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우드워드와 오소백 기자
밥 우드워드와 오소백 기자
[미디어오늘 1186호 사설]

밥 우드워드는 ‘워터게이트’ 특종으로 닉슨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당시 우드워드는 워싱턴포스트 입사 2년차 경찰기자였다. 시모어 허시는 ‘밀라이 학살’ 특종으로 1970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허시는 이 사건 취재를 위해 8만km를 날아 다니며 베트남전 참전군인을 50명 넘게 인터뷰했다. 허시는 소속도 없는 프리랜서 기자였다. 결국 밀라이 학살은 미국이 전쟁에서 발을 빼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존 필저는 인도네시아 나이키 공장 전직원이 받는 임금이 타이거 우즈가 받는 광고료보다 못하다는 걸 폭로했다. 언더커버 리포트였다.

▲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한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
▲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한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

▲ 닉슨 사임을 보도한 뉴욕타임스.
▲ 닉슨 사임을 보도한 뉴욕타임스.
이들은 모두 특종기자다. 일흔을 넘긴 이들은 옛 추억에 머물지 않는다. 지금도 현장을 뛰어다닌다. 존 필저는 2015년 9월 취재차 제주 강정마을도 다녀갔다. 허시도 2004년 5월 이라크전에서 미군의 포로학대와 관련한 특종을 해냈다. 우리 언론은 극소수 미군 병사의 일탈로 여겨 국제면에 사진 몇 장 싣고 끝냈지만, 허시는 무슬림의 정신세계를 무너뜨리는 이런 포로심문 방식은 펜타곤이 정식 매뉴얼로 채택한 반인권적 범죄임을 입증해냈다. 기사는 ‘지휘계통(Chain of Command)’이란 묵직한 단행본으로 나왔다. 국내에도 번역됐다.

반면에 우리는 어떨까. 한국기자협회가 한국기자상을 시상하기 시작한 1967년 이래 발군의 특종기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첫 한국기자상을 받은 이는 한국일보 이갑문 기자다. 1966년 9월8일자에 쓴 ‘불국사 석가탑 파손’ 사실을 밝힌 특종이었다. 한국일보는 문화면이 강했다. 1967년 5월 문무왕릉 특종은 문무왕릉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렸다. 물론 소장학자들의 반론도 있다. 1973년 ‘천마총 특종’도 한국일보 작품이었다.

1954년에 창간한 한국일보는 1964년 창간 10주년을 맞아 ‘신라 학술 조사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장기영 사주의 후원 속에 박정희 정부가 원하는 화랑정신의 본고장 경주 취재에 매진한 다소 불순한 의도가 있었지만 한국일보 문화면은 늘 벅찼다. 김훈과 고종석도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였다.

합동통신 이실 기자는 1978년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을 터트렸다. 이실 기자는 현대건설이 지은 사원아파트 900여 가구 중 600여 가구를 국회의원과 장관, 군 장성 등에게 특혜분양한 걸 파헤쳤다. 특혜분양 받은 사회지도층 259명을 폭로했다. 기자들도 있었다. 그래서 70년대엔 ‘촌지를 아파트로 받았다’는 말이 지금도 회자된다. 이실 기자가 터트린 그 아파트가 노래로도 잘 알려진 바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다.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이후 경향신문으로 옮긴 이실 기자는 1985년 정치부 차장 시절 전두환 정권이 대학가 시위를 제압할 목적으로 ‘학원안정법’ 제정을 추진한다는 기사로 편집국장과 사회부장 등과 함께 안기부에 연행돼 고초를 겪었다.

▲ 전두환 정부의 학원안정법 제정 움직임을 특종보도한 경향신문 1985년 7월25일자 1면
▲ 전두환 정부의 학원안정법 제정 움직임을 특종보도한 경향신문 1985년 7월25일자 1면
▲ 민주화추진협의회가 1985년 8월13일 학원안정법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발언하는 것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듣고 있다. 오른쪽은 계훈제 선생.  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민주화추진협의회가 1985년 8월13일 학원안정법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발언하는 것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듣고 있다. 오른쪽은 계훈제 선생. 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랜 군사정권의 패악질은 한국 기자들이 제대로 버틸 환경을 만들지 못했다. 특히 현장 취재에 능한 기자들의 붓은 이런저런 이유로 꺾이기 일수였다. 10개 중앙일간지에서 사회부장을 역임해 ‘영원한 사회부장’으로 불렸던 오소백 기자를 아는 기자는 거의 없다.

우리 언론계는 민완 취재기자 대신 지사형 기자들을 섬기는 풍토가 강하다. 군사정권에도 굴하지 않고 버텼던 분들이라 후배들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 그러나 그 분들은 대부분 기사 대신 칼럼으로 더 알려져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확보된 이즈음엔 무슨무슨 특종한 기자가 더 대우 받아야 이 업계가 레드오션이란 불명예를 벗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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