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추진해왔다. 정규직화 기조를 타고 민간기업에서도 정규직화가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정규직화가 곧 양질의 일자리를 뜻할까? 정부가 말하는 정규직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민간기업에서 정규직 전환된 노동자들이 긍정적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현상은 자회사 설립한 기업뿐 아니라 직접고용한 기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용형태가 바뀌었을 뿐, 임금과 노동조건이 기대만큼 오르지 않았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민간부문의 정규직 전환 사례 분석을 통한 좋은 일자리 창출 모델 발굴’ 연구 결과에서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지난해 파리바게뜨, SK브로드밴드, 딜라이브 등 세 사기업의 정규직 전환 사례를 조사했다.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파리바게뜨는 지난해 자회사를 세워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정규직 채용했다. 가맹본부인 파리크라상이 51%, 가맹점이 49% 출자해 자회사 PB파트너스를 세웠다. SK브로드밴드는 인터넷‧IPTV 설치와 수리를 맡는 자회사 홈앤서비스를 세우고 103개 협력업체 노동자 5200여명을 채용했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딜라이브는 인터넷 설치·수리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본사가 직접 고용했다.

이들에게 설문조사와 면접에서 ‘당신은 지금 정규직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다수가 ‘아니’라고 답했다. 딜라이브의 경우 원청으로 직접고용됐음에도 자신이 정규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절반을 조금 넘었다(55.9%). SK브로드밴드의 경우 전환자가 자신을 정규직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10명 중 1명 꼴이었다(10.3%). 전환 후 나아진 바가 없다고 답한 비율도 60%나 됐다. 파리바게뜨 자회사 노동자의 경우 73.6%가 자신을 정규직으로 인식했다.

▲ ‘민간부문의 정규직 전환 사례 분석을 통한 좋은 일자리 창출 모델 발굴’ 조사 결과. 그래픽=이우림 기자
▲ ‘민간부문의 정규직 전환 사례 분석을 통한 좋은 일자리 창출 모델 발굴’ 조사 결과. 그래픽=이우림 기자

자신을 비정규직으로 인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임금수준과 노동, 고용조건이 기대한 만큼 나아지지 않아서다.

파리바게뜨와 SK브로드밴드 자회사 정규직 전환자들은 원청 직접고용이 아닌 점을 가장 많이 꼽았다(파리바게뜨 28.7%, SK브로드밴드 56.4%). 직접고용이 이뤄진 딜라이브의 경우 고용불안이 여전하다는 점이 가장 컸다(37.5%). 보고서는 “딜라이브가 현재 매각을 추진하며, 전환자들의 임금과 복리후생을 정규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봤다. 세 기업 모두에서 ‘임금과 복지 등 처우가 기대보다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을 다음 이유로 꼽았다.

실제로 대부분 기업에서 월평균 임금은 정규직 전환 이후 오히려 낮아졌다. 기존 협력업체의 임금조건을 유지하면서도, 여러 업체가 각각 다르게 지급하던 수당이 사라져 실질적인 임금이 낮게 나타났다. 이 현상은 파리바게트를 뺀 기업에서 모두 나타났다. 보고서는 평균임금이 223.3만원으로 17만원가량 증가한 파리바게트의 경우에도 임금조건보다는 최저임금 인상 시기와 맞물려 정규직 전환 효과라고 평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봤다. 

세 기업에서 근무시간이 줄고 휴일이 증가한 점도 정규직 전환 효과인지는 미지수다. 보고서는 노동조건 향상이 주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 실시 등과 같은 제도 변화와 맞물려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고전적 의미의 ‘정규직’이 현장 노동자들 인식과 어긋나는 데서 기인한다. 전통적인 기준에서 정규직은 한 사용자에게 소속돼 상시‧지속 업무를 하는 고용형태를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고용계약 기간이 정해지지 않고 △풀타임 노동을 하며 △단일 사용자와 관계 맺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문제는 정규직의 형식을 갖췄다고 해서 일자리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현장 노동자들은 실질적 고용안정성과 임금 수준, 복리후생 등을 정규직을 구성하는 요소로 제시했다”고 했다.

보고서는 정규직화를 논의할 때 기존 논의에서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제언했다. 임금과 노동시간, 안전보건 수준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양질의 일자리가 목표라면 정부 노동정책의 정규직화 담론이 ‘직고용이 되면 정규직이다’에 그쳐선 안 된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자회사 정규직 전환의 경우 언제까지나 직접고용의무의 예외적인 사례일 뿐이며, 이 경우 근로계약과 노사교섭에서 원청의 책임을 명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법도 좁은 의미의 근로계약에서 벗어나 가맹계약 등 다양한 ‘계약적 신분’ 관계로 다면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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