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정부 주도 사회적 대화’ 참여가 사실상 무산됐다. 민주노총은 28일 정기 대의원대회를 열었지만 지난해 임시대의원대회에 이어 다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자 다수 언론은 ‘민주노총 때리기’에 나섰다. 이튿날인 29일 조간에서 민주노총의 ‘철밥통’ 혹은 ‘기득권 지키기’ 프레임이 등장했다. 일부 언론은 이 같은 프레임을 전개하며 사실관계도 틀렸다. 

다음은 29일 아침신문 1면 관련 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민주노총, 경사노위 복귀 또 무산”
국민일보 “민주노총, 경사노위 참여 놓고 내분… 표결 파행 끝에 무산” (8면)
동아일보 “대화 참여” vs “양보 안돼”… 거리감만 확인한 지도부-강경파 (8면)
매일경제 “민주노총, 경사노위 참여 사실상 무산”
서울신문 “민주노총 사회적 대화 복귀 무산”
세계일보 “민주노총, 경사노위 참여 또다시 무산”
조선일보 “결국… 대통령 요청 걷어찬 민노총”
중앙일보 “민노총 또 복귀 무산 한노총도 뛰쳐나갔다”
한겨레 “민주노총 ‘사회적 대화’ 또 불발… 경사노위 사실상 불참”
한국일보 “민주노총 ‘경사노위 참여’ 불발… 노정관계 안갯속”

일례로 경사노위 불참안을 내며 반대한 주축은 비정규직이다. 하지만 기존 민주노총을 비난할 때 사용하던 ‘귀족노조’ 프레임을 반복해 적용하다 보니 현실을 왜곡했다. 가장 심한 건 중앙일보다. 중앙일보의 이날 관련 기사 첫 문장은 “결국 기득권이 막아섰다”로 시작했다. 중앙일보는 “사회적 대화 복귀 무산의 이면에는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조의 기득권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썼다.

이 신문은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불참 이유를 두고 익명의 학자 말을 빌려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탄탄한 기득권이 노사정 협상 과정에서 균열이 생기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것 아니겠냐”라고 썼다. 서울신문도 사설에서 “‘귀족노조’라느니 ‘갑질노조’라는 지탄을 받는 민주노총”이란 표현을 쓴 뒤 “지금이라도 참여를 결단해야 한다”며 민주노총을 압박했다.

▲ 중앙일보 29일자 6면
▲ 중앙일보 29일자 6면

▲ 민주노총은 지난 28일 서울 강서구 KBS아레나홀에서 열린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공지문과 방송으로 특정 언론의 취재를 거부한다고 알렸다. 사진=김예리 기자
▲ 민주노총은 지난 28일 서울 강서구 KBS아레나홀에서 열린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공지문과 방송으로 특정 언론의 취재를 거부한다고 알렸다. 사진=김예리 기자

다른 신문도 경사노위 불참을 ‘기득권의 집단 이기주의’로 그렸다. 조선일보는 “결국…대통령 요청 걷어찬 민노총”이란 제목의 1면 머리기사를 냈다. 매일경제신문은 같은 날 “민노총 강경파 몽니”라고 제목을 뽑았다. 법대 교수 입을 빌려 “취약계층이나 어려운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행동”이라고도 했다. 세계일보 역시 민주노총이 정부에 요구하는 사항이 “하나같이 ‘귀족노조’의 철밥통을 강화하고 청년 일자리를 가로막는 것들”이라고 원색 비난에 나섰다.

이 같은 보도는 현장에 있었다면 쓸 수 없는 논조다. 실제 대의원대회에선 비정규직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경사노위 참여 반대 발언이 나왔다. 김수억 대의원(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은 “문재인 정부가 단 하나의 약속 중 하나라도 지킨 게 있나. (대화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 문재인 정부에게 김용균님 어머니가 단식을 고민하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경사노위는 김용균님의 죽음 위에 서 있다”며 ‘불참 및 즉각 투쟁안’에 찬성했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이뤄진 공공운수 공무직본부도 경사노위 참여에 반대했다.

반면 사무금융노련과 국민연금, 건강보험노조 등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조들은 경사노위 참가를 강하게 주장했다. 이들은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불참하자 연금개혁 논의가 점점 틀어지고 있다며 들어가야 한다고 발언했다.

▲ 기자들이 지난 28일 서울 강서구 KBS아레나홀에서 열린 민주노총 정기 대의원대회 현장을 찍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기자들이 지난 28일 서울 강서구 KBS아레나홀에서 열린 민주노총 정기 대의원대회 현장을 찍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한편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 불발의 배경을 분석한 보도는 진보성향 언론사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한겨레는 “민주노총, 노동정책 우클릭 반발…결국 ‘사회적 대화’ 탑승 안 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원인을 분석했다. 한겨레는 경사노위 참여 불발에 안타까움이 크다면서도 불참 원인을 현장 발언에 근거해 분석했다. 이 신문은 “이번 민주노총의 결정은 최근 노동정책 흐름에 대한 반발 성격이 크다”며 노동계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와 탄력근로제 확대, 최저임금위원회 개편까지 이어진 정부 정책에 반발이 커졌다고 짚었다.

경향신문은 “최근 정부에서 탄력근로제 확대와 최저임금제 속도 조절 등 노동 현안에서 당초 공약보다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거세게 터져 나왔다”고 분석했다. 서울신문은 사설과 달리 기사에선 과거 정부가 경사노위의 전신 격인 노사정위원회에서 보인 태도 원인을 찾아 “사회협약 이후 정부의 일방통행식 정책 추진, 경영계의 과제 미이행으로 생겨난 사회적 대화에 대한 노동계의 불신이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고 했다.

▲ 한겨레 29일자 5면
▲ 한겨레 29일자 5면

한편 일부 언론사는 민주노총을 비판하며 장애혐오 표현을 사용했다. 한국일보는 이날 3면기사에서 “불참안도 조건부 참여안도 잇달아 부결…‘결정 장애’ 민주노총”이란 제목을 뽑았다. 동아일보 또한 “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두고 지난해 10월에 이어 두 번이나 결론짓지 못하면서 ‘결정 장애 민노총’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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