 재판이 ’성인지 감수성‘ 판례를 길게 인용하면서 시작됐고,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에 신빙성을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이 재판은 1심 재판에서 보였던 ‘피해자스러움’을 비판했다. 한겨레는 “홍동기 부장판사는 대법원 판례를 바탕으로 안 전 지사의 성폭행, 성추행 혐의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범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고 특히 ‘피해자다움’에 대한 가해자 쪽 주장을 강하게 비판했다”고 썼다.

안 전 지사 측은 “김지은씨가 도저히 피해자라고 볼 수 없는 행동을 했다”며 반박해왔는데 그 예는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는 다음날 안 전 지사가 좋아하는 순두부 식당을 김지은씨가 알아본 것, 안 전 지사 등과 와인바에 간 점, 안 전 지사가 이용하던 미용실에서 자신의 머리를 손질한 것 등이었다. 

1심은 이를 ‘피해자스럽지 않다’고 받아들였으나 항소심에서는 “수행비서로서 업무를 성실히 수행한 피해자의 모습이 실제 간음당한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변호인의 주장은 정형화한 피해자라는 편협한 관점에 기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 2일 한겨레 5면.
▲ 2일 한겨레 5면.
한국일보는 이와 함께 이번 항소심을 진행한 부장판사가 성폭력 사건에 선도적 판결을 내려온 인물이란 것을 부각했다. 한국일보 3면 기사 ‘무죄 뒤집은 홍동기 부장판사, 성폭력 사건에 엄벌’을 보면 서울고법 홍동기 부장판사가 2017년 2월부터 성폭력 전담 재판부를 이끌어왔고 지난해 1월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 인권보장에 앞장선 공로로 전국성폭력 상담소협의회로부터 우수 재판관으로 선정된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안 전 지사 재판 주심인 성언주 판사에게도 주목했다. 성 판사는 안 전 지사 사건을 맡은 1, 2심 재판부에 유일한 여성 법관이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안 전 지사 사건은 애초 성폭력 전담재판부인 형사 8부에 배당됐지만 안 전 지사 측 변호인과 재판부 사이에 연고 관계가 있어 홍 부장판사 재판부에 배당됐다.

▲ 2일 한국일보 3면.
▲ 2일 한국일보 3면.
언론은 사설에서도 안희정 전 지사의 구속에 대해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낸 판결이라 긍정 평가했다. 다만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관련 사항에 사설을 내지 않았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이번 판결이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한 엄중한 경고뿐 아니라 사회에 여전히 강고한 ‘피해자다움’에 대한 통념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썼다. 한국일보 역시 사설에서 “이번 판결이 미투를 넘어 ‘위드유’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 2일 중앙일보 사설.
▲ 2일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는 1심과 2심의 결과가 바뀐 것에 대해 오락가락 판결을 줄이기 위해 법과 판례 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여성계에서 ‘폭행 또는 협박으로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형법 297조가 문제라고 지적해왔고 했다. 이들은 때리거나 협박하지 않았어도 상대방 의사에 반한 성행위는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왔다. 또한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 성폭행으로 인정하는 대법원 판례도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도 전했다.

중앙일보는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니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수사기관과 법원에 불만을 갖고 억울하다고 이야기한다”며 “(미투 운동 이후) 여러 국회의원이 앞다투듯 형법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국회에서 검토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법 정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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