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전 헌법재판관까지 동원해 ‘이전 반대’

“광화문 이순신 동상을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긴다는 발상은 크게 잘못된 겁니다.”

21일 서울시가 발표한 광화문광장 재조성 설계도에 ‘이순신 동상을 북서쪽으로 400m 이전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김종대(71)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조선일보 지면을 통해 공식 반대하고 나섰다. 조선일보 23일자 21면엔 부산에 사는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이 직접 나왔다. 이 기사는 “이순신을 알지도 못하면서 동상 옮긴다는 발상?”이란 제목을 달고 부산 용두산공원에 있는 이순신 동상과 김종대 전 재판관 얼굴사진까지 실었다.

물론 기사 말미엔 현 정부 비판을 잊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그(김종대 전 재판관)는 안보 상황이 불안한 현재 우리나라의 시국이 마치 임진왜란 직전의 상황을 연상시킨다며 걱정을 숨기지 않았다”고 했다. 김 전 재판관은 “임진왜란 직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변한 조정 대신들이 ‘백성들이 불안해한다’는 이유로 성을 쌓는 일조차 중단시켰습니다. 평화만 강조하고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는 지금은 어떻습니까?”라고 되물었다.

▲ 조선일보 21면(왼쪽)과 1면 기사
▲ 조선일보 21면(왼쪽)과 1면 기사

여기서 언급된 “평화만 강조하고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는 지금”이란 표현은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때 나온 9·19 군사합의를 비댄 말이다. 결국 조선일보는 이순신 동상을 현 정부 비판의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박원순, 조선일보 1면에 “이순신 동상 안 옮길 것”

동상 이전이 논란이 되자 서울시는 한발 빼는 모습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조선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시민들이 이순신 장군 동상의 존치를 원하면 당연히 그럴 것”이라며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조선일보 23일자 1면과 8면에 걸쳐 실렸다.

조선일보는 박원순 시장이 인터뷰에서 한 “시민들이 원하면”이란 말을 제목에선 빼, 마치 박 시장이 무슨 일이 있어도 동상을 안 옮길 것이라고 했다는 투로 제목 달았다.

이순신 동상 이전 논의 1979년부터 계속됐다

이순신 동상 이전과 관련해 한국일보는 23일자 12면 머리에 ‘때마다 흔들린 이순신상, 이번엔 괜찮을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어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때부터 계속된 동상 이전 논의를 되짚었다.

광화문광장에서 경복궁과 그 너머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경관은 1969년에 세워진 높이 17m인 이순신 장군상에 가로막혀 있다. 250m 떨어진 세종대왕상(2009년 설치)도 광화문광장 한가운데 위치해 공간 활용에 불편을 준다.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에 걸맞지 않게 지나치게 크고 권위적이란 지적이 꾸준했다.

▲ 한국일보 12면
▲ 한국일보 12면

특히 이순신 동상 이전 논의는 역사적 고증이 잘못됐다는 전문가들의 잇단 지적과 시민 여론에 밀려 서울시가 1979년 문체부에 동상을 다시 만들어 세우자고 요청했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으로 흐지부지됐다. 2004년 이명박 시장도 이순신 동상을 시청 앞으로 이전하려 했지만 이번엔 시민들 반대로 중단됐다. 2009년 세종대왕상이 들어설 때도 광화문광장의 대표 상징물을 놓고 이순신 동상 이전을 논의한 바 있다.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섣부르게 동상 이전을 꺼냈다가 한 발 뺀 서울시도, 무작정 이전하면 안 된다며 안보논리까지 들이대는 조선일보나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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