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당시 ‘불법 군사재판 재심’에서 지난 17일 무죄 취지의 판결(공소 기각)이 나오면서 4·3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에 다시 관심이 모이고 있다.

4·3 희생자나 지원단체는 국회에서 4·3 특별법(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해왔고, 이날 제주지역 강창일·오영훈·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불법 군사재판을 원천적으로 무효화하고 희생자 배·보상 등 국회에 제출된 4·3특별법 전부개정안의 통과를 위해 논의의 속도를 높이겠다”고 했다.

[관련기사 : 제주 4·3 군법재판 재심…70년 한 풀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4월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서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4월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서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4·3 70년인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4·3 추념식에 참석해 “4·3의 완전한 해결”을 말했지만 정작 관련 부처인 행정안전부와 자유한국당 일부 국회의원은 4·3 특별법에 부정적이다. 현재 강 의원이 지난 2016년 제출한 4·3 특별법 일부개정안,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 등 11명이 제출한 4·3 특별법 전부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오 의원 등 60명이 지난 2017년 12월 발의한 4·3특별법 전부개정안이 대표할 만하다.

개정안의 핵심은 18명이 신청한 재심에서 무효화한 4·3 당시 군법회의(군사재판)의 다른 희생자까지 구제하는 내용이다. 오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 제13조를 보면 1948년 12월과 1949년 7월 고등군법회의 명령서에 기재된 사람의 군사재판을 무효로 한다.

이번 재심을 대리한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미디어오늘에 “개별적으로 재심청구(개인의 권리행사)를 해야만 한다”며 “일괄 무효화하는 법이 필요한데 이젠 사법부 판단도 나왔으니 입법해야 한다”고 말했다. 확인된 군법회의 희생자가 2530명인데 결국 이번에 재심을 신청한 18명 말고는 서류상 죄인으로 남아야 한다.

20대 국회 상임위 회의록을 확인한 결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는 해당 법안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단 한 차례 논의했다. 지난해 9월11일 1차 법안심사소위원회를 보면 행정안전부와 자유한국당 의원이 4·3 특별법 개정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 행정안전부 로고
▲ 행정안전부 로고

심보균 행안부 차관은 “군사재판 무효화는 법무부 등 관계부처 의견을 들어 본 결과 사법부 권한과 법적 안정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고 유사 입법례가 없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필요시 재심개시 결정사유를 좀 넓혀 재판절차를 통해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 인권침해의 근거 조항이 위헌·무효 등으로 나왔더라도 소송한 사람만 구제하겠다는 방침을 바꾸진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후 희생자 배·보상에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유민봉 자유한국당 의원은 “4·3의 경우 보상 추정액이 1조8000억, 보상 규모가 (다른 과거사 사건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굉장히 크다”며 “우리 정부는 이 부분에 대해 일관성 유지가 안 돼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노근리 사건도 얼마든지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소위원장을 맡은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솔직하게 쓴소리를 하면 행안부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며 “신중 검토가 아니라 정부가 수용할 수 있는 게 어디까지인지 분명히 가지고 와 논의해야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홍 의원이 “재정 당국과 협의를 10월 말까지 해달라”고 했더니 심 차관은 “1조8000억이라는 규모 때문에 협의하는데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고 답했다.

4·3 특별법 필요성의 의문을 제기하는 의원도 있었다. 송언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수십년 됐다”며 “이것을 쫓아가면서 사실관계 확인하고 보상금을 준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라고 말했다. 송 의원은 “과거사 정리 기본법 이후에 나오는 것들은 기본법에 따라 정리하는 것으로 의사결정이 됐다”며 “이후 다시 이런 상황이 벌어지니, 어디까지 과거를 거슬러 올라갈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 국회 본회의장. 사진=이치열 기자
▲ 국회 본회의장. 사진=이치열 기자

이에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본적으로 시간이 어찌 되었건 국가 책임에 의한 집단 학살 부분에 있어 손해배상 소멸시효기간을 한정하지 않고 국가가 배상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이제 시대적 흐름”이라고 4·3 특별법 필요성을 인정했다.

군사재판 무효화도 언급했다. 이 의원은 “‘소송해라, 그러면 줄게’ 하는 방식으로 (구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며 “독일의 사례를 알고 있듯 국가가 입법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간명하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에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많은 분이 앞으로도 수십 년간 소송을 계속하기 될지 모르는 일”이라며 “우리가 시혜적으로 배·보상 문제를 논의하고 법률로 어떤 혜택을 주는 게 아니라 응당 책임져야 할 일을 일거에 하기 위한 논의를 하고 있다는 점을 공유했으면 한다”고 했다.

이날 이후 국회에선 관련 논의를 진행하지 않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