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통신사업자 SK텔레콤이 국내 1위 케이블TV사업자 CJ헬로비전 인수에 나서며 합병논의가 불거졌던 2015년 11월, 지상파3사는 한 마음으로 ‘결사항전’의 태세를 보였다. 당시 지상파3사 메인뉴스에 등장했던 SK텔레콤은 미디어시장을 노리는 ‘질 나쁜’ 통신재벌로 묘사됐다.

그리고 2019년 새해, 견원지간처럼 보였던 지상파와 통신사가 OTT(Over The Top=인터넷 스트리밍 동영상 서비스)플랫폼 통합을 전격 선언했다. 지상파의 푹(POOQ)과 SK브로드밴드의 옥수수(oksusu)가 손을 잡았다. 이들은 “아시아의 넷플릭스”가 되겠다며 대대적 홍보에 나섰다.

지난 3일 지상파3사와 SK텔레콤은 통합OTT서비스 협력과 관련한 MOU를 체결했다. 지상파3사는 이날 MOU를 두고 “글로벌 미디어 사업자에 대항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OTT 사업 역량을 갖춘 토종 사업자 간 연합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밝혔다.

▲ 1월3일 지상파3사와 SKT 동영상 플랫폼 공동사업 양해각서 체결식에서 지상파3사 사장단과 SKT텔레콤 사장이 활짝 웃고 있다. ⓒ지상파3사제공
▲ 1월3일 지상파3사와 SKT 동영상 플랫폼 공동사업 양해각서 체결식에서 지상파3사 사장단과 SKT텔레콤 사장이 활짝 웃고 있다. ⓒ지상파3사제공
▲ 게티이미지. 디자인=이우림 기자.
▲ 게티이미지. 그래픽=이우림 기자.
이번 통합은 지난해 11월 LG유플러스가 넷플릭스와 연합전선을 형성하며 논의에 속도가 붙었다. 한국에서 안정적인 통신사 망을 공급받고자 했던 넷플릭스에게 IPTV와의 제휴는 오랜 숙원 이었고, IPTV업계 3위인 LG유플러스는 도약의 계기가 필요했다. 이제 LG유플러스 가입자는 손 쉽게 넷플릭스 콘텐츠를 볼 수 있게 되었고, 이 해외 스트리밍 서비스는 순식간에 대한민국 거실 앞 TV로 진출했다.

앞서 지상파3사를 대변하는 한국방송협회는 지난해 6월 양쪽의 제휴사실이 알려지자 성명을 내고 “미디어산업 생태계 파괴의 시발점”이라고 비판한 뒤 LG유플러스를 향해 “국민의 땀과 함께 이룩한 고도의 통신망을 외국계 자본에 헌납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갈등관계였던 유료방송사업자와 OTT간의 ‘동맹’이 결국 지상파와 IPTV와의 동맹으로 이어진 셈이다. 지상파와 통신사 간 ‘협력’은 여태껏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앞서 SK텔레콤의 IPTV SK브로드밴드는 ‘옥수수’라는 OTT플랫폼을 선보였고, 지상파3사는 자사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OTT플랫폼 ‘푹’을 내놨다. 둘은 경쟁관계였다. 지상파는 4년 전 “통신사가 주는 마약을 맞지 않겠다”며 독자플랫폼 노선을 걸었으나 적자경영이 계속되자 온라인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한다는 절박함이 더해졌고, 이는 LG유플러스의 ‘넷플릭스 공세’에 맞설 무언가가 필요했던 SKT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졌다.

지상파 사정에 밝은 방송업계 관계자는 “LG유플러스와 넷플릭스의 결합에 SKT와 지상파가 자극을 받았던 게 사실”이라고 전하며 “이번 협약은 지상파와 통신사 양쪽 모두 승자”라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껏 OTT는 각자 플레이하면서 서로 핸디캡을 갖고 있었지만 이번 결합을 통해 최소 300만 명 이상 유료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통신사의 마케팅능력도 기대해볼만 하다”고 전한 뒤 “이번 협약은 콘텐츠사와 플랫폼사 간의 결합이다. 앞으로 종편과 CJ쪽 콘텐츠까지 가져올 수 있다면 규모를 확실하게 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 푹의 가입자 규모는 약 68만 명이며, ‘옥수수’ 회원 수는 946만 명이다. ‘옥수수’ 입장에선 자체 콘텐츠가 부족한 상황에서 양질의 콘텐츠를 갖게 됐고, 지상파 입장에선 946만 명의 회원을 확보하게 됐다. 업계에선 SK텔레콤이 지상파 뉴미디어전략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김혁 상무를 최근 영입했던 것 자체가 이번 협약을 위한 준비과정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상파3사와 SK텔레콤은 ‘옥수수’와 ‘푹’을 통합해 신설 법인을 출범시켜 새로운 브랜드 및 서비스를 내놓고, 단순한 요금제를 내놓으며 접근성을 강화할 계획이다. 향후 SK텔레콤은 대규모 투자 유치를 주도하고 지상파는 재원을 바탕으로 콘텐츠 제작에 나선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MOU를 체결한 뒤 “신설 OTT에 2000억 원을 투자받을 생각”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 지상파3사. 디자인=이우림 기자.
▲ 지상파3사. 그래픽=이우림 기자.
지상파3사는 “방송3사가 보유한 콘텐츠 제작 역량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고, 국내외 다양한 콘텐츠 사업자들과의 활발한 제휴·협력을 통해 양질의 미디어 콘텐츠를 수급·공동 제작하는 등 향후 방송사와 제작사를 비롯해 다양한 파트너와의 제휴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어 “통합법인은 글로벌 파트너와 제휴를 통해 한류 확산과 K콘텐츠 글로벌 시장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수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SKT라는 통신자본이 지상파와 사업파트너가 되면서 지상파3사의 SKT관련 보도가 위축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례로 2016년 SBS에선 “야한방송 추천까지…SK브로드밴드, 청소년 이용해 돈벌이”, “SKT 부끄러운 1위…소비자 피해·과징금 최다”와 같은 비판 리포트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나 지난 3일 SBS ‘8뉴스’는 이번 소식을 전하며 “방송3사와 SK텔레콤은 5G 시대에 맞는 차별화된 콘텐츠로 국내 미디어 시장을 이끌고, 한류 확산을 위한 해외 진출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홍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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