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바꾸고 싶습니다. 아니, 우리나라를 저주합니다.” 화력 발전소 비정규직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님의 절규다. 두루 공감하겠지만 더없이 순수한 모습이다. 동영상으로 본 아들 김용균의 생전 얼굴도 티 없이 맑다. 기자회견장에 나온 아버지의 침묵은 되우 서럽다.

착한 아들 잃은 어머니의 ‘대한민국 저주’를 다독이고자 이 글을 쓰지 않는다. 그 ‘저주’의 가슴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는 기득권 세력의 굳은 머리를 위해 쓴다. 김용균의 참혹한 최후는 나 또한 어느새 기득권의 하나가 되었음을 벼락처럼 깨우쳐주었다.

2016년 5월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안전문을 수리하던 열아홉 살 비정규직 김건우가 비참하게 숨졌을 때 나는 칼럼과 강연으로 날을 세워 비판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범인’이라고 분석했다. 수리에 몰입하다가 수시로 오가는 열차를 못 볼 수 있어 2인 1조 원칙이 세워졌지만 돈만 아는 현실은 딴판이었다. 건우에게 저 세상에선 ‘컵라면 먹지 말고 밥 먹고 다니라’고 쓴 붙임딱지 글에선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슬픔이 뚝뚝 묻어났다. ‘누가 그들을 죽이는가’를 제목으로 쓴 칼럼 마지막은 앞으로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더는 죽이지 말라거나 ‘누가 그들을 죽이는가’ 따위의 칼럼을 써야 할까.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맺었다. 박근혜의 정책을 ‘자본 독재’로 비판했다.

그해 늦가을 촛불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2018년 12월 11일 태안 화력발전에서 일어난 참극 앞에 나의 분노는 적잖이 무뎌졌다. 제목부터 처음에 ‘문재인의 사과’라고 썼다가 ‘대통령의 사과’로 고쳐 쓰는 부끄러운 짓을 저질렀다.

▲ 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故 김용균 태안화력 발전소 노동자 사망사고 현장조사 결과 공개 기자회견에서 김 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아버지 김해기씨. ⓒ연합뉴스
▲ 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故 김용균 태안화력 발전소 노동자 사망사고 현장조사 결과 공개 기자회견에서 김 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아버지 김해기씨. ⓒ연합뉴스

제목을 다시 고치고 저 외동아들 잃은 어머니의 절규를 곱새긴다. 어머니는 아들이 일하던 밀폐된 현장을 고발했다. “석탄 먼지가 너무 날려서 플래시 켜도 뿌옇게 보였습니다. 그 안에 머리를 넣어 옆면을 보고 석탄을 꺼내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컨베이어벨트가… 위력도 세고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고 들었어요. 그 위험한 곳에 머리를 집어넣었다니, 저는 기가 막혔습니다.”

효자 아들의 최후 모습을 눈물로 적은 뒤 말했다. “아들이 일하던 곳, 정부가 운영했잖아요. 정부가 이런 곳을 운영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하소연은 문재인 대통령으로 이어진다. “당선되고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말로만입니다. 저는 못 믿습니다. 실천하고 보여주는 대통령이었으면 합니다. 행동하는 대통령이 되기 바랍니다.”

누가 이 어머니에게 ‘정치적’이라 비난할 것인가. 아니 나는 차라리 이 어머니가 진정으로 정치적이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대책위는 어머니도 참석해 청와대 앞에서 17일 연 기자회견을 통해 여야 국회의원들이 구의역 참사 현장을 방문했지만 노동인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법안 하나 통과한 것이 없다고 분노했다.

실제로 국회는 ‘싸구려 노동판’ 따위를 들먹이는 자한당 의원들의 몽니로 개혁입법이 지지부진하다. 대책위가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는 법 개정,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연내 처리를 강력히 요구한 까닭이다.

하지만 과연 모두 자한당 탓일까. 대책위도 ‘문재인 대통령 사과’를 요구했다. 청와대 참모들로서는 이치에 맞지 않다고 조언할 터이다. 하지만 고 김용균이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 했다. 나는 문 대통령이 정중히 사과하리라고 믿는다. 그 사과가 청와대 비서실과 내각의 대대적 개편으로 이어져 전환점을 마련하길 바란다. 비서실과 내각에 촛불정부의 열정과 참신성, 개혁 과제를 구현하려는 치열함이 뚝뚝 묻어나야 한다.

아울러 아들 잃은 어머니와 당신의 통곡에 공감하는 모든 이에게 순서만 바꿔 함께 다짐하기를 간곡히 제안한다. “우리나라를 저주합니다. 아니, 우리나라를 바꾸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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