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청와대 앞에서 그렇게 대통령 만나자고 할 때는 경찰병력으로 지근지근 밟고. 사람이 죽어야 오십니까?”

이용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지난 14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24)씨 빈소를 찾았다. 조문은 문재인 대통령의 ‘유가족들을 위로하라’는 지시에 따른 것이었지만, 김씨 동료 등 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에게 거센 항의를 받았다.

태안화력 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은 이 수석에게 김씨가 숨지기 10일 전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란 손팻말을 들고 찍은 인증사진을 들어보였다. 이들은 “이렇게 만나자 할 때는 무엇을 했느냐. 죽은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 14일 오후 이용선 청와대 시민수석이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 씨 빈소가 마련된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을 방문하자,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14일 오후 이용선 청와대 시민수석이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 씨 빈소가 마련된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을 방문하자,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14일 오후 이용선 청와대 시민수석이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 빈소가 마련된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을 방문하자,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이 김씨가 생전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과 만납시다' 손팻말을 들고 찍은 사진을 들어보이며 항의하고 있다. 사진=KBS 유튜브 영상 갈무리
▲ 14일 오후 이용선 청와대 시민수석이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 빈소가 마련된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을 방문하자,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이 김씨가 생전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과 만납시다' 손팻말을 들고 찍은 사진을 들어보이며 항의하고 있다. 사진=KBS 유튜브 영상 갈무리

문재인 정부가 공기업 내 하청업체 노동자였던 김씨의 죽음에 유가족과 노동계 분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는 김용균씨 사망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참여정부 시절 시민사회와 소통 창구를 맡았다. 특히 시민사회수석을 지낸 7개월 동안 농성 현장 면담을 도맡았다. 시민사회수석실은 역대 정부 가운데 참여정부가 처음 만든 조직으로,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결정을 벗어나 시민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는’ 거버넌스를 목표로 했다. 문재인 초대 수석은 경남 양산 천성산을 지나는 고속철도 터널 공사에 반대하는 지율스님의 단식 현장을 찾았다. 경기 평택 주한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대책위원회와 미군기지 이전을 두고 면담하기도 했다. 헌법재판소가 행정수도 이전에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시민사회 설득에도 나섰다.

국회의원 시절 사회적 참사에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2014년 8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유민이 아버지’ 김영오씨와 동조 단식을 했다. 2016년 6월 김아무개(19)군이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숨진 ‘구의역 참사’에도 견해를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대표직을 그만두고 중앙정치에서 한 발 물러났던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새누리당 정권이 추구하고 방치한 이윤 중심의 사회, 탐욕의 나라가 만든 사고인 점에서 구의역은 지상의 세월호였다”고 썼다. “새누리당 정권은 공기업과 공공기관마저 효율성과 수익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도록 몰아갔다. 공공성과 조화돼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을 듣지 않았다. 최소한 안전과 관련한 업무만큼은 직접고용 정규직이 맡아야 한다는 야당의 요구도 외면했다”고 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6년 6월11일 ‘구의역 참사’를 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 이윤 중심의 사회, 탐욕의 나라가 만든 사고인 점에서 구의역은 지상의 세월호였다”고 썼다. 사진=페이스북 갈무리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6년 6월11일 ‘구의역 참사’를 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 이윤 중심의 사회, 탐욕의 나라가 만든 사고인 점에서 구의역은 지상의 세월호였다”고 썼다. 사진=페이스북 갈무리

문 대통령은 취임 뒤에는 지난해 12월 충북 제천 복합상가와 올해 초 경남 밀양 세종병원 등에서 일어난 화재 참사 현장을 찾았다. 빈소와 분향소에 들러 유족들을 위로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청와대는 이 수석이 빈소를 찾는 것으로 예의를 다 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김씨의 빈소 등 현장을 직접 찾아야만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찾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청와대는 김씨가 당한 참변이 폭발적인 파장을 낳는 이유를 정확히 파악해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참사의 사회적 파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포함한 노동정책이 노동계와 소통 없이 선회하거나 기약 없이 미뤄지는 데 대한 분노에서 비롯한다. 김씨 참변의 원인인 ‘2인1조 원칙’ 위반, 열악하고 위험한 근무환경 등 ‘위험의 외주화’는 김씨가 직접고용됐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 김씨의 노동현장은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 즉 공기업이었으나, 김씨의 소속은 한국발전기술이라는 하청업체였다.

김씨가 다닌 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의 운전·정비 직무부터 정규직화 가능성이 낮았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연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중간평가 토론회’에선 발전5사 내 용역노동자 8천명 가운데 절대다수가 정규직 대상에서 빠졌다는 주장이 나왔다.

발전소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 7월20일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선 공공기관의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자회사 상용직’으로 전환하는 것도 정규직화로 인정했다. 그 결과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결정 인원 가운데 자회사 방식이 55%에 이른다. 사용자와 고용주가 불일치하고,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원칙은 무너진 것이다.

▲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설치된 故 김용균씨 분향소 영정사진. 사진=김예리 기자
▲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설치된 故 김용균씨 분향소 영정사진. 사진=김예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2022년까지 자살예방, 교통안전, 산업안전 등 ‘3대 분야 사망 절반 줄이기’를 목표로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집중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청와대 유튜브 갈무리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2022년까지 자살예방, 교통안전, 산업안전 등 ‘3대 분야 사망 절반 줄이기’를 목표로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집중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청와대 유튜브 갈무리

정부가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비롯한 노동정책을 놓고 유족들과 노동계에 진지한 대화를 제의하지 않는다면 분노는 가라앉지 않을 공산이 크다. 민주노총은 지난 11일 성명을 내고 “조선소, 발전소, 건설현장 곳곳에서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가 죽어가고 있다. 공공기관 효율화란 이름으로 자행한 인력감축, 외주화가 부른 참사다. 청년의 죽음을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공공기관의 진짜 원청인 정부가 답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중의소리에 따르면 유족들은 시민대책위를 통해 이 수석에게 “아들이 (피켓을 들고) 요구했던 것을 대통령을 만나 직접 전달하고 싶다”고 밝혔다. 시민대책위 관계자는 “김씨 어머니가 꼭 (대통령을) 만나서 요구를 전달하고 싶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 수석은 “고민해보겠다”고 말해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냐’는 항의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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