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방송을 어떻게 했는지 아직도 얼떨떨하다.” 

KBS ‘뉴스9’ 새 진행자 엄경철 앵커는 2일 통화에서 “첫 방송 이후 동료들이 여러 피드백을 해주고 있는데 그 반응들을 보면서도 내가 어제 어떻게 뉴스를 했는지 모르겠다”고 ‘얼떨떨한 소감’을 밝혔다.

새해를 맞아 지난 1일 KBS 뉴스가 개편됐다. 11년 만에 메인뉴스 ‘뉴스9’ 오프닝 음악이 완전 바뀌었고 스튜디오도 새 단장을 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 받은 건 뉴스9 새 앵커 ‘엄경철 기자’였다. 

그는 2010년 3월 공식 출범한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의 초대 위원장으로 보수 정권의 언론 장악에 맞선 대표 언론인이다. 공정방송 투쟁을 함께 한 양승동 PD가 지난해 4월 KBS 사장에 임명된 직후 KBS 동료 선·후배들은 뉴스9 앵커 1순위로 엄경철 기자를 꼽았으나 본인이 고사했다. 

▲ 엄경철 KBS 뉴스9 앵커는 지난 1일 첫 방송에서 ‘부의 불평등’이라는 이슈를 제기했다. 사진=KBS 뉴스 화면
▲ 엄경철 KBS 뉴스9 앵커는 지난 1일 첫 방송에서 ‘부의 불평등’이라는 이슈를 제기했다. 사진=KBS 뉴스 화면
엄 앵커는 “얼굴이 다시 알려지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고,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였기에 고사했다. 또 개인적으로는 자유로움 없는 라이프 스타일이 부담스러웠다. 그 때문에 후배들에게 그동안 욕을 많이 먹었다”고 말했다. 메인뉴스 앵커를 고사한 상황에서 ‘엄경철의 심야토론’ 진행까지 거부할 순 없었다. 그는 지난 6월부터 연말까지 심야토론 진행자로 활동했다.

엄 앵커는 뒤늦게 뉴스 앵커를 맡게 된 까닭에 “뉴스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이제는 해야 한다’는 주변 권유도 많았고 또 무책임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다들 뉴스를 살리겠다고 동분서주하는 마당에 더 이상 도망갈 수 없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개편 첫 날 KBS 뉴스9은 80대 노인, 40대 실직자, 고시원 청년 삶을 조명하며 ‘부의 불평등’이라는 의제를 던졌고, ‘뉴스줌인’이라는 심층코너를 통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출석한 국회 운영위원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세밀하게 보도했다. 엄 앵커는 ‘부의 불평등’, ‘혐오와 차별’, ‘청년의 고통’, ‘시민의 정치’ 등 4가지 이슈를 KBS 뉴스가 주목해야 할 의제로 꼽았다.

엄 앵커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통과에서 확인했듯이 한 노동자의 비극적 죽음으로 시민들이 법 개정 필요성에 크게 공감했고, 결국 법까지 바꿨다. 불평등 문제와 청년의 고통, 그리고 시민의 정치까지 일련의 흐름은 뉴스로서 조명해야 한다. 이런 이슈를 의제화하고 집중 리포트로 꾸준히 소화한다면 ‘KBS 뉴스는 다르다’는 평가를 해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 언론들이 정상화하면서 본격적으로 ‘보도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 앵커의 역할도 ‘읽어주는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JTBC 뉴스룸을 진행하고 있는 손석희 앵커가 대표적이다. 시청자들은 앵커에 보다 많은 것을 기대한다. 

▲ 엄경철 KBS 뉴스9 앵커. 사진=미디어오늘
▲ 엄경철 KBS 뉴스9 앵커. 사진=미디어오늘
엄 앵커도 “뉴스 앵커 역할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뉴스 생산에 보다 적극적이어야 하고 그것을 프로그램으로 구현해야 하는 책무도 있다”며 “매체도 많은데다 각 매체마다 특징이 다 다르다. 어느 때보다 뉴스 경쟁이 치열한 시대다. 시청자들도 자기 성향에 따라 뉴스를 적극적으로 고르고 직접 찾아서 본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서 ‘KBS 뉴스는 앞으로 어떻게 달라지느냐’고 묻지만 형식을 아무리 바꾼다고 해도 뉴스는 뉴스다. 세상에 사실과 진실을 전달한다는 본질은 달라질 수 없다”며 “‘부의 불평등’ 등 4가지 의제를 중점적으로 조명한다면 그래도 ‘KBS가 조금 달라졌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뉴스 형식보다 양질의 콘텐츠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겠다는 포부다.

엄 앵커는 손석희 앵커와의 비교에 “감히 그분하고 비교 대상이 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손 앵커는 “언론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저널리즘 본질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뉴스 역사를 바꾼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엄 앵커는 “그에게 배울 것은 배우되, 제 방식대로 뉴스를 진행하고 시청자들과 소통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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